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에 아주 감명깊게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가 특별증보판으로 다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읽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유시민 작가가 새롭게 쓴 서문과 함께 존 스트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한 글도 추가되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서를 단순한 정보의 습득이나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과 감정을 담아내는 개인적 성장의 과정이라 일컫는다. 그는 '책은 세상에 나온 순간 독자의 것'이라는 말을 통해 독서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독자 각자가 고전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탐구하는 여정을 격려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처음 마주한 <죄와 벌>, 몰래 불을 켜고 읽던 <공산당 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에 대한 인식을 뒤흔든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대를 지나 다시금 자유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자유론>까지. 이 책 속 고전들은 저자의 삶과 시대, 그리고 사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은 왜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할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가?', '사실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나는 진정 내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가?' 등과 같은 여러 본질적인 질문들을 고전을 통해 던지며 독자인 우리의 삶의 방향과 가치를 되묻는다. 한 시대의 지성으로서 우리 사회에 늘 명료한 통찰을 던저온 저자가 청춘 시절의 독서를 다시 돌아보며 써 내려간 이 책은 그 자체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찰과 성장의 여정을 되짚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의 본문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 깊은 성찰의 여정임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다시 읽으며 주목하게 된 두냐와 소냐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두 인물의 존재가 나이를 먹은 지금,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는 그의 고백은 독서가 단지 내용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비범한 사람들’의 논리를 중심축으로 한 <죄와 벌> 속에서 저자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인 두냐가 더욱 빛난다고 말한다. 속물 루쥔에게 탐욕의 대상이었고, 허무주의자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병적 집착의 대상이 되었으며, 라스꼴리니꼬프의 친구 라주미힌에게는 인생의 반려자가 된 인물인 그녀는 단지 이야기 속의 조연이 아닌,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애정을 쏟은 인물이었다. 특히 루쥔과의 결혼 문제를 두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의 삶을 단호히 거절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냐의 말은 그녀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강인한 내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두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소냐와 같은 맥락에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소냐가 몸을 팔며 가족을 부양했음에도 두냐는 그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따뜻하게 인사한다. 저자는 두 여인을 도스토옙스키가 끝없이 선망하고 흠모한 ‘러시아의 평범하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해석한다. 유형지에 따라간 소냐가 죄수들에게 어머니이자 누이처럼 사랑받는 장면은, 두냐와 소냐가 결국 동일한 정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저자의 시각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단순히 문학적 분석을 넘어서 고전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의 본질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과거에는 스쳐 지나갔던 인물이 다시 읽는 지금에는 중심에 서게 되는 경험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깊은 감동이며, 우리가 고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펼쳐 들고, 그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대목이다. 그가 정리한 리영희 선생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고결하다. 진실과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리영희의 글을 읽으며 그 질문이 자신에게 던져진 것처럼 느꼈다고 고백한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했느냐. 관료화된 정당과 정부 안에서 비판적 지성을 잃지는 않았느냐.” 그 질문 앞에서 그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성찰을 게을리했던 순간들, 현실을 핑계로 진실을 외면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그는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왜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는 나 역시 그의 부끄러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지식인이란 단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실천에는 언제나 고통과 외로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리영희 선생이 살아온 길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고전이 던지는 물음에 답하는 저자의 고백을 통해 독자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번 특별증보판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시 읽고 쓴 글을 새로 추가하였다. 이미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자유론>을 인용해온 유시민 작가는, 왜 다시 이 책을 꺼내 들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국가와 정치의 풍파를 소화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 그 말처럼 <자유론>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현실을 해석하고 견뎌낼 수 있는 지적이고도 도덕적인 기준을 제공한다.


계엄령이 내려졌던 그 밤 이후, 우리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자유가 실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것임을 몸소 깨달았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는 어떤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본이며, 밀은 이를 명확하게 강조했다. 저자는 밀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겪은 위기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저력을 확인한다. 그는 밀의 말 속에서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를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고자 한다.

밀은 1859년에 쓴 책에서 마치 오늘의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하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밤을 지새운 사람들, 계엄의 국회를 막아섰던 시민들,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청년들, 그리고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를 향해 나아간 평범한 사람들. 유시민은 밀의 언어를 빌려, 이들에게 따뜻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이 말에는 나는 너무나 뭉클한 감동과 가슴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자유론>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는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며, 이를 지켜내기 위한 시민의 연대와 노력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그는 밀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특별증보판에서 저자가 <자유론>을 선택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고, 그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간곡한 당부이자 응원을 하기 위해서 아닐까.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한 가지 당부를 남긴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설서가 아니며, 자신의 시각으로 인해 책과 저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사람에게 책을 마음대로 쓸 권리가 있듯, 독자에게도 책을 마음대로 읽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자유롭게 읽고 각자의 감정과 사유로 받아들이는 독서의 기쁨을 일깨워준다.


책은 세상에 나온 순간 독자의 것이 된다. 다양한 삶의 경로를 거쳐온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혹은 그가 건넨 이 책을 따라 고전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의 해석에 꼭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독서란 결국, 저마다의 시선으로 고전을 새롭게 마주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 책은 15권의 고전들을 향한 한 사람의 치열한 성장과 성찰의 여정이자, 독자 스스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과 함께라면, 고전을 읽는 일이 단지 과거를 넘겨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여정이 될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