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 한 번의 사계절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6
하세가와 마리루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제목과 띠지 속 책 소개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열네 살 소년의 몸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사계절을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배워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삶과 죽음을 다룬 판타지 성장소설처럼 보이지만 작품은 특별한 설정 자체보다 그 속에서 인물들이 마주하는 감정과 선택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년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친구를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차근차근 되짚어 나가며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특히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나친 비극이나 감상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인다. 주인공은 친구와 가족, 학교와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며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나간다. 또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과 살아 있지만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대비시키며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소설은 단순한 청소년 성장담을 넘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은 한 영혼이 지금 막 죽은 텐잔이라는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름도 기억도 없는 영혼은 병원에서 눈을 뜨자마자 숨 쉬는 감각과 심장이 뛰는 소리, 손끝에 닿는 촉감과 창밖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에 연신 감탄한다. 따뜻한 햇살과 처음 맛본 푸딩의 달콤함마저도 그에게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에게는 모두 처음 경험하는 순간들인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독자를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너무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쳐 버릴 감각들을 낯선 존재의 시선을 통해 새롭게 보여 준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작품은 숨을 쉬는 일, 음식을 먹는 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특별한 경험으로 그려내며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영혼은 자신이 막 죽은 중학생 다카나시 텐잔의 몸을 빌려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쫓는 존재인 여우로부터 이 몸은 사계절이 지나면 완전히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듣게 된다. 살아 있음의 경이로움과 다가올 끝이 동시에 제시되는 이 설정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키우며 텐잔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영혼이 사계절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그렇게 텐잔의 몸으로 살아가게 된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텐잔의 아버지와 조부모, 친구 다쿠마를 만나며 그는 점차 텐잔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처음에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탄하던 존재였지만 학교에 다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하나씩 배워 나간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 가족이 건네는 걱정과 애정,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마음까지 모두 그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다. 기억상실을 핑계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학교 친구들은 팔로워 수와 ‘좋아요’의 개수에 관심을 기울이고 스마트폰 속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것들보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순간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그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와 친구들의 웃음소리, 밤하늘의 별빛 같은 사소한 풍경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모습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자극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우리는 어느새 화면 속 숫자와 평가에 익숙해진 나머지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 평범한 하루가 주는 행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삶의 소중함이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작은 행복들 속에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그러나 작품이 보여 주는 삶은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세상의 소중함을 알아갈수록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고통과 절망 역시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친구와 마주하는 장면은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텐잔의 몸을 빌려서라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 달리, 린은 살아 있을 수 있음에도 삶을 내려놓으려 한다. 이러한 대비는 살아 있다는 사실과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님을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문제를 섣부른 위로나 단순한 교훈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 왜 버거운지, 사람은 언제 살아갈 힘을 잃게 되는지를 담담하게 들여다본다. 주인공은 린을이해하고 붙잡고 싶어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작품은 삶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희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고,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 준다.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사계절>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겹고도 값진 일인지를 이야기하며,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소설이 도달하는 곳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고 본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살아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누군가를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는 삶을 포기하려는 친구를 향해 살아 달라고 말한다. 언젠가 반드시 끝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계절 동안 주인공은 기쁨과 설렘뿐 아니라 상실과 절망, 아픔과 후회 역시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감정을 겪고도 삶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가 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 경험하지 못한 순간들을 아쉬워하며 삶을 향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을 다 읽고 나면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하루를 버텨 내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뻗는 일이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은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살아갈 만한 이유는 분명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