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사이드 클럽 스토리콜렉터 83
레이철 헹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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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수이사이드 클럽> _ 레이철 헹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짓고 중국 전체를

통일하여 천하를 지배하던 진시황.

그는 영원불멸의 삶을 위해 전국 각지에 사람을

보내어 무병장수를 위한 각종 약재나 물건들을

구하게 되지만 결국은 그도 인간의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맞게 되죠.

그렇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며 진리이기도 하구요.

현시대에도 우리 인간들은 의학기술의 발달과 연구로 옛 시대보다

기대 수명치가 확실히 올라간 건 사실입니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소리는 낯설지가 않게 됐죠.

작가 <레이철 헹>의 <수이사이드 클럽 >은 생명 연장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가져오는 해악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이론을

나열하기보다는 작중 인물이 살아가는 사회를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마치 머지않은 미래에 닥쳐온 현실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 스마트폰의 시대를 사는 지금이 오래된 역사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100세를 넘어 200세, 300세 이상

건강하게 오래 살아가길 바라죠. 거기서 더 나아가 늙고 아파서 몸을 거동하기

힘든 상태가 아니라 주름 하나 없는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며 삶을 즐기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이 책 안에서의 세계에선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제1의 물결에서 더 나아가

제3의 물결이 곧 오고. 사회는 라이퍼와 비라이퍼로 나누어집니다. 즉 장수할 수 있는

유전자와 그렇지 못한 열성 유전자를 태어난 순간부터 판별 검사를 통해

결정 짓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두 가지 부류로 극명하게 나누어집니다. 라이퍼는

정부의 관리체계에 들어가게 되어 장수 생명 유지를 위한 각종 고가의 서비스를

받게 되는 대상이 되고 그들만의 공간과 지역에서 살아가게 되죠. 반면 열성인

비라이퍼들은 외곽지역에 거주하게 됩니다.마치 그 두부류가 부유층과 빈민층으로

나누어진 듯 보여집니다. 사실 생명 연장 프로젝트는 행복하지만, 정부 규제의

틀 안에서 엄격한 관리와 구속을 당하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생활 자체도

자유스럽지 못하고 먹는 그것마저 정부의 통제 아래에 놓이는데 맛좋은 스테이크조차도

건강상의 이유로 규제를 받고 정부에서 권장하는 건강 음식들만 먹여야 하죠.

그 생명 연장 프로젝트의 대상 선정도 제1의 물결부터 시작 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비라이퍼처럼 그 혜택에서 제외되어 더 이상 젊음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고가의 비용을 충당할 수 없으면 인공 심장이나 다이아몬드 스킨,

자동 재생 피부 이식을 통한 노화 방지 등의 의료 수술을 받지 못하게 되죠.

<수이사이드 클럽>은 그 생명 연장시스템에 회의적이고 반기를 든 모임이며

반정부체제의 느낌이지만 사실 라이퍼들로 구성된

부유층과 권력층의 사교클럽이었습니다.

무병장수의 무의미함을 인지하고 짧은 인생이지만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정의롭게 삶을 마치고 싶어 하는 그 세계 사람들의

유토피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세계는 지금같으면 평범한 것들도 아주

고급스럽고 값비싼 것으로 치부됩니다.

라이퍼들에게 금지된 소고기 스테이크, 거위 간 요리인 푸아그라,

해외에서 공수된 술들…. 현시대에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요리지만 소설 속에선

한정된 지역에서 어렵게 공수하여 제공되는 특별한 음식이 됩니다.

<수이사이드클럽>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조차 허락될 수 없는 세계에서

오히려 무의미한 생명 연장으로부터 자유를로운 삶을 위해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 순간을 영상 기록으로 남겨서 마치 정부체제에 시위하듯

인터넷에 알려집니다. 인생의 참된 가치를 살지 못하며 영원불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그릇 된 이면을 알리려는 듯한 일종의 혁명.

사실 아직도 저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죽음이

그런 것들로 인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가족애와 인물들 간의 관계의 틀 안에서

벌어지는 도덕적인 선택인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레아와 아버지, 안야와 어머니의 애틋한 가족애는 책을 다 읽는 순간까지

아름답고 마음이 아팠으며 이것이 과연 최선인 것일까 하는 제 안의

작은 분노마저 생겼습니다. 작가 <레이첼 헹>도 소설과 함께

한편으론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역시 소설이고 그것조차도 하나의 매력이고 뜻밖의 반전은

소설에 힘과 매력을 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부유층과 기득권층의 일부가 되어 300세 시대를 꿈꾸는 그들의

고급스러운 삶을 만끽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 반대로 비라이퍼들의 지역에서

이를테면 빈민층의 도시에서 이방인이 되어 그들의 인생을 엿보는

독자가 되는 것도 흥미 있었습니다.

결국은 거칠고 험악해 보이는 그들도 같은 한 인간이며 시련을 동정하고

때론 도움도 줄 수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빠른 시기에 다가올지 모를 미래적인

독특한 소설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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