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패드가 멈춘 날
마이크 벤터 지음, 척 딜런 그림, 최미정 옮김 / 다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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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심심함은 견뎌야 할 불편함이 되었을까?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식사 중에도 영상을 시청하며 잠들기 직전까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특히 숏폼 콘텐츠가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새로운 자극을 얻고 지루해질 틈도 없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이러한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말하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건네는 어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즐길 거리를 찾으면서도 정작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점점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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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패드가 멈춘 날>은 이러한 디지털 과잉 시대의 일상을 재치 있는 이야기와 유머러스한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용을 무조건 경계하거나 디지털 기술의 부정적인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대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즐거움의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사람이 피하려고만 하는 심심함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정말 낭비일까? 누군가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스스로 즐거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판다 패드가 멈춘 날>은 지루함이 사라진 시대에 오히려 지루함이 필요한 이유를 유쾌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책은 먼저 패드와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든 즐거운 판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침대에 누워서도, 간식을 먹으면서도, 장난감이 가득한 방에서도 판다의 시선은 오직 패드에만 머물러 있다. 주변에는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넘쳐나지만 판다에게는 화면 속 세상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이처럼 책의 첫 장면은 디지털 기기가 일상의 중심이 되어 버린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 주며 누구에게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판다의 패드가 먹통이 되어 버리고 만다. 화면에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만 덩그러니 떠 있다. 패드가 멈추자 판다도 그대로 멈춰 버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던 판다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방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재미있어 보이는 건 하나도 없다. 결국 심심함을 참지 못한 판다는 하품만 연달아 내뱉는다. 장난감과 책이 가득한 방에서도 패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판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낯익다. 화면 속 즐거움에 익숙해진 나머지 주변의 다른 재미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게 된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하다.


판다는 심심한 게 세상에서 가장 싫다. 콩을 먹는 것도 싫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지루함이다. 심지어 이모가 모은 클립을 구경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판다에게 아무런 즐길 거리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는 순간 '너무'라는 단어가 빼곡하게 채워진 장면이 등장한다. 얼마나 지루한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판다의 심정을 반복되는 글자로 시각화한 것이다. 화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너무'와 한쪽에 축 늘어져 있는 판다의 모습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짧은 문장과 과장된 그림만으로도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판다의 심리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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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너무너무 심심해진 판다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아 주거나 인터넷이 다시 연결되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이 대목에서 책은 심심함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들은 무료한 순간마다 어른들에게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는지 묻곤 한다. 그러나 지루함을 해결하는 방법까지 누군가 알려 준다면 스스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판다에게 찾아온 뜻밖의 심심함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자신만의 놀이를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이제 판다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자극이 아니라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변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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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패드가 멈춘 날>은 패드가 멈추자 자신도 함께 멈춰 버렸던 판다가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심심함이 지닌 뜻밖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막막해하던 판다가 숲속 친구들을 만나며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호저의 호기심과 세상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부엉이의 엉뚱한 상상력 그리고 똥으로 조각품을 만드는 쇠똥구리의 기발한 도전은 재미란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소비하는 데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부록은 판다가 경험한 변화를 독자들도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이 함께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시간을 정하거나 주변을 관찰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등 일상에서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활동들이 담겨 있어 더욱 유용하다. 책을 읽은 뒤 아이와 함께 놀이를 실천하며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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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깐의 여유만 생겨도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렇게 쉬지 않고 새로운 자극을 좇는 일이 반드시 진정한 휴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고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판다 패드가 멈춘 날>이 건네는 제안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자는 주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말할 때마다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아 주기보다 스스로 궁금해하고 상상하며 무언가를 시도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물론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판다의 패드가 멈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듯 우리도 가끔은 화면을 끄고 일상의 속도를 늦춰 보면 어떨까? 심심함은 반드시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기 위한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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