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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수염은 없다
정진영 지음 / 우주북스 / 2020년 9월
평점 :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서평] <여자를 위한 수염은 없다>_ 정진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일이었던 것일까, 싶기도 했다. 상처받는 인생, 성차별되는 현실, 남성들로부터의 은근히 피해 받는 성추행에서 더 나아가 잠재적 성범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느꼈다. 더군다나 세계 최고의 치안을 자랑하는 한국에서조차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여성들이 성적으로 피해 받는 상황들이 흔히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개선되어야 했다. 다행스러운 건 범국민적인 여성인권에 대한 재조명 효과로 미약하게나마 달라진 사회적 인식이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으로 성차별받고 피해 받아야 했던 세월들이 그나마 나아졌다. 서로가 뜻을 맞추어 이해하며 평등하게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나는 어느 편에도 치우칠 생각은 없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는 지금이 참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의 진심 어린 글에 공감이 되었고 한편으론 그런 안 좋은 일로부터 평생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며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물론 이렇게 하나의 책으로 내기까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간이 흘렀고 깊은 고민 끝에 당당하게 세상에 내놓은 것은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했다. 작가님이 겪었던 이야기는 단순히 지어낸 것이 아닌 현실적인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었기 때문에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진심으로 공감되고 슬픔이 느껴졌으며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당당하게 크게 소리치며 세상에 맞서는 모습은 나도 같은 편이 되어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런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고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기는 더더욱 어려웠을 텐데. 여성을 위한 정의란 것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싶었다. 오늘의 독서로 나 또한 변화된 마음으로 여성으로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 문제를 다시 한번 깨닫고 성적 차별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46
피해의 경중을 내가 멋대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지를 자주 생각한다. 스스로 느끼기에 피해의 정도가 크든 작든, 이런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부디 나와 같은 자책과 자기 의심으로 소중한 당신의 감정과 하루하루를 어둡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p53
어린이는 단순하다. 필터링이 없다. 기분이 좋은 면 좋은 것을 표현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한다. 거짓말에 능수능란하지도 않고 작용 반작용이 확실한 편이다. 잘 해주고 예쁘다고 해주는 아저씨들을 당연히 나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게 친근한 사람을 굳이 멀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할 만큼 복잡하지 않았으니까. 혹시라도 누군가 그런 단순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많은 것을 머리에 남기고, 언젠가 당신의 목소리와 얼굴을 기억할 것이다.
p66
"싫어"는 결코 "좋아"의 선행 대사가 아니다. 싫다면 싫은 거고 원하지 않는다면 원하지 않는 것이다. 짧은 치마, 야한 속옷, 평소 행실 등을 토대로 누군가를 멋대로 규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 그런 이상한 착각에서 발생한다.
p71
상사가 부하직원의 여가 생활에 참견할 수 없고, 친구가 나의 연인 관계에 들어올 수 없듯이 연인이라고 해서 상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이용할 순 없다. 어떤 관계든 합의되지 않은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걸 넘는 건 칭찬받고 인정받을 일이 아니라 그냥 무례한 것이다. 나는 누군가 정복해야 하는 대상도, 누군가의 트로피도 아니다.
p123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이 누구든, 어떤 성별이든 당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p142
남편은 날 사랑하고, 내가 독박 살림, 독박 육아를 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원하지 않는 이상 가사를 전담시킬 생각이 없다. 또한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없을 때도 밥과 과일을 잘 챙겨 먹길 바라고, 칼을 못 다뤄서 요리하다 손을 다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디 나가서" 살림은 아내가 하는 게 당연하지"라며 바보처럼 으스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의 상황에 맞게 배려하고 조율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살림은 내 몫이 아니다. 남편과 내가 함께 할 일이다.
p145
내가 헌팅 남에게 번호를 주지 않는 이유는 내게 애인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애인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이다.
#"얘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친구의 말이 남자의 부속물 취급을 당한 느낌이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