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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
마크 버먼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10월
평점 :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휴식 방법이다. 하지만 몸은 쉬고 있어도 뇌는 여전히 수많은 자극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업무와 공부는 물론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과 거리의 소음까지 우리의 주의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친 뇌를 제대로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환경신경과학 분야를 개척한 마크 버먼은 그 해답을 뜻밖에도 자연에서 찾는다. 그의 책인 <뇌는 자연을 원한다>는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주의력과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이 인간의 뇌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20여 년간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해 온 저자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자연이 지닌 회복 효과를 구체적으로 밝혀낸다. 흥미로운 점은 자연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연을 접하면 인지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거나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뇌의 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책은 여기서 나아가 학교와 직장, 병원과 도시를 인간의 뇌가 더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방법까지 모색한다. 특히 집중력 저하와 만성적인 피로를 개인의 의지나 생활 습관만이 아닌 환경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친 뇌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도 새롭게 다가온다. <뇌는 자연을 원한다>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가치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휴식과 회복에 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실제로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저자가 자연과 뇌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공원에서의 산책이라는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기억력과 주의력을 소모하는 어려운 인지 과제를 수행하게 한 뒤 한 집단은 나무가 우거진 수목원을, 다른 집단은 차량과 상점으로 복잡한 도심을 걷도록 했다. 두 집단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거리를 걸었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연 속을 산책한 참가자들은 기억력과 주의력 과제에서 뚜렷한 향상을 보인 반면 도심을 걸은 참가자들에게서는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순히 걷는 행위보다 어떤 환경에서 걷느냐가 뇌의 인지 기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자연의 효과를 주관적인 기분 변화가 아닌 객관적인 인지 능력으로 측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연구는 자연과 인간의 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저자가 환경신경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연구의 출발점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외할머니가 심어 놓은 은청가문비나무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보냈던 시간은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추억이었지만 훗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연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오랜 통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뇌 영상 분석과 시선 추적 실험은 물론 스마트폰 위치 데이터까지 활용하며 연구의 범위를 넓혀 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인지 기능뿐 아니라 신체적·정서적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나무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좋은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자연의 가치가 개인적인 휴식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을 보여 준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단순히 여가를 즐기거나 심리적 위안을 얻는 공간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환경적 조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의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저자는 그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를 더욱 깊이 탐구한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은 주의 회복 이론이다. 인간이 특정한 일에 집중할 때 사용하는 의도적 주의는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피로해진다. 반면 자연은 새소리나 흔들리는 나뭇가지, 흐르는 물결처럼 특별한 노력 없이도 관심을 끄는 부드러운 매혹을 제공한다. 이러한 자극이 의도적 주의에 휴식을 주어 집중력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약 50분간 자연을 산책한 참가자들의 주의 관련 기능은 약 20퍼센트 향상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 산책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경험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던 셈이다. 후속 연구에서는 자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효과가 확인되면서 중요한 것은 걷기 자체보다 자연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발견은 정신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자연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특히 우울증 환자들이 부정적인 생각과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우울 반추에 주목했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상당한 주의력을 소모시키고 일상적인 인지 활동에도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 제공하는 부드러운 자극은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자연 속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우울한 생각을 심화시키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설계한다. 자연의 회복 효과가 단순히 집중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뇌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정신건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자연의 회복 효과는 주의력과 정신건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이 신체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토론토 주민들의 건강 정보와 50만 그루가 넘는 나무의 분포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거주지 주변에 나무가 많을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평균 크기의 나무가 열한 그루 더 있는 지역에서는 뇌졸중과 당뇨병, 심장병 같은 심혈관 대사 질환의 발생률이 약 1퍼센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미국에서 외래 해충인 호리비단벌레의 확산으로 물푸레나무가 대규모로 사라진 지역에서는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만으로 자연과 건강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시의 나무가 단순한 경관이나 편의시설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공 자원이라는 사실만큼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 질병을 겪는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 과정으로 확장한다. 특히 암 환자들은 질병 자체의 부담뿐 아니라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기도 한다.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12주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20분간 정원을 가꾸거나 산책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주의 기능과 삶의 질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나아가 녹지가 풍부한 지역일수록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아직 자연이 질병을 직접 예방하거나 치료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발견은 의료적 처치와 더불어 환자가 머무는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결국 자연은 건강한 사람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질병과 노화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인 셈이다.
이처럼 자연이 인간의 인지 기능과 정신건강은 물론 질병의 회복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특히 <뇌는 자연을 원한다>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개인의 취향이나 여가 활동이 아닌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식습관과 운동, 수면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연에 대한 접근성이 건강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 둘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누구나 일상에서 녹지를 누릴 수 있도록 학교와 주거 공간, 의료시설과 도시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자연을 보존하고 생활 가까이에 들이는 것은 개인의 건강을 위한 노력인 동시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독자의 일상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각 장 끝에 수록된 '오늘의 환경 실험'은 독자가 직접 생활 속 변화를 시도하고 그 효과를 관찰하도록 이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다시 살펴보거나 익숙한 생활 공간을 조금 다르게 꾸미는 일도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자연이 모든 피로와 질병을 해결하는 만능 처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요소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나니 특별한 휴식을 찾아 멀리 떠나기보다 평범한 하루에 자연이 얼마나 자리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게 된다.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이제는 그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