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드는 커다란 귀 - 나의 경청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사회성 그림책
허은미 지음, 소복이 그림 / 다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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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말을 잘하는 아이 보다 잘 들어주는 아이가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지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사회성 그림책이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질수록 또래의 목소리에는 둔감해지기 쉬운 오늘의 아이들을 배경으로 이 책은 사회성의 출발점을 경청이라는 구체적인 능력에 놓고 있다. 말하기 기술이나 규칙을 가르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태도가 관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지를 이야기로 보려주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그리고 책은 내 말부터 하고 싶어 하던 아이가 커다란 귀를 얻게 되면서 말의 내용뿐 아니라 그 뒤에 숨은 감정과 마음을 듣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이 변화는 단번에 이상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고,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허은미 작가님의 서사는 경청을 도덕적 훈계가 아닌 경험의 축적으로 제시하고, 소복이 작가님의 그림은 표정과 색감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듣는 태도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여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은 사회성을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관계가 실제로 어떻게 열리고 유지되는 지를 세밀하게 보여 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바로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닮은 주인공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나’는 듣기 싫은 말이 들리면 귀가 저절로 접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다. 이 능력 덕분에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선생님의 말씀은 제대로 들리지 않으며 친구들의 이야기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아이의 모습은 주변의 말이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자기 말에만 집중하는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 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귀를 접은 채 집을 나서던 아이는 뜻밖에 이상한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는 아이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지지만 귀가 접힌 상태의 아이에게 그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녀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이상한 마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이는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마녀를 관찰하게 된다. 마녀의 집 앞에는 “뭐든지 들어 드립니다. 누구나 들어 드립니다. 언제나 들어 드립니다. 방문 및 견학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 아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마녀의 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들어갈 때는 표정이 굳어 있거나 어딘가 답답해 보이던 사람들이 나올 때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간다.

그 변화가 궁금해진 아이는 마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지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한다. 마녀는 크게 말하지도 조언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대신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한다. 아이는 마녀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 만으로 사람들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엄마의 심부름으로 옆집에 가게 된 아이는 마녀가 건넨 차를 마신 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이 말은 특별한 설명도 없이 툭 튀어나오지만 그만큼 오래 눌러 두었던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녀에게 털어놓은 이 쓸쓸한 고백은 소통에 서툴러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아이들의 속마음과 겹쳐서 울컥해졌다.흔히 말을 잘하고 자기 표현이 뛰어나야 친구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관계의 깊이가 결국 다정하게 들어 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짚고 있어서 참 인상적이다. 판단 없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 앞에서 아이는 비로소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고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이후 아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는 너무나 궁금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아이가 얻게 되는 변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


책은 끝까지 ‘경청’이라는 태도에 집중하고 있다. 마녀의 조언을 통해 아이는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방법을 차분히 배워 간다. 이는 막연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실제로 관계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제시된다. 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지만 분명하고, 아이가 경청의 즐거움을 알게 되자 관계는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친구들이 곁에 머무는 이유도, 특별한 말솜씨가 아니라 다정하게 들어 주는 태도에 있음을 이야기로 보여 주어 더욱 공감이 가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지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로 끊임없이 연결된 듯 보이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듣기가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가정과 교실에서 반복되는 갈등 역시, 대부분은 제대로 듣지 못한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시근 깨달아 본다. 책은 어른인 우리에게도 아이에게 잘 들어라고 말하기보다 함께 눈을 맞추고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먼저임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를 가르치려 들기보다 관계가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그림책으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마음을 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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