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유석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판사에서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했던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한 한 개인의 고민과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법관으로 살아오며 사회 정의와 시스템의 작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특히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 내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직접 목격하면서 결국 법복을 벗고 전업 작가라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다. 책은 저자의 모든 결심들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안정된 직업을 내려 놓기까지의 망설임과 조직을 떠난 이후 맞닥뜨린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새로운 직업인 드라마 작가로서 겪는 시행착오까지를 정말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사회적 지위나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재정비하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는 단지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다.


책은 익숙한 삶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한 한 개인의 깊은 성찰과 실천의 흔적을 아주 솔직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20년 넘게 재직했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 발을 들였다. 저자는 23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며 익숙하고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고 낯설고 불확실한 삶에 발을 들였다. 그 결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고, 조직의 기대와 자신이 믿는 가치 사이에서 균열을 느낀 그는 더 이상 법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법복을 벗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인 ‘나로 살 결심’은 법률 용어인 ‘결심’이 재판을 종결하는 순간을 의미하듯 저자는 스스로의 첫 번째 인생을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호한 선택을 표현하고자 한 표현이다. 초기에 고려했던 ‘세컨드 라이프’라는 제목은 외형적인 변화만을 담아내는 듯해 폐기되었고 오히려 세렝게티 초원에서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전 끝없이 망설이던 장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 했던 시간들을 담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감상적인 포장이 아닌, 현실을 밀고 나아가는 단단한 의지로 완성된 기록을 아주 담담하게 담고 있다.

책의 1부 <첫번째 삶과의 작별>에는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한 개인이 조직 속에서 느낀 현실적 괴리와 그로 인한 선택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법관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조직 내에서 반복되는 비합리적인 결정과 위계적 분위기 속에서 점점 회의감을 느낀다. 특히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그는 조직에 대한 기대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상을 품고 입직했지만 시스템이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는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직 이후의 삶은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일과 역할의 방식이 바뀌었다. 판사로 일하면서 병행해오던 글쓰기는 취미에 가까웠으나 드라마 작가로 이어진 것은 본인의 경험과 관찰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다. 다양한 사건과 사람을 다뤄야 했던 판사의 업무는 결국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도 일정 부분 유사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그 변화가 갑작스러운 결단이 아니었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 자신이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이 체제 내부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의 발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했던 칼럼이나 유머를 곁들인 비판 역시 결국 영향력을 가지기엔 한계가 있었고 스스로를 궁중의 광대에 비유한 표현은 그 판단의 결과라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2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에서는 새로운 삶에 발을 들인 후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응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직의 틀 안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아오던 저자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막연한 자유가 아닌 통제되지 않는 시간과 불확실한 환경이었다. 수입 관리, 창작의 부담, 체력 저하, 심리적 기복 등 이전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과제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그에 대한 해답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맡겨진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그간 생각해온 ‘자유로운 삶’의 이미지와 실제가 다르다는 점을 점차 체감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자유를 바라며 떠나온 삶이 오히려 새로운 구속을 자초하게 된다는 인식이다. '첫번째 삶에서는 없는 시간을 쪼개 글도 쓰고 여행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무의미하게 낭비하다가 결국은 또 마감에 쫓겨 바쁘게 산다'는 저자의 고백은 일정과 규율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자유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잘 보여준다. 자율적인 삶이 반드시 효율적인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자유조차도 관리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부담이 된다는 점을 저자는 냉정하게 짚고 있다. 결국, 두 번째 삶도 이상적인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분투라는 점에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은 단절이 아닌 연속이었다. 저자는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법정에서 다뤘던 수많은 현실의 갈등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로서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상업성과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며 그는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불완전한 정의, 타협과 연대의 필요성은 모두 그가 판사로서 고민해왔던 주제들이다. 드라마 <프로보노>는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며 결국 그는 자신이 잘 알고 깊이 생각해온 주제만이 진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전직 판사의 경력, 드라마 작가로의 전업, 삶의 방향 전환 같은 외형적인 변화보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동기에 자기애나 인정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는 지까지 면밀히 성찰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열망보다 스스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내면의 욕망을 인정하는 대목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깊다. 그는 결국 자신의 첫 번째 삶이 두 번째 삶을 가능하게 했고 실패와 불안조차 삶을 성립시키는 요소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거창한 인생 해법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환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성찰의 기록에 가깝고 그래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유보된 질문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변화 이후에도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한 태도로 이 책을 완성했고, 그렇기에 그가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들을 써나갈지 궁금해진다. 드라마 작가로서, 글 쓰는 개인으로서, 또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의 다음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