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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의 소리 - 나는 달리기보다 버티고 서는 법을 배웠다
조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마음의 소리>로 너무나 유명한 조석 작가의 첫 에세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네이버 웹툰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한국 웹툰의 흐름을 만들어 온 저자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쓰게 된 첫 에세이이다. 한국 최장수 연재, 누적 조회 수 70억 회라는 기록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그의 또 다른 이력은 20년간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은 바로 그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작업의 리듬과 일상의 축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은 작품 해설이나 성공담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개그 만화 작가로 살아오며 마주한 일과 삶의 태도를 짧은 글들로 압축하여 담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마음의 소리〉를 비롯해 〈문유〉, 〈조의 영역〉, 〈행성인간〉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꾸준한 마감과 반복된 선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웹툰 속 웃음 뒤편에 존재했던 저자 개인의 사고방식과 작업 환경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정리한 이 책은 조석 작가 뿐만 아니라 조석이라는 사람을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게 하여 책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책을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프롤로그의 제목은 바로 ‘슈욱 쾅’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슈욱 쾅’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 표현은 만화에서는 한 컷의 그림과 효과음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장면이지만 글로 옮겨지는 순간 세밀한 설명과 선택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작업이 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그동안 당연하게 사용해 왔던 그림의 언어와 새롭게 마주한 글의 언어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슈욱 쾅’은 곧 만화가로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글로 풀어내야 하는 저자의 현재를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사고하고 표현해 왔던 장면들을 오롯이 문자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비로소 글로 이야기를 만들어 온 이들의 작업이 얼마나 치열한지 체감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작가로서의 성과를 정리한 기록이 아니라 만화를 그려온 시간과 그 속에 쌓인 생각들을 하나씩 언어로 옮겨 보려는 시도라고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을 만들어 온 조석 작가의 또 다른 출발점이자, 그의 진짜 마음의 소리를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남긴다.
그리고 이 책의 제일 처음으로 실린 <콘셉트가 길어지면 본질이 된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초창기 작업 태도를 '열심히 하는 척’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데뷔 당시 그림 실력에 대한 평가와 업계의 냉담한 시선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상황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만화를 그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를 연기하듯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더 많은 컷을 그리는 척, 만화를 사랑하는 척, 독자에게 감사한 척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척’이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자는 ‘척’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국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된 노력과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완성된 재능이 아니라 버티며 쌓아 온 시간의 무게가 지금의 조석 작가를 만든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방영된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우승한 최강록 요리사가 했던 말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좋아하는 척, 잘하는 척을 하며 계속 손을 움직이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이야기처럼 이 글은 성실함이 어떻게 개인의 본질로 굳어지는 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앞선 글이 성실함이 하나의 태도로 굳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여전히 어려운 것>에서는 저자가 일을 대하는 또 다른 기준이 드러나서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작업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특히 어려운지 따지는 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들도 똑같이 겪는 어려움이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고, 결국 해야 할 일이라면 판단보다 실행이 앞서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저자는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잘 못하는지를 굳이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모든 과제는 피할 수 없고 차라리 모른 채 손을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더 알수록 더 자유로워진다’는 통념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 이후 오히려 스스로를 제한하게 되었고, 타인의 평가와 업계의 기준을 알게 되면서 더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못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 그 인식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을 알고 판단하게 되지만, 그 정보가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요즘 나 역시 깨닫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한 웹툰 작가의 성공 서사가 아니라 한 직업인이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끊임없이 평가받는 환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를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회 수와 별점, 댓글이라는 외부의 잣대 속에서도 자신이 세운 기준을 놓지 않으려 했던 태도는 화려한 결과보다 과정의 밀도를 다시 보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앞서가는 법보다는 계속 서 있는 법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재능이나 요령보다는 버티는 힘, 그리고 그 버팀을 가능하게 한 일상의 태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장르를 넘나든 작업들과 실패와 불안,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선택들은 모두 특별한 결단이라기보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했던 현실적인 판단에 가까워 더욱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창작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을 오래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동료,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저자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은 저자 특유의 웃음을 만들어 온 작가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긴 연재를 중단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읽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