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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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백은별 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청소년기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초능력을 지닌 소녀 윤슬과 평범한 소년 바다의 사랑이라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청춘의 아픔, 그리고 희망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좋아해”라는 짧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감정적으로는 평범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문장이지만 곧이어 드러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감성적인 회상과 달리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와 무거운 죄책감으로 전환되며 독자를 단숨에 몰입하게 만든다. 처음엔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되새기는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과거의 감정이 따뜻할수록 현재의 상황은 더욱 냉혹하게 대비된다. 초여름 밤의 풋풋한 설렘에서 병상에 누운 상대를 바라보는 공포감과 죄책감까지. 이 책의 짧은 도입만으로도 감정의 급격한 진폭을 보여준다. 주인공 윤슬은 그렇게 과거의 아름다움을 붙잡은 채 현재의 무력함과 마주하고 있다. "내 시간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문장은 단순한 표현이지만 정지된 감정과 흐르지 않는 일상,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감정을 더욱 공감하게 만든다. 단순한 로맨스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는 훨씬 더 복합적인 듯하다. 과연 이들에겐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첫 장면부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 윤슬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1학년이다. 어느 날 방치된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2학년 선배 바다는 바이올린 연주에 능하지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조용한 학생이다. 윤슬은 그와 처음 나눈 대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멈추게 되고 그날 이후 매일같이 도서관을 찾으며 그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선배, 우리 이름부터가 운명 같지 않아요?”라는 윤슬의 말에 “애냐. 운명 같은 걸 믿게.”라고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자연스럽고 섬세한 대사들이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을 잘 드러내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윤슬의 적극적인 감정 표현과 바다의 점진적인 변화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배경을 지녔음에도 점차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서사를 넘어 초능력자를 배척하는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 책임, 선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 년 전, 강력한 초능력자의 출현 이후 사회는 초능력자를 공공의 위협으로 간주하게 된다. 초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누구든지 연구소로 끌려가 실험과 고문 끝에 생명을 잃게 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혐오로 초능력자를 배척한다. 윤슬은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악용 가능성이 높은 이 능력은 사회에서 특히 위험하게 여겨진다. 그런 윤슬의 비밀을 알게 된 바다는 고민에 빠진다. 그는 초능력자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연구원을 부모로 두고 있으며, 과거에도 부모의 일로 인해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다. 윤슬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순간 바다는 혼란스러웠고,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과연 바다는 윤슬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바다와 윤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초능력을 이유로 차별받는 소녀와 그녀를 지키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다름’을 향한 사회의 배제와 두려움을 직시하게 만든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감정과 관계 속에서의 갈등,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 인물은 서로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외면받는 존재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들의 선택은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속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말은 모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일부에게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 작가이기 때문에 미숙한 결말을 썼다기 보다 청소년 작가이기에 오히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완벽한 결론 대신 성장과 이해,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결말이 더 긴 여운을 남기며 우리에게 더 깊은 고민을 이끌어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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