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을 나누는 기분 (시절 시집 에디션)
김소형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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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궁금해졌다. 시집의 제목에 왜 하필 '도넛'이 들어갔을까? 그리고 도넛을 나눈 다는 건 단순히 간식을 함께 먹는 일이 아니라, 서로 온기를 나누고,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것을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시를 함께 나눌 때의 기분처럼 말이다.


이 시집은 시를 알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시의 문턱을 낮춘 따뜻한 초대장과 같은 책이다. 20명의 젊은 시인들이 저마다 10대 시절을 떠올리며 써 내려간 60편의 창작 시는 우리를 처음 시에 설레였던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창비청소년시선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이 책은, 시와 그동안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에게 시심을 되살리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 해 줄 것만 같다.


도서부의 즐거움


말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는 누구도 너의 조용함이 지나치다고

나무라지 않을 거거든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고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길 좋아하는

도서관의 도서부원들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입을 다문 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를 지나며

네게만 들려주는 비밀을 고를 수 있다는 것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가장 말이 없지만

누구보다 빼곡한 문장이 머릿속에 출렁이고 있지

어디선든 생각에 잠겨 그 속을 유영할 수 있지


뒷자리의 누군가가 네 등을 두드리며

무슨 생각 해? 하고 물어 온다면


한 권의 근사한 책처럼

닫혀 있던 마음을 펼쳐

네가 가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지


p42 ~ p43


 이 시집에 실린 수록된 시들 중 조온윤 시인의 <도서부의 즐거움>이란 시는 유독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도서관 한 편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순간들, 책 속 문장들이 속삭이듯 마음 속으로 스며 들던 기억들. 이 시는 마치 그 때의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라는 첫 구절은 도서관이 품어주던 포근한 위로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도서부원들을 '풍경이 되기보다 풍경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책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 그런 경험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이 시를 읽으니 그 시간들이 다시 내게로 오는 듯 했다.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입을 열어 열 개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라는 구절은 책이 주는 기적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조용하지만 깊고, 보이지 않지만 풍성한 생각의 세계들. 그리고 마침내 뒷자리의 누군가가 '무슨 생각을 해?'라고 물어올 때, 책처럼 자신의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는 마지막 장면은 문득 책을 대하며 설레이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어 더욱 좋았다.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간에 있다고 믿는대. 현지 가이드 아만다가 말해 줬는데 이유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 때 기념품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야자수 껍질로 만든 필통을 만지다 네 생각이 났는데 이런 게 정말 마음인 걸까?


집에 놀러 온 조카에게 물어본 적 있었다. 해수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망설이다 작은 두 손을 가슴에 얹으며 가리켰다. 심장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대문자 T라고 소문난 친구가 마음이란 뇌에 있다고 큰소리치면서 뇌 과학 연구가 어쩌고저쩌고 말할 때 알아, 하고 듣는 시늉을 하며 하품하는 순간 깨달았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굣길 친구들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키링들

모두 눈 코 입을 찾은 마음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샌들에 달아 놓고 물웅덩이를 뛰어 들어가는 마음


비가 잔뜩 들어 있는 구름처럼 무거워지는 날엔 엎드려 잠만 자고 싶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면 높은 계단도 두 칸씩 뛰어 내려오는 일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오늘은 온종일 내가 계속 술래였다.


p64 ~ p65


그리고 이 시집에서 또 한편, 깊은 인상을 남긴 시는 서윤후 시인의 <마음은 어디에서 왔는지>였다. 마음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면서도 생생하게 적어 내려간 시를 읽으며, 문득 나 또한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시의 첫 문장은 마치 어린 시절의 숙제처럼 시작된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는 숙제가 있었다.' 이 질문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법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시인은 마음을 찾기 위해 여러 경험을 떠올린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마음에 간에 있다고 믿는다는 이야기, 조카가 가슴을 가리키며 마음의 위치를 짐작하는 장면,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뇌에 있다고 단언하는 순간. 하지만 그 모든 답을 지나쳐 결국 도달한 깨달음은 '마음은 몸 안에서 떠도는 거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떠도는 마음의 형상을 섬세한 이미지로 포착한다. 하굣길 친구들의 가방에 매달린 키링, 저마다 반짝이는 지비츠를 달고 물웅덩이에 뛰어드는 샌들, 비 오는 날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맑은 날엔 계단을 뛰어내리는 감정들. 마음은 그렇게 일정한 자리에 머무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쁘다가도 갑자기 무거워지고, 가벼워지기도 하며,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시인은 솔직한 탄식을 내뱉는다. '그러나 마음이 있어서 정말 귀찮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이 문장은 너무나도 솔직해서 오히려 위로가 된다. 마음은 우리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애가 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시는 그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자체가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시를 모아둔 시집이 아니라, 시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시인들이 이 시를 집필하며 어떤 기억과 경험을 소환했는지, 어떤 고민과 마음을 담아냈는지를 기록한 '시작 노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시를 통해 지난간 나와 대화를 나누고, 현재의 나를 위로하는 과정들이 이 시집의 시들에 담겨져 있다. 서윤후 시인은 시를 쓰면서 '여전의 나와 조금 친해진 기분'을 느꼈고, 양안다 시인은 '현재의 제가 위로 받았'다고 고백한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 때로는 낯설고 어색할지라도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이 시집은 조용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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