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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임시 보관 중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가키야 미우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63세 주부 마사미가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 차트를 계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남편의 냉소적인 반응에서 비롯된 고민은 과거로 돌아간 이후 구체적인 선택의 문제로 이어지고, 마사미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삶을 설계하려 한다. 이미 한 번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소설은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을 활용해 결혼과 가족 중심으로 이어져 온 삶의 방식에 균열을 내고, 개인의 선택과 주체적인 삶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특히 가키야 미우 특유의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시선은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과거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남녀 차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의 의지가 어떻게 제한되고 또 변화하는지를 보여 주며 이야기는 단순한 다시 살아보기에 머물지 않는다. 전개는 비교적 간결하게 이어지지만 인물의 판단과 변화 과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구성되어 익숙한 삶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이야기는 TV 화면에 비친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 차트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인생을 설계해 온 그의 모습을 접한 마사미는 깊은 인상을 받는 동시에 자신 역시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한때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가사와 생계를 병행하는 평범한 주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그 간극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러한 감정은 점차 구체적인 결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사미는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자신을 제약해 온 조건들을 배제하고 오롯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심정을 남편에게 털어놓는 순간 그는 오타니와 자신을 비교했다는 이유만으로 빈정거림과 조롱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마사미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남편의 말에 상처를 받은 마사미는 무심코 장보기 메모 뒷면에 만다라 차트를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막연한 생각에 머물렀지만 점차 자신의 삶과 사회에 대한 불만과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역할과 구조를 다시 바라보며 여성의 삶을 제약해 온 조건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고, 이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선택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진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 나가던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만다라 차트를 바라보던 마사미는 어느 순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의식을 잃고 눈을 뜬 곳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73년이다. 이미 한 번 살아본 기억을 지닌 채 과거로 돌아온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며 이야기는 인생 2회차라는 새로운 전개로 이어진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간 마사미는 같은 시기를 살아가던 첫사랑 아마가세와 다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다시 얻은 삶을 인식하며 각자의 선택을 지지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마사미는 결혼과 출산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기준으로 인생을 설계하려 하지만 그녀가 속한 시대는 여전히 그러한 선택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개인의 의지와 사회적 조건이 충돌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제약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어 더욱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특히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내는 가키야 미우 특유의 시선은 이 소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소설의 중간 중간에 마사미가 편지 형식을 통해 고발하듯 풀어내는 남녀차별의 실상은 과장된 장치가 아니라 실제 삶의 모습에 가까워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이러한 묘사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독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생 2회차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편견과 구조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지만 우리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함과 공감을 함께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