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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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묘한 분위기의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든다. 이 책은 김성중 작가가 등단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편 소설로 무려 삼백년 이후 미래의 화성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백년 준 지구에서 미래의 화성에 쏘아 보낸 실험체는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던 각양각색의 존재들과 마주하게 된다. 말이 무척이 많은 수다쟁이 유령 개, 마음을 가진 만능 화성 탐사로봇, 눈꺼풀 제거형을 받고서 지구를 탈출한 소녀, 아득한 시가관과 아흔아홉 우주를 가로 질러 화성으로 날아온 정체불명의 존재까지.. 너무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비인간적 존재들이 서로의 곁을 지키며 연결되는 이야기들은 매혹적이면서 왠지 뭉클하다. 


이 책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루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루의 딸 마야, 유령 개 라이카, 화성 탐사로봇 데이모스, 그리고 키나와 남자, 알리체를 거쳐 콜린스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먼저 이야기는 화성에 도착한 루가 의식을 찾게 되면서 시작된다. 루는 영하 270도의 액화 헬륨으로 냉동된 채 미래의 화성으로 발사된 열두 마리의 실험 동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루는 왠 개가 짖는 소리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루를 향해 열심히 짖었던 개는 루보다 먼저 화성에 도착한 존재로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포유류이자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기념우표까지 만들어진 바로 그 라이키다.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폭발로 목숨을 잃은 라이키는 그와 함께 죽은 네 마리의 유령 벼룩과 함께 우주를 떠돌다 이 곳 화성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삼백년이 지난 화성에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루는 라이키를 안아볼 수 있게 되었고, 바로 그날 화성 탐사로봇인 데이모스를 처음 만난다. 그리고 루는 라이키를 통해 자신이 임신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데이모스는 루의 피 한 방울로 루가 지금 임신 십이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날 데이모스는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날 이후 루, 라이키, 데이모스는 곧 태어날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과연 루의 아이는 화성에서 무사히 잘 태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마야의 이야기. 마야의 이야기는 루가 마야를 놓다가 죽고 난 뒤 루의 배에서 나오라는 라이키와 엄마 포궁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최초로 우주로 간 개의 유령을 화성에 살고 있는 존재로 설정한 것도 너무나 신박하다 싶었는데, 엄마 포궁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다소 건방진 말투를 구사하는 마야의 모습도 꽤 신선한 장면이며 인상 깊었다. 삼백 년 동안 엄마의 배 속에서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언어와 지식을 횝득한 마야는 사막이 전부인 화성에서, 그것도 엄마도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길 거부하며 라이키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나 라이키와 데이모스의 노력으로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자신이 볼품없는 여느 신생아처럼 울면서 태어나고야 만다고 표현하는 장면에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저자를 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꾼이라 칭하는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과 각각의 인물들이 끌고 가는 이야기 속의 섬세하고도 생생한 장면 묘사에 있다고 본다. 마야는 아이로서의 천진난만함과 여러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클론 답게 속이 깊으면서 놀라운 어휘력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마야를 죽은 루를 대신하여 마이키와 데이모스는 정말로 열심히 정성을 극진한 보살핌을 다해 마야를 키워낸다. 바로 이 마야가 '화성의 아이'이며 이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라이키가 배속의 마야에게 말한 것처럼 화성에는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고 그것은 곧 우물로, 호수로 점차 크기가 커져간다. 그들은 루가 타고 온 우주선을 집으로 삼아 호숫가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유령 개 라이키와 탐사로봇 데이모스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어느덧 마야는 십대 소녀로 자라게 된다. 더불어 마야가 어린 시절 발견한 미생물 표본을 바타응로 데이모스가 생명을 배양하여 호숫가에는 수풀이 우거지고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걸으며 새들이 지저귀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그들 앞에 어느 날 눈꺼풀이 없는 어린 소녀가 쓰러진 채로 발견된다. 과연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소녀로 인해 화성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 중 나의 마음을 가장 움직였던 것은 바로 최초로 우주여행을 한 포유류, 라이키다. 라이키의 이야기를 시작함에 있어 '내 삶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사이의 투쟁'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라이키는 한없이 다정한 캐릭터다. 그렇기에 루가 임신한 것을 알고 나선 누구보다 다정히 루를 보살폈고, 마야에게도 다정하기 짝이 없는 양육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그런 라이키의 또다른 매력은 바로 늘 냉소적인 농담을 전지며 틈만 나면 니체와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라이키가 등장할 때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게 된다.


이 책은 화성에서 태어난 아이 마야의 성장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주 고아로 태어났지만 비인간적인 존재들의 다정한 보살핌과 그들과 함께 성장하며 삶과 사랑을 배워나가는 이야기들은 한없이 따뜻해서 참 좋다. 그리고 단지 한 사람으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한 사람만의 서사만을 담은 게 아니라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눠 여덟 명의 등장인물들이 매번 다른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만든다. 심지어 유령 개에 붙어 사는 유령벼룩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아니면 어떤가.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함께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들은 한없이 따뜻하며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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