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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돌! 한국사 배틀
김대한 지음, 이리 그림 / 알키미스트 / 2025년 7월
평점 :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표지만 보면 마치 웹툰 한 편이 펼쳐질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는 <삼국지톡>의 이리 작가의 생생한 일러스트 덕분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만화책도 익숙한 역사책도 아니다. 이 책은 한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한 차원 다르게 만드는 형식 자체가 새로운 역사 교양서라 하면 딱 맞을 듯 싶다.
다산 정약용이 사회자가 되고 고대 삼국의 인물들이 직접 나서 논쟁을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형식도, 내용도, 신박하다. 정리된 정보 대신 인물들의 목소리로 펼쳐지는 격론 속에서 역사는 지나간 시간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장의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리고 총 14라운드로 펼쳐지는 각각의 이야기는 주제도 주제지만 논쟁에 참여하는 인물 자체도 신선하다. 예를 들어 연개소문과 김유진, 의자왕이 '삼국통일'을 두고 논쟁을 펼치다니!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다양한 관점과 시대의 논리를 함께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이 책은 정보를 나열하거나 흐름을 정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전달하는 대신 독자를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익숙했던 인물들을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고, 복잡했던 역사적 쟁점들에 대한 생생한 입씨름들은 역사를 알아가며 읽어내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책의 14개의 주제 중 인상 깊었던 두 번째 주제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해야 했을까?”에서는 고대 삼국의 통일을 둘러싼 다양한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책은 각 인물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 지를 간결하게 소개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토론에 참여하는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주장을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이 주제에 참여한 토론자로는 ‘통일은 어차피 신라!’를 주장하는 김유신과 최치원, ‘백제도 통일의 자격이 있다’는 입장의 의자왕, 그리고 ‘최강 고구려가 통일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개소문과 신채호가 등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시대에서 소환된 인물들이 각기 다른 논리와 가치관으로 삼국통일을 재조명하는 구성은 단순한 역사 설명을 넘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해야 했을까?”의 주제로 통일을 둘러싼 역사적 시선을 정면으로 충돌하는 데 여기서는 사회자 다산 정약용의 진행 아래, 김유신(신라), 연개소문(고구려), 의자왕(백제), 신채호(근대 지식인), 최치원(신라 유학자) 등이 참여해 통일의 명분과 책임, 각국의 전략과 현실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익숙하게 받아들여졌던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결론을 당연한 전제로 두지 않고, 고구려와 백제, 근대 지식인의 시각까지 불러들여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장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신라는 외교력과 인재를 바탕으로 통일의 주역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과 자주성을 내세우며 통일의 적임자였다고 맞선다. 백제는 멸망의 책임을 외세와 내부 분열 탓으로 돌리며, 신채호는 통일을 외세와의 결탁으로 비판하고 고구려 중심 민족통일의 이상을 제시한다. 각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시대와 입장을 반영하며, 독자에게 단순한 역사 해석이 아닌 사고의 확장을 유도한다.
특히 이 장의 마지막, 정약용의 정리 멘트는 이 토론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어낸다. 그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외세 의존, 불완전한 영토 회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산 정약용이 전하는 말은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는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이해해야 할 두 축이며, 역사 공부는 단순한 과거 정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친일 청산 문제를 통해,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과거를 바로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청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짚는다. 그것이야말로 과거를 직시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역사를 ‘거울’에 비유하며 지난 날을 돌아보고 겸손을 배우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교훈으로 삼자는 메시지를 전한 대목이다. 이 책은 과거의 인물들을 현재로 소환해 흥미로운 토론을 펼치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자가 오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성찰하고, 자신만의 균형 잡힌 시선을 갖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지 재미있는 역사책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논쟁 거리부터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까지를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뜨거운 대화를 통해 역사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독자 스스로 역사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각 장의 토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과거의 인물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은 특히, 역사가 왜 중요한 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역사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 현재를 돌아보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겸손하게 과거를 되짚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며 이 책이 끝까지 놓지 않는 메시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