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비가 내리면 창비아동문고 349
신주선 지음, 방새미 그림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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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환경 문제는 흔히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여겨지지만 동화는 이러한 문제를 어린이의 시선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끔 하며 더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낸다. 신주선 작가의 동화집인 이 책은 해양 오염과 산림 훼손, 동물 살처분처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생태적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환상적인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2019년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이후 7년 만에 발표된 이번 동화집은 생명과 환경에 대한 저자의 지속적인 관심을 여섯 편의 이야기로 묶어서 동화를 통해 현실을 더 깊게 성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은 교훈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이야기 전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바다 생물의 탈출을 그린 모험담, 동물 구조와 살처분을 다룬 상상력 있는 설정, 플라스틱과 개발 문제를 비틀어 바라보는 장면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절제된 문장과 균형 잡힌 유머는 생명의 가치와 회복의 가능성을 차분히 드러내며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환경 문제를 자기 몫의 질문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고 있다.


책의 표제작이자 제일 처음 실린 <바다 비가 내리면>은 한밤중 낡은 아파트에 내리는 낯선 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 나가 창문을 닫을 까 고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퍼지고 창밖에는 공중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해파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과 바다가 뒤섞인 이 장면에서 주인공 나는 자연스럽게 하늘 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곳에서 바다 생물들의 무리와 가오리 등에 올라탄 정체불명의 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년은 자신을 용왕의 아들이라고 밝히며 인간의 도시에 갇혀 있는 바다 생물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목적지는 아쿠아리움으로, 그곳에 친구가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길을 아는 인간으로서 이들의 안내를 맡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큰 거북의 등에 올라타 도시 위를 이동하며 바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만 가능한 이 특별한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바다 비는 용왕의 아들이 오랜 시간 준비해 만들어 낸 것으로 바다와 땅의 경계를 잠시 허무는 장치로 작동한다. 동화는 이 설정을 통해 바다 생물들이 인간의 공간으로 오게 된 이유와 용왕의 아들이 향하는 목적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어느 새 책에 폭 빠지게 만든다.

이야기는 한 아이의 모험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만든 공간 속으로 밀려 들어온 바다 생물들의 처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서 아쿠아리움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생명이 분리되는 장소로 등장하며 용왕의 아들이 친구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는 설정은 인간 중심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이어 주는 바다 비는 두 세계의 경계를 잠시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로 보이지 않던 생태적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여정에 동참한 바다 생물들은 각자 잃어버린 존재를 안고 있으며 이들의 침묵은 이야기의 무게를 더한다.

그리고 동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모든 문제가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아서 더 인상적이다. 여전히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생명이 남아 있고 주인공 나가 다시 바다 비를 부르는 장면은 현실의 생태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저자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는 바다 생물들이 왜 인간의 영역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만든 책임은 어디에 있는 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은 여섯 편의 단편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질문을 공유하며 이어지는 구성으로 완성된다. 바다와 숲, 동물과 도시라는 각기 다른 무대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생명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 지를 계속하여 환기시킨다. 저자는 오염과 개발, 살처분과 전시 같은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상상력에 기반한 설정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이야기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강조하는 바는 생명이 관리되거나 보호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 주체라는 점이다. 이야기 속 존재들은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며 인간 중심의 질서를 흔든다. 또한 저자는 명확한 결론이나 행동 지침을 제시하기보다독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며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린이에게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어른에게는 익숙해진 현실을 재고하게 만들며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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