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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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시인과 평론가가 함께 썼다는 점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기억과 공간,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성찰한 에세이이다. 열린책들의 <둘이서> 시리지의 세번째 책으로 시인 백가경님과 문학평론가 황유지님이 공동 집필하였다. 두 사라은 각자의 시선과 언어로 사회적 참사, 역사적 공간, 그리고 잊혀진 고통의 현장을 다시 찾아가 그 의미를 되짚는다. '관'이라는 키워드는 공간이자 연결의 지점이며 관통은 그 안을 직접 지나며 경험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뜻한다. 제목에 사용된 '-되기'는 들뢰즈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타자의 자리에 직접 놓아보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 책은 단순히 사회적 사건을 기록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인천의 성냥공장과 동일방직, 의정부의 뺏벌, 안산과 이태원, 광주 등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쌓인 장소를 직접 가 걸어보고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적 기억에 대해 말하고 해석해낸다. 또한 이 여정은 도시 공간을 사회 구조 속에서 분석하고 문학적 언어를 통해 치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로 이어져 깊은 울림을 전한다.


책은 ‘관’과 ‘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삶의 구조와 시간을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관은 연결의 공간적 형태다. 상자, 건물, 지하도, 수도관 등 다양한 형태로 도시 곳곳에 존재하며 인간의 삶을 물리적으로 지탱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망을 은유한다. 반면, 통은 시간의 흐름, 정서적 연결, 그리고 고통의 감각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관이 공간의 층위를 구성한다면 통은 그 공간을 지나간 이들의 서사와 정서를 담는 시간적 층위이자 감각의 흐름이라 하겠다. 특히 '산 자의 발아래에는 많은 죽음이 있다'는 문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단지 현재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과 상흔이 켜켜이 쌓인 장소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땅 아래 감춰진 역사와 죽음은 단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회 구조와 정서적 결핍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표가 아닐까. 최근 반복된 사회적 참사들인세월호, 이태원, 광주 이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며 우리가 잊고 있던 그 장소와 그 이야기를 하나씩 일깨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한국 사회가 이태껏 외면하거나 미뤄왔던 공동의 애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서 사회는 얼마나 침묵했으며 우리는 그 고통을 어떻게 소화하거나 외면해왔는가? 저자가 도시의 ‘관’을 따라 걷고, 그 ‘통’을 통해 고통을 기억하며 기록하는 행위는 바로 이 부재한 애도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문학적 실천이 아닐까. 저자는 장뤼크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 개념을 인용하며,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가 반드시 완성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란 언제나 불완전하고, 그 안에는 타자를 배제하는 구조적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완성되지 않을 공동체’ 즉, 서로의 고통을 기억하며 연결될 수 있는 열린 공동체를 요청한다. 이는 단지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통을 인지하고, 감당하고, 애도할 수 있는 사회적 가능성에 대한 문학적 제안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도시와 기억, 죽음과 고통을 관통하면서도 그 관통의 끝에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기억할 수 있는 지를 묻는다.


책은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공동체의 기억을 되짚고개인의 서사를 교차시켜나간다. 이 중 나에게 가장 깊이 있는 울림을 전하는 장면은 안산과 세월호, 그리고 기억교실을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참사 이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안산을 방문하게 된다. 긴 시간 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죄책감은 4.16기억교실을 직접 찾으며 깊은 감정의 토로로 이어진다. 텅 빈 교실, 2014년 4월에 멈춘 달력과 시계,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책상과 액자, 부모의 편지, 친구들의 메모들. 이 공간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우리 사회가 이태껏 끝내 하지 못했던 애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기억교실에서 느낀 감정들을 자신이 겪은 교실의 기억과 연결시킨다. 폭력적이었던 학창 시절, 경쟁 중심의 교육 시스템, 부모와 사회의 끊임없는 ‘더 멀리 가라’는 요구들 말이다. 그 기억들과 단원고 학생들이 남긴 교실은 교차하며 '교실'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억압과 슬픔, 그리고 때로는 추모와 연결의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기억교실’의 게시판에서 발견한 박노해 시인의 시 <길 잃은 날의 지혜>와, 여전히 가방에 매달고 있는 작은 노란 리본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리본을 보는 순간마다 세월호 참사를 단지 기억하는 것을 넘어 지금도 옳은 일을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마음이 든든해진다고 고백한다. 애도는 잊지 않는 일이며 기억은 곧 행동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문학이 어떻게 사회적 실천이 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말한다. 낭독회에서 읽은 시, 교실 게시판에서 발견한 시, 그리고 누군가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머물다 가는 시. 그것은 눈물과 함께 고통을 감내하며 존재하는 자리이며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다. 저자는 304명의 아이들이 만들어 준 그 교실 안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배우며 살아가야 할 이유를 묻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사회적 재난의 현장을 단순히 기억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고 있다. 그 장소를 직접 찾아가고 그 속에서 감당되지 못한 상처와 불완전한 애도의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애도가 개인의 감정 차원을 넘어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곳곳의 장소에서 우리 사회가 감당하지 못했던 애도의 공백을 드러내며 그 부채를 어떻게 사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기에 ‘관내여행자-되기’란 결국 자신이 속한 공간을 다시 살피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책임의 감각을 유지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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