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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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이 책의 저자를 소개하는 띠지 속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뉴스 역사상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JTBC <뉴스룸> 최초의 여성 메인 앵커'라는 수식이 붙은 저자의 스스로 꿈을 향해 매일을 다르게 살아온 한 사람의 궤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서사는 빨래골이라는 투박한 이름의 시골 마을에서 자라난 소녀가 동대문 골목을 누비며 학비를 벌던 시간을 지나 뉴스의 최전선에서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기까지 여전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여정을 진솔하게 따라가고 있다.


저자 한민용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 속 앵커를 보고 기자라는 직업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홀로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방학마다 한국에 돌아와 옷가게와 맥주 판매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졸업 후 언론고시 스터디에서조차 연달아 탈락하였고 기대할 만한 자원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녀는 꿈을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과 같은 격동의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뉴스룸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앵커'라는 이름보다 더 넓은 삶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꿈을 쫓아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남기며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의 여정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책의 이야기는 한 청년이 저자에게 보낸 이메일 한 통에서 출발한다. ‘어릴 적부터 앵커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좇는 건 돈도 들고 욕심 같았다’는 그의 말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저자는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을 품었던 소녀였다. 빨래골이라는 이름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물 좋기로 소문났던 그곳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외부의 편견을 겪으며 자란 그녀는 언젠가 역사 속 장면들 한가운데 서 있기를 꿈꿨다. 고등학생 시절, TV 속 9·11 보도를 보고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저자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방학마다 귀국해 동대문 옷가게, 맥주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졸업 후 언론사 문을 두드렸지만 해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언론고시 스터디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연이어 탈락했다. 그 시절 자신은 그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여겨졌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로 이제껏 겉으로 저자를 지칭했던 화려한 수식어와는 너무나 다른 그녀의 삶이다. 진솔하다 못해 너무나 솔직한 저자의 이야기는 자꾸만 책 속으로 더욱더 빠져들게 만든다.


계속되는 탈락과 좌절 앞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와 같은 말로 자신을 위로하지 않는 저자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실패가 때로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무릎만 까지면 다행이지만, 뼈가 부러지고, 영영 뛸 수 없게 되는 실패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하며 스스로는 그런 실패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오히려 계속되는 실패 앞에서 '그럼 삼류로 가면 되지'라는 결심은 홧김에 내린 선택이었지만 저자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린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일류’ 언론사에 가지 않아도 좋았다. 중요한 건 어디서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국 저자는 작은 경제 전문 언론사에 지원해 첫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선택은 훗날 뉴스룸 앵커로 이어지는 여정의 첫 단추가 되었다. 넘어짐이 곧 배움이 된다는 말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텨보려는 저자의 의지가 더 크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단단한 선택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책에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부분은 저자가 수습기자로서 세월호 참사 현장 팽목항에 있었던 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 대목이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 오보에 안도했지만 곧 사실이 아님을 알고 무거운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 후 현장에서 마주한 유가족들은 울지 않았다. 저자는 ‘울면 아이를 놓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리고 저자는 자식처럼 키운 조카를 찾는 삼촌과 함께 시신 안치소에 동행하며 죽음을 목격하는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삼촌은 아이의 옷과 손 사진을 확인하고 주저앉아 오열했고 저자는 옆에서 그저 등을 두드려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끝내 눈물을 흘리지 못한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로 복귀한 뒤 집에 돌아와 무심코 280mm, 아디다스, 검은색의 동생의 운동화를 마주한 순간, 저자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팽목항에서 들은 신발로 아이를 찾는다는 말과 겹쳐지며, 비로소 감정이 터져버린 순간이었고 이 장면에서 나 역시 많은 눈물이 나왔다. 이는 기자로서의 기록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감정과 책임, 죄책감, 슬픔을 껴안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지금의 저자를 만든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을 덮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에필로그의 글들이다. 특히 임신한 몸으로도 끝까지 앵커석을 지킨 저자의 이야기는 더욱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낯선 ‘배부른 여자 앵커’의 모습 앞에 불편해 할 사람들을 걱정하면서도 결국 재킷을 풀고 불룩한 배를 드러낸 채 뉴스를 전한 그녀의 모습은 묵묵하고도 용기 있는 선택이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변하길 바래본다. 과거엔 감춰야 했던 여성의 몸, 배부른 채로 뉴스를 전한 여성 앵커의 모습은 분명 낯설었지만, 그 낯섦을 밀어낸 건 시청자의 따뜻한 시선과 격려였다니 이 얼마나 다해인가. 그 응원은 하나의 파문이 되어 더 많은 여성, 더 다양한 사람이 자기다운 모습으로 뉴스 앞에 설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뉴스와 시대를 기록한 기자의 이야기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쓸 있다는 확신을 전하는 책이다. 무리해서 견디라고 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다정하게 건네며 이야기의 다음 장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 이제 ‘앵커’라는 타이틀을 흘려보내고 두 생명을 품은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려 한다.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서 그녀도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나 역시 저자의 그 다음 이야기가 지금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즐거우며 따스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나도 또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이어갈 용기를 저자에게서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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