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다정한 말
수정빛 지음 / 부크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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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거창한 위로나 극적인 변화 대신, 일상 속에서 오가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를 담담하게 되짚어주는 에세이이다. 수정빛 작가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책은 기억 속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언어의 흔적을 따라가며 상처와 위로가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과 익숙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하여 다정한 말이 감정을 잠시 달래는 역할을 넘어 삶을 다시 이어 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책이 담고 있는 다정함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감정을 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더욱 인상적이다. 아픔을 없애려 하기보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말이 우리 곁에 놓일 수 있을까. 저자는 “잘 먹고 잘 자라”와 같은 평범한 언어들이 반복될 때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회복시키는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순간의 위로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언어로 남아 삶을 정돈하도록 돕고 있기에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건네며'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말의 힘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장면들과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순간들, 그리고 쉽게 꺼내기 어려운 아픈 기억들까지 모두 삶을 따라다니며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그 기억들 곁에는 언제나 말이 있었다는 거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한마디는 삶을 버티게 했고, 또 어떤 말은 오래 남아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국 우리를 흔들고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기억이자 단 하나의 말이었다는 깨달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바로 그 언어의 힘에 주목한다. 아픈 기억을 단번에 지워 내는 말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언어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상처를 조금씩 덮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정한 말은 타인을 향한 위로에만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건네는 작은 말들이 어떻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삶에 다정을 불어넣는지를 보여 주며 결국 다정한 언어가 누군가의 하루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전한다.


책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표제작인 <나를 살리는 다정한 말>은 저자가 오랫동안 붙잡고 살아온 감정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와 차별적인 시선 속에서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정환경이 평가의 기준이 되고, 주변의 가벼운 말들이 정체성을 규정하던 시간 속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목표를 이루는 방식으로 삶을 버텨 왔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스스로를 지켜 주기보다는 과거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살리며 고통을 연장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를 실제로 변화시키고 회복으로 이끈 것은 분노나 복수가 아니라 다정한 사람들이 건넨 짧고 담담한 말들이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까”와 같은 문장들은 상처를 자극하지도 감정을 부추기지도 않았다. 대신 오래 남아 삶을 다시 붙잡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고통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덮어 주는 다정한 언어임을 깨닫게 만든다. 


책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가장 공감되었던 글은 <어른도 그래도 돼>였다. 이 글에서 저자는 성장 과정에서 ‘어른스럽다’는 말이 어떻게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는 기준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속이 깊다는 평가를 받아 왔던 저자는 시간이 흐른 뒤 그 말들이 아이에게 요구된 과도한 성숙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슬픔이나 힘듦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삼키는 태도가 미덕처럼 여겨졌던 경험은, 결국 억눌린 감정이 성인이 된 이후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 저자는 그 과정을 통해 회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차분히 짚어 나간다. 상담과 기록, 독서 등 다양한 시도를 거친 끝에 도달한 핵심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기쁨뿐 아니라 슬픔과 분노 역시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어른이 된 이후 도달한 결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이 글의 메시지는 더욱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이 책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의 의지나 강인함 때문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 건네받은 다정한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거창한 해답이나 특별한 조언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은 쉬어도 돼”, “그 정도면 충분해” 같은 짧고 평범한 말들이 흔들리던 마음을 붙들어 주며 완전히 주저앉지 않게 만든다.

책은 직접적인 위로를 제공하기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잘 해내지 못한 하루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애쓰지 않는 선택 역시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다정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오늘의 말과 태도로 실천해야 할 언어가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서 받은 다정이 또 다른 다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게 하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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