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꿈꾸는돌 47
하유지 지음 / 돌베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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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감성 넘치는 책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부모의 부재 속에서 자란 열일곱 살 오한봄에게 어느 날 엄마와 첫사랑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계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름에서 시작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한봄은 가족과 사랑, 독립과 관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엄마의 자리가 다시 채워질 수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어떤 거리를 찾아야 하는지를 한 소녀의 성장 과정 속에 섬세하게 풀어낸다.

이 소설은 모녀 관계를 중심에 둔 가족 이야기이면서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이야기이고, 동시에 정서적인 자립과 관계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이 반드시 갈등하거나 등을 돌리는 일만은 아니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그 사람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것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질문들은 단지 청소년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청소년 소설임에도 어른인 내가 읽으면서도 여러 장면과 감정에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부재와 상처, 실패처럼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어둡게 끌고 가지 않고 불완전하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도 다시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회복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열일곱 살 한봄이 사계절을 지나며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게 될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은 여름방학 수학 특강 첫날, 한봄이 학원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의 추동하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하는 한봄이 사는 아파트에서 종종 보았던 택배 기사였고 알고 보니 자신과 같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한봄은 그동안 동하가 1401호로 와야 할 택배를 자꾸 1301호에 두고 갔다며 말을 걸고 조금은 엉뚱한 첫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을 추, 겨울 동, 여름 하’를 쓰는 동하의 이름에 봄만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에 담긴 계절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택배 기사와 고객으로 스쳐 지나가던 사이가 같은 학원에서 다시 만나면서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열어주며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주인공 한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키워온 할머니 강만춘이다. ‘늦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 한봄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고, 한봄 역시 할머니가 없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부재를 온몸으로 느낄 만큼 깊이 의지하고 있다. 반면 엄마 서윤혜는 한봄에게 이름 그대로 서운한 사람이다.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매달 돈을 보내고 수박과 감, 영양제 같은 물건을 꾸준히 택배로 보내며 멀리서 두 사람의 삶에 관여해 왔다. 한봄은 그런 엄마를 일부러 ‘서운해 씨’라고 부르며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신에게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할머니가 대동맥 판막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보호자로 엄마를 불러야겠다고 말하면서 한봄이 애써 밀어두었던 엄마의 존재가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수술이 결정되면서 한봄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엄마의 존재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한봄의 아빠는 한봄이 태어나기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 서윤혜는 갓 태어난 한봄을 시어머니인 강만춘에게 맡긴 뒤 떠났다. 이후 엄마는 매달 양육비를 보내고 계절마다 과일이나 생활용품, 영양제 등을 택배로 보내며 멀리서 한봄의 삶에 흔적을 남겨왔다. 하지만 어린 한봄이 할머니의 휴대전화에서 엄마의 존재를 알아내 연락을 보냈을 때 돌아온 것은 아무런 답도 없는 침묵이었다. 그 뒤로 도착하는 택배 상자는 한봄에게 엄마가 보내는 일방적인 답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봄은 서윤혜라는 이름을 일부러 ‘서운해 씨’라고 부르며 엄마를 향한 궁금증과 기대를 차단하고 자신에게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한봄에게 할머니가 수술 전후의 보호자로 엄마를 부르겠다고 선언한 일은 단순히 낯선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문제와는 달랐다. 더구나 할머니는 한봄이 서윤혜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수술도 받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한봄은 이미 자신이 다 컸고 엄마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 앞에서는 오래전의 감정들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서도 좋은 사람일까 봐 오히려 두렵고, 미워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는 한봄이 쌓아 온 무관심이 사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한봄은 할머니의 수술을 계기로 애써 철벽 밖에 두었던 엄마를 다시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자신에게 찾아올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채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한봄은 할머니에게서 평생 서로 믿고 아끼는 사람이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듣고서 자신의 세 자리 가운데 두 자리는 이미 할머니와 단짝 규림이가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은 한 자리이다. 할머니의 심장 수술을 앞두고 오래된 상실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한봄은 자신도 모르게 곁을 지켜 줄 또 한 사람을 찾기 시작하고 그 후보에 엄마를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미워하고 외면해 온 사람에게 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못마땅하면서도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엄마를 향한 기대와 연민까지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거의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한봄의 세 번째 자리는 누구로 채워질지, 그리고 엄마와 동하를 비롯해 한봄의 곁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갈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슬픔과 불행은 엄연히 다르다’는 한봄의 생각이다. 부모의 부재로 때때로 슬펐지만 할머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에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 한봄의 모습은 결국 삶을 결정하는 것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봄은 사계절을 지나며 엄마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동하와 마음을 나누며 언제까지나 그대로일 것 같았던 할머니와 규림이와의 관계 역시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음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계는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더라도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안에서 주고받은 사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한봄이 평생 믿고 아낄 세 사람을 찾는 데서 출발해 결국 그중 한 자리를 자기 자신에게 내어주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만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혼자일 때 온전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진정한 자립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은 상처를 완전히 지우거나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시작하고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힘에 가깝다고 본다. 계절은 머물지 않고 사람과 관계 역시 계속 변하지만, 어떤 시간은 오래도록 한 사람 안에 남아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이 된다.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그렇게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조금씩 자신을 믿고 환대하는 법을 배워 가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여주기에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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