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편 사람 주의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겪는 고독과 불안,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균열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등단 30주년을 맞은 조경란 작가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2024년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포함한 7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변주되는 설정을 통해 하나의 연작처럼 읽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극적인 사건의 전개보다는 일상 속에서 감지되는 작은 변화와 관계의 단면에 주목한다. 사라진 사람을 찾거나, 누군가의 유서를 접하거나, 관계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상황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고독과 불안 속에서도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를 과장된 감정이나 낙관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서술은 결국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그녀들>은 대학 강사 영서의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서는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게 하지만 이 과정이 일부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받아 들여지며 인권위원회에 신고를 당하게 된다. 강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영서는 면담을 거치고, 결국 학생들 앞에서 해명과 함께 수업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학생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되고 수업은 점점 부담과 긴장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이후 영서는 공황 증상을 겪을 정도로 불안이 심화되고 강의와 일상 모두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과거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된 상태로 남아 있다. 소설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영서의 내면에 이미 자리하고 있던 균열을 드러내며 그가 왜 이처럼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후 전개에서는 영서의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며 그가 관계 속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 과정이 드러난다. 윤선배의 연락을 계기로 그는 자연스럽게 시인 오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한때 가까웠던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흐트러졌는 지를 되짚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던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미묘한 거리감이 생기고, 특히 자신을 제외한 채 이어진 관계는 영서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남겼다. 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는 타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일정한 선을 유지해왔던 자신의 태도 또한 인식하게 된다.

현재의 영서는 여전히 타인과의 만남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약속을 앞두고도 망설이고 결국 자리에 나가면서도 끝까지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과의 관계 역시 가까이 있으면서도 충분히 닿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그는 스스로 감정을 구분하고 통제하려 애써 왔지만, 실제로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한 번 시작된 감정은 이어지고 겹치며 점점 커져가고 그 속에서 영서는 점점 더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그가 왜 관계 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멀어지게 되었는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이처럼 소설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결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영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책임감과 피로, 연민과 거리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가까워지려 했던 시도들이 오히려 균열로 이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어떤 순간에는 상대의 부재가 상실이 아니라 해방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의 양가성은 영서의 내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영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시 짚어보며 그것이 단순한 분노라기보다 잃어버린 관계에서 비롯된 슬픔과 애착에 가까웠음을 인식하게 된다. 타인을 향해 기울였던 마음이 있었기에 그만큼의 흔들림도 뒤따랐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 끝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거나 멀어지는 관계도 존재할지 모른다. 이러한 인식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키며 소설이 남기는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불안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작품 속 인물들은 끝내 완전히 회복되거나 단단해지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타인을 향해 시선을 두고, 사소한 말과 행동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가까스로 이어간다. 가까운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은 한편으로는 불안을 키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관계가 지닌 여러 층위의 의미를 보여주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내미는 순간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삶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