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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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보통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 혹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쓰여진 기록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은 강한자의 위세와 승자의 기체가 역사를 움직이는 와중에도 굴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이들은 강한 승자가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한 목숨을 내던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강한 승자의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지 않고자 전력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혹은 일개 개인이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거대 조직, 국가, 시대의 불합리에 맞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강자를 상대로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언더독'들의 처절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는 눈길을 사로 잡을 수 밖에 없고 드라마틱하여 더욱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거인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생족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련에 맞선 핀란드, 미국에 맞선 베트남, 수나라에 맞선 고구려 등이 이에 속한다. 2장은 역사를 바꾼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로 아우슈비츠로 자진 입소한 비톨트 필레츠기, 3만의 중공군을 상대한 600명의 영국 글로스터 대대, 똥물을 뒤집어 쓴 동일 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촬영한 이기복 사진사 님이 이에 속한다. 3장은 한목숨 바쳐 강자에 맞선 약자가 주인공으로 은혜를 갚으려 몽골과의 전투를 불사한 시씨 가문 사람들, 생을 걸고 민중을 격동시킨 혁명가 등이다. 4장은 지혜롭게 대처한 경우의 이야기로 재능도 재능지만 사람에 대한 태도 역시 남다른 칭기시칸, 국방력을 강화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데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 등이 이에 속한다. 5장은 신념을 지녀 밑어붙인 자들의 이야기다. 나치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세러머니를 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축구 스타, 간토 대학살 당시 조선인을 지키는 데 앞장섰던 일본인 경찰서장 등이다. 작은 힘으로 세상을 뒤집은 승리의 순간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다보면 가슴이 나도 모르게 두근거리게 됨을 느끼게 된다.


스위스는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 나라잊만 유럽에서는 수백년 동안 가난한 나라로 손꼽히는 나라였다. 알프스 산맥의 첩첩산중에 자리잡아 농사나 장사를 하기도 힘들었던 스위치에서 '용병'은 일종의 특산품이었다. 불가사의한 전투력으로 휘황차란한 기사들을 압도하는 스위스 농민병을 주변국들은 눈여겨 보고 군대로 끌어쓰었다. 1527년 최절정기에 이른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자신의 비위를 거스른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응징하고자 군대를 일으켜 로마로 진격한다. 이때 교황을 호위하던 이들은 스위스 근위대였다. 스위스 근위대는 로마 방위전에서 수백명을 잃고 189명이 겨우 살아남아 클레멘스 7세는 용병들에게 너희들은 할만큼 했고 이만큼 해 준 것만도 고맙다며 살길을 찾으라고 한다. 이에 스위스 용병대는 "우리는 교황 성하를 지켜 드리겠다고 계약했고, 그 계약은 아직 유효하며 그 신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그리고 이 소수의 병사들은 구름처럼, 거인처럼 몰려드는 신성 로마 제국의 대군을 막어선다. 그 와중에 147명이 더 죽었지만 42명은 끝내 교황을 묘시고 탈출에 성공시킨다. 이렇게 신의를 지킨 스위스 용병대를 훗날 카를 5세는 보상금과 함께 로마 교황 근위대를 독일 용병으로 바꾸라고 강요하고 중간에 바뀌긴 했어도 로마 교황을 수호하는 이는 수백년간 스위스 용병이다. 이는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고용주를 배신하지 않고 신의를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며 이러한 힘의 워천은 자존감이었다. 그 어떤 압제도 자신들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돈을 받고 싸울지언정 한 치의 비겁이나 불신의 여지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자존감 말이다.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는 세계에서 손꼽히도록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96년 3월 1일 스스로를 골리앗 같은 거인이라 믿은 이탈리아 군은 다윗의 후예를 자처하는 에티오피아를 침격한다. 메델리크 2세의 에티오피아 군대는 서구 열강의 군대 만큼 근대적인 군대는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의 군대를 맞서 싸우는데 이 때 메넬리크 2세는 자신의 무력 기반, 즉 향후 지방 세력을 위압하는 데 비장의 무기인 정예 근위대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져 이탈리아군을 물리쳐 낸다. 상호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회전에서 아프리카 흑인 군대가 서구 열강 군대를 격파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메넬리크 2세가 이탈리아를 격파한 시기에 조선의 왕 고종은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고나을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이 일어났었다. 시인 랭보를 바보로 만들었듯 서구 열강 앞에서 교활하게 이익을 챙길 줄 알았던 메넬리크 2세와 무기상들에게 밥 먹듯 사기를 당하고 국익보다는 왕실과 척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겼던 대한제국의 지배자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자국의 이익과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교활할만큼 영리하고 지혜로와야 함을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강한 자들만이 남는 역사에서 약자, 언더독들이 자신만의 생존전략으로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교활할 정도로 지혜롭고 행동하여 강자를 물리쳤고, 그랬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어차피 안 될 일이라 칭했던 것들을 해내었기에 이들은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과 행적을 남겼고, 그랬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을 사는우리에게까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의 처절한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다면 더더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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