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실수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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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속 "나는 양의 실수가 아니라 실수로 태어난 음수야"라는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살인자의 쇼핑몰>의 강지영 작가의 신작으로 서늘한 서사 속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든다. 소설은 주인공 유양이 살해된 직후 다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숨이 멎었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그녀의 상태는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소 낯선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기이한 설정은 단순한 스릴러적 장치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는 자라는 역설을 통해 삶과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야기는 유양이 자신을 죽인 킬러 단화와 함께 누가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는가를 추적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넘어 서로의 삶을 교차하며 인간 내면의 욕망과 공포를 드러낸다. 저자는 책 속 인물들의 뒤틀린 심리와 윤리적 갈등을 통해 존엄이란 과연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이 책은 전작 <살인자의 쇼핑몰>에서 보여준 저자 특유의 서사적 긴장감과 인물 구축 능력을 한층 심화시킨 듯하다. 살인과 정체성의 전복, 그리고 대체된 삶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리고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긴박한 사건 전개 속에서도 저자는 살아 있음의 의미를 끝까지 탐색하며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진실을 드러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이야기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생명을 한낱 숫자로 환산해버리는 냉혹한 현실에서 시작된다. 병아리 두 마리에 4천 원, 구피 한 마리에 천 원, 햄스터 한 마리에 4천 원. 그렇게 싸게 팔리고 쉽게 버려지는 생명처럼 주인공 유양의 삶도 헐값으로 치부된다. 6년 차 웹디자이너지만 연봉은 2,800만 원, 일터에서는 열정보다 비용이 먼저 계산된다. 사장은 소리치고, 동료는 울고 유양은 조용히 짐을 싼다. 값싼 존재는 언제나 예고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그녀는 그렇게 회사를 떠난다.

그리고 그날 밤, 유양은 바닷가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여자를 마주친다. 그녀를 따라오던 쥐색 코트 차림의 낯선 여자는 주저 없이 유양의 목을 찔러버린다. 피가 터져 나오고 몸은 쓰러지지만, 그녀는 완전히 죽지 않는다. 심장이 멈췄는데도 의식은 또렷하고 감각은 선명하다. 모래의 거친 촉감, 피비린내, 매서운 바람까지 말이다. 세상에 죽음조차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유양을 공격한 여인은 바로 단화이다. 단화는 누군가의 의뢰로 유양을 학습해온 킬러였다. 신분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들은 유양은 오히려 단화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을 죽이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면 자신의 삶을 넘겨주겠다고 말이다. 죽은 자와 살인자가 한 팀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며 더욱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기이한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아닐까.

소설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비춘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과 생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작품이 겨냥하는 것은 훨씬 깊고 불편한 인간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을 가진 유양, 신분을 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단화, 그리고 생명을 거래하듯 다루는 인물들까지. 그들은 모두 현실의 어두운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삶을 잠식한다.

이 기묘한 설정은 단순한 스릴러의 장르적 장치가 아니며 오히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섬뜩한 진실들이 독자를 끝없이 흔든다. 살아 있기 위해 타인의 삶을 훔치고 사랑을 위해 거짓된 존재가 되며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감내하는 모습들은 읽는 내내 불쾌할 만큼 현실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더욱 또렷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서늘한 긴장감과 도덕적 딜레마를 교차시킨다. 이후 이어지는 유양과 단화의 여정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자 동시에 정체성과 구원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들은 참 숨가쁘면서도 섬뜩하기 그지 없다. 두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오는 섬뜩한 장면들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끝내 그 세계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책의 진가는 바로 그 불편함에 있다. 저자는 폭력과 절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만 그것을 단순히 자극이 아닌 사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듯하다. 삶의 의미, 인간의 윤리, 존재의 경계라는 근본적 질문이 이 책 곳곳에서 제기되고 그 질문은 깊이 파고들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독자는 후반부에 펼쳐지는 섬뜩한 진실에 몸서리치면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과 연민, 생존과 소멸의 모순을 아주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역설을 통해 저자는 냉혹한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랫동안 되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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