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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ㅣ 설자은 시리즈 2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평점 :
이 책은 정세랑 작가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 '설자은'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주인공 설자은은 남장을 하고 죽은 오빠를 대신하여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후, 금성으로 돌아와 망국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을 식객으로 들여 함께 사건들을 해결하다 왕의 눈에 듸여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집사부의 대신으로 임명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빈틈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예리한 통찰력과 냉철하면서도 비상한 두뇌를 가진 설자은은 따듯하고 사려 깊은 마음을 바탕으로 왕의 명에 따라 금성의 배후에서 무도한 이들이 꾸미는 음모와 진실을 파헤친다. 그녀는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악명을 얻기도 하고, 커다란 시련에 맞서며 한층 더 성장해 간다.
정세랑 작가는 이야기꾼답게 이 책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금성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7세기의 먼 과거를 배경으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미스테리와 모험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와 상상력을 결합한 소설에 그치치 않고, 시대적 분위기와 인간의 본성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독자들을 오랫동안 사로잡을 만한 장대한 서사를 담고 있다. 설자은의 성장과 활약이 어우러진 이 책은 누구라도 신라 시대의 생생한 풍경과 매력적인 모험담에 폭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자은은 왕으로부터 팔서당 중 말갈인들로 이루어진 흑금서당의 세 형제를 병사라 하사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걸마지, 걸마형, 걸마달'의 세 병사는 언듯 보아서는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닮은 세 쌍둥이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마의 고삐'의 이야기. 어느 금성의 한 곳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설자은은 부하들고 그 현장으로 가게 된다. 불이 사그러들고 난 뒤 잿더미가 된 집터에서는 참혹하게 타버린 네 구의 시신이 발견되느데, 그 중에는 어린아이 두 명도 포함되어있다. 단순한 화재로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고, 설자은은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한다. 그녀의 예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성의 또 다른 곳에서 불길이 거세게 일어난다. 이번에는 불타버린 현장에서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되며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이 끔찍한 연쇄 사건 이후, 금성의 저자에는 불귀신 '지귀'가 더러운 금성을 정화하기 위해 돌아왔다며 두려운 섞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지귀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지만 자은은 이러한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나선다. 자은의 믿음직한 동료 목인곤과 함께 불꽃의 배후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며 잇따른 비극 속에서 음모를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연 지귀라는 불귀신은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일까? 설자은의 치열한 추리와 냉철한 판단은 그 진실을 밝혀 나가기 시작한다. 설자은이 밝혀낸 진실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마침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후, 설자은은 그동안 헷갈려 했던 세 쌍둥이 형제 걸마형, 걸마지, 걸마달에게 더는 혼동하지 않을 거라고 단호히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와는 달리 세 사람은 그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이를 눈치챈 자은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진심을 전달하고 이해시키겠노라 조용히 다짐한다. 이 장면에서 설자은의 매력은 더욱 돋보인다. 자은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려는 인물이다. 날카로운 지성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따뜻함과 사려 깊은 배려를 잃지 않는 설자은의 인간미는 깊은 감동과 공감을 선하한다. 자은의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자은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지 단적으로 드러내며, 설자은이라는 인물이 가진 독특하고 매력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이야기 <탑톨이의 밤>과 <용왕의 아들들>에서도 설자은의 매력은 더욱 돋보이며 이 사건들을 통해 설자은은 성장하고 더욱 단단해지며 다음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안은영과 <시선으로부터의>의 심시선에 이어 정세랑이 탄생시킨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인 설자은. 7세기에 탐정이라는 개념은 없었겠지만 신라 탐정이라 부를 만한 설자은의 진정한 능력은 사건의 구조를 꿰뚫는 추리력이 아니다.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사람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이이다. 설자은이 다른 탐정들과 차별화하며 매력을 더하는 요소도 이 점에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설자은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가득하다. 능청스러운 미소 뒤에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망국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 천제적인 머리를 가졌지만 결핍된 윤리관을 지닌 설호은, 산학에 능하고 균형 잡힌 설도은, 화려운 아름다움과 강인한 내면을 지닌 산아.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주변을 사로잡는 왕까지. 각기 개성이 뚜렷한 이 인물들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얽히고 설키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설자은 시리즈'에 폭빠지게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1권에 이어 2권에서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설자은 시리즈' 다음 3권은 더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