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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정문정 지음, 피도크 그림, 천근아 감수 / 서교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제목에 끌려 읽게 된 그림책이다. 이 책은 사소한 사건 하나가 하루 전체의 의미를 규정해 버리는 아이의 사고방식을 차분하게 짚어 보게 한다. 아이가 겪는 하루의 경험 그 자체보다, 그 하루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는지가 감정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망이나 좌절이 ‘오늘은 나쁜 날’이라는 단정으로 굳어지는 과정은 많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반응이며, 이 책은 바로 그 판단이 형성되는 지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는 방법이 아니라 그 감정이 하루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힘이다. 하루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한 가지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갖도록 이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루를 되짚어 보는 태도, 즉 회복탄력성의 출발점을 일상의 언어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듯 싶다.
책은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꽈당 하고 넘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새 옷에 흙이 잔뜩 묻은 것을 보고 놀라 재빨리 일어나 손으로 옷을 털어 보지만,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어 친구와 차례를 정해 인형놀이를 하기로 약속하고 함께 놀던 중, 자신의 차례가 오자 친구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화를 내며 인형을 놓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친구는 아이를 세게 밀치기까지 한다. 연달아 벌어진 일들에 아이는 크게 속상해한다. 넘어져 옷이 더러워진 일도, 친구와의 다툼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오늘은 나쁜 일만 가득한 하루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결국 “오늘은 정말 나쁜 날이야”라고 말하며 화를 내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후가 되어 아이는 선생님이 내준 한글 퀴즈를 풀다가 아깝게 한 문제를 틀리고 만다. 분명 알고 있던 글자였기에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더욱 속상해진다. 아쉬운 마음이 커진 아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만다. 연달아 이어진 일들에 마음이 무너진 아이는 “오늘은 정말 나쁜 날이야!”라고 말하며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이런 아이 앞에 어느 순간 시계 요정이 나타나 질문을 던진다. 왜 오늘을 자꾸 나쁜 날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요정의 안내에 따라 아이는 흘러간 하루를 다시 떠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속상했던 순간들만 떠오르지만, 기억을 더듬을수록 그 사이에 놓여 있던 다른 장면들이 하나둘 생각해내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하루의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나쁜 일은 일어나지만 그것이 하루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시선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아이가 하루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의 감수를 맡은 천근아 교수는 이 작품을 두고,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힘이야말로 감정 발달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다시 정리될 수 있는 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책은 아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야 할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대신 그 감정을 인정한 뒤 하루를 다시 바라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실망이나 좌절이 반복될 때 아이는 하루 전체,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다른 기억과 경험을 함께 떠올리며 시선을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연습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마음이 다치는 아이, 작은 실패를 오래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전부는 아니라는 깨달음은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루는 힘을 기르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잠들기 전, 이 책과 함께 하루를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은 아이에게 깨달음과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제공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