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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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였을 때> _ 민카 켄트.

이 책의 소개 글을 읽었을 땐 사건의 중심이 브리엔 과 그녀를 사칭하는 또 다른 브리엔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것인 줄 알았으나 책을 읽어 갈수록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관계는 전개상 빠져선 안될 것이었지만 좀 허무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궁금하여 계속적으로 읽었습니다. 사건의 중심인물들은 브리엔 과 그녀의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된 룸메이트 나이얼이었는데 이 둘의 관계가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일단 그의 직업이 의사였지만 녹색 수술복 차림으로 집에 출입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이해가 안 되었으며 혼자 사는 젊은 여자의 집에 낯선 남자를 들여서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미국 문화 특유의 생활이 아닐까 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의 틀이었기에 한편으론 놀랍기도 했습니다. 브리엔 두그레이란 여자는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괴한으로부터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해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게 되고 그 이후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와 단기 기억 상실, 악몽의 후유증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삶을 살아갔으며 그녀 주위에 친구라곤 하나 없는 혼자였습니다. -물론 결말에 그러한 이유가 해석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심적인 동질감을 느꼈으며 현시대의 사람들이 흔히 겪는 외로움이란 것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인 집에서 느끼는 텅 빈 공허함,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망각해서 겪는 허탈감은 일종의 고통이며 자기의식 내에서 겪는 평범해 보이면서도 그렇지 못한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외로움을 SNS 매체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몰래 들여다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안에서 창밖을 보며 지나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을 잠시 풀어내지만 그들의 삶을 자신에 빗대어 평가하기도 하고 나 자신은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지에 대한 자의식에 깊게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브리엔 은 바로 우리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투영한 삶의 한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유복한 생활을 하는 상류층이었으며 서민의 시각으로 보자면 꿈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어서 그녀를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소설을 통하여 상류층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 일종의 간접적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선과 악의 관계는 분명히 나누어지지만 각 인물의 살아온 인생을 파헤치면 상처가 없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을 떠안고 있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상처가 결국 분노를 낳게 되고 분노는 인생의 복수로 치환되어 그 대상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하게 됩니다. 결국 브리엔 은 회복이 필요한 과정에서 그것을 가장한 또 다른 이의 범죄 대상이 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작가 <민카 켄트>의 마법 같은 필력으로 사건은 예상할 수 없게 되고 더 흥미롭게 흘러가게 됩니다. 브리엔 과 나이얼의 관계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며 물고 무는 심리전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때부터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더해졌던 것 같습니다. 번역의 매끄러움과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탄탄한 스토리, 늦출 수 없는 긴장감, 탁월한 문장력 때문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막힘없이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저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없이 브리엔과 나이얼 두 인물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어서 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민카 켄트>의 필력에 그저 감탄하며 읽어 나갔습니다. 완전 범죄를 꿈꾸던 자와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또다시 상처를 받게 되지만 범죄자를 응징하려는 브리엔의 정의감이 불타는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강했으며 어떤 부분에선 소름 끼칠 정도로 냉정하고 차가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나이얼이라는 지능적인 범죄자로부터 절대 순하고 바보같이 당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로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나이얼의 허점을 파고들어 증거를 확실하게 잡은 뒤, 끝을 내려고 하는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탐정 이상의 기지를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의 매력을 새삼 다시 느꼈습니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중간에 끊김 없이 각 인물의 시점을 단락으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성 작가가 여자의 시각에서 남자의 시각으로 변화를 주어 글을 써가는 것이 남녀 간의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에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인데 거부감 없이 읽혔습니다. 브리엔 특유의 섬세함과 함께 나이얼의 점진적이면서도 빠른 상황 판단에 의한 전개는 다른 작가가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착각을 했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을 위한 작가의 피나는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나이얼이 범죄자였으며 -나이얼은 자상하지만 똑똑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인물로 비추어졌습니다.- 브리엔을 모방하는 제2의 브리엔은 그의 여자 친구 사만다였습니다. 특히 작가의 장치에 속았던 게 나이얼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등장하여 제2의 브리엔 (사만다)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브리엔을 다중인격이 있는 아내로 만들어 버린 부분이었습니다. 그녀를 정신병원에 반강제로 입원시키는 나이얼의 완벽한 연기는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외상 후 단기 기억 상실로 고생하던 그녀의 약점을 잘 공략하며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빼앗기 위한 일종의 작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변화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놀랐던 부분이었습니다. 만약에 사건이 그녀의 다중인격이 사실임이 되고 그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후 치료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면 뻔한 진행이었을 것이지만 역시 작가는 그것을 또 틀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건은 결국 비극으로 점점 빠져들고 나이얼은 브리엔 보다 한발 앞서가지만 작가는 이야기 자체를 잔인한 살인에 맞추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점이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을 최소화하면서도 심리 미스터리의 본질을 잃지 않았 다는 게 어쩌면 진짜 매력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서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사전적인 의미로 상황을 조작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옳다는 걸로 믿게끔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접어들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건의 전체적인 틀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봤으며 사회의 인간관계적인 면에서 암적인 존재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단어가 정의 되기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이 더 심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드러나진 않았지만 책의 전반을 다루고 있던 문제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SNS를 해킹하여 타인을 도용하는 범죄가 심심치 않게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브리엔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흉내 내고 생김새까지 따라 하는 소름 끼치는 부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인스타그램을 예를 들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서 같은 인물 -유명한 공인의 팬심이 아닌-의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은 정황을 직접 확인 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사회적인 현상들이 생각나서 한편으론 놀랍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깊은 안목을 새삼 다시 확인한 것 같았습니다. <민카 켄트><내가 너였을 때> 를 읽고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습니다. 독자들의 소설적 목마름을 시원하게 꽤 뚫은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남에대해 멋대로 추측하길 좋아한다.

