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종이 울리면 - 제3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52
이하람 지음, 양양 그림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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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작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외증조할머니의 49재를 치르게 된 열세 살 소년 우찬이 친구와 함께 마을의 출입 금지 구역에 드론을 띄웠다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작은 행동은 곧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두 아이는 그 일을 계기로 마을에 오래도록 숨겨져 있던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산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 사건의 실마리는 아이들을 점점 더 깊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은 어린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사건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책임의 문제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서사 속에서 두 아이는 마을에 남겨진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기억한다는 일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의 이야기는 외증조할머니의 49재가 열리는 절 법당에서 가족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목탁 소리와 함께 스님의 기도문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찬은 슬픔에 잠긴 할머니와 가족들 사이에서 어딘가 낯선 분위기를 느끼며 법당 안을 둘러본다. 평생 솔개마을을 떠난 적 없던 외증조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도 절을 찾아와, 법당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우찬은 제사상에 놓인 음식과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외증조할머니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여름이면 뽕잎 위에 올려 먹던 오디를 함께 먹던 시절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따뜻한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은 또 하나 있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외증조할머니는 우찬을 알아보지 못한 채 이유 없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우찬은 그 모습을 보며 두려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북소리가 낮게 울리고 촛불이 흔들리는 법당에서 우찬은 외증조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절을 올린다. 이야기는 이렇게 가족의 애도와 기억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왕할머니는 왜 우찬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그토록 울음을 터뜨렸던 것일까.


49재를 마친 뒤 우찬은 친구 태성을 만나게 되고, 태성이 가방에서 꺼내 보인 드론을 계기로 두 아이의 호기심은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진다. 평소 마을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뒷산 솔개산 비밀 들판에 드론을 띄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두 아이는 산속으로 올라가 드론을 날리지만 기체는 울타리 너머 금지 구역 안으로 날아가 버린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채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벌판 전체가 울릴 만큼 크고 선명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우찬과 태성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두 아이는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건물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스피커나 실제 종 같은 것을 찾으려 눈을 돌리던 순간, 건물 안쪽의 어두운 통로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마치 커튼이 펄럭이듯 스쳐 간 그 정체 모를 움직임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의문을 남기며 이야기를 더욱 긴장감 있게 전개시키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날 이후 우찬과 태성은 비밀 들판에서 겪은 일을 잊지 못한 채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두 아이는 폐건물 안에서 나타난 낯선 소년 동수를 만나게 된다. 동수는 자신이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며 사라진 여동생 동희를 꼭 찾아 달라는 말을 남긴 뒤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춘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두 아이는 자신들이 본 것이 현실인지 혼란스러워하지만 눈앞에서 도움을 요청한 소년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수를 돕기로 마음먹는다. 어른들은 이들의 말을 쉽게 믿어 주지 않지만 우찬과 태성은 포기하지 않고 단서를 따라가며 동수에게 얽힌 이야기를 조금씩 밝혀 나간다.

그 과정에서 두 아이는 예상하지 못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동수는 1945년 일본군에게 속아 산속 소년병 훈련소로 끌려온 조선 소년이었고, 그가 애타게 찾고 있던 여동생 동희는 어린 시절 우찬의 왕할머니 순영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아이였다. 두 소년이 풀어 가는 사건은 개인의 사연을 넘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작품은 어린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사건이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잊힌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으로 확장되며 어린이 또한 역사 앞에서 진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존재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독자는 왕할머니 순영의 어린 시절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어린 순영 역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인물로, 우연히 목격한 비극적인 사건 이후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기억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 누구도 꺼내려 하지 않았던 그 기억은 긴 시간 침묵 속에 묻혀 있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순영은 세상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간직하며 잊지 않으려 했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이 전하려는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는 듯하다. 작품은 어린이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사건이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기억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역시 이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수많은 이야기 위에 놓여 있음을 떠올리게 하며 그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책임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메시지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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