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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은 시다
박정완 지음, 박서영 그림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상상력과 언어의 가능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레몬은 시다>라는 제목은 처음에는 단순히 레몬의 신맛을 표현한 말처럼 보이지만 책을 펼치면 '시다'라는 말이 형용사를 넘어 '시(詩)다'라는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며 독자에게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늘 보아 온 사물들이 과연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지, 이름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지를 동시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는 총 50편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레몬은 신맛 나는 과일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시가 되고, 지네는 단순한 벌레가 아니라 화물차가 되는 등 익숙한 존재들이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얻는다.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물을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하기보다 여러 겹의 모습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시를 읽는 것만으로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과 주변 풍경을 새로운 관점에서 마주하게 되고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얼마나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과도 연결되는 <레몬과 할머니>이다. 시는 "난 시다."라는 짧은 한마디에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 의미는 점차 달라진다. 처음에 할머니는 레몬을 숭어구이에 올리거나 차를 만드는 데 사용할 식재료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레몬은 자신을 단순한 먹을거리로 규정하는 시선에 "그래도 난 시다."라고 거듭 말하며 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시다'라는 형용사가 '시(詩)다'라는 말로 이어지는 순간 하나의 단어는 새로운 의미를 얻고 평범한 레몬은 상상과 언어를 품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레몬이 변한 것이 아니라 레몬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할머니는 레몬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대신 연필을 꺼내 들고 "신 레몬이 시가 될까?"라고 묻는다. 하나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익숙한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이러한 발상은 짧은 동시 안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단순한 언어 유희에 그치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이 책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또 하나 재미있게 다가온 시는 <까마귀를 조심해>이다. 처음에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생김새를 이용한 단순한 말놀이처럼 보이지만 시를 따라 읽다 보면 단어를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까마귀가 까탈을 부리고 까탈을 몰랐더니 까불까불하다가, 결국 '까'를 떼어 내 마귀가 되었다는 발상은 기존의 언어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준다. 평소에는 의미만 생각하며 지나쳤던 단어를 소리와 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마귀를 붙잡아 다시 '까'를 꿰매 까마귀로 되돌린다는 장면은 끝까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언어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글자 하나를 더하고 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의미와 상상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 <레몬과 할머니>가 하나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면, <까마귀를 조심해>는 언어 자체를 놀이의 대상으로 바꾸며 우리말의 재미와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레몬은 시다>는 언어를 가지고 노는 재미를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과학과 신화, 현실과 상상, 성장과 관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조금씩 넓혀 준다. 특히 어린이의 일상과 몸의 변화, 타인과의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은 동시가 단순히 짧고 쉬운 글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시들은 독자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할 여백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 익숙한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평범한 순간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르게 바라볼 용기를 건넨다. 동시를 좋아하는 어린이뿐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상상하는 즐거움을 잠시 잊고 지냈던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관점과 언어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기에 이 책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