우리는 대부분 나름의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간다.p49


졸부는 요란하고 거부는 조용하다. p97


결국 모든 게 괜찮아진다.

괜찮지 않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p368


사실 소설에선 그렇게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사회가 살아 숨 쉰다는 건 괜찮지 않기 때문에 괜찮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작가 <민카 켄트>의 생각을 존중하며 저는 그저 다르다고 볼 뿐입니다. 그녀 덕분에 사회 문제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어서 독자로서 행복하고 그저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좋은 번역이 있었기에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번역자분께도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 봅니다. 고맙습니다.



-메모 노트-



p161부터 브리엔의 시점에서 나이얼로 바뀜

p173

브리엔이 나이얼 엠벌린의 병원을 찾아가 그가 의사인 것이 거짓임을 알게 됨.

p176 의사가 아닌 환자 이송직원임이 드러남.

의사신분증을 주워 앰벌린이라고 사칭하고 다님.

p181 여자가~ 썩꺼져야 한다.

p186 브리엔의 총자산 13358000달러.

한화 약 1609639만원

p192 나이얼은 여자친구인 사만다를 통해 가짜 브리엔을 만드는 계획을 실행함.

p204 조지아주 정보처리 센터 엠벌린 의료기록 조회안됨.

p214 거짓말~ 신세가 되고 만다.

p222 3498997 달러

4216291385

p242 브리엔이 나이얼이 준 반지가 가짜 다이아몬드 반지인 것을 알게 됨.

p276

35년 평생~. 사만다의 나이를 통해 나이얼과 브리엔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음.




브리엔 두그레이: 자의식이 강한 여자. 외롭다. 사립탐정에 의뢰하나 웃음 거리만 됨. 사건을 스스로 헤쳐감.그녀가 원하는건 정상적인 생활. 집에서 동네 사람들을 관조하는게 일상.그녀는 조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수백만달러의 자산이 있고.의심이가면 끝까지 파고드는 편집증적 성향이 있음.

나이얼: 브리엔의 어머니 소냐의 양아들, 소냐가 뺏긴 부모의 재산을 찾으려고 브리엔을 다중인격자로 속인 후 정신병원에 넣고 브리엔의 재산을 빼돌려 도망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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