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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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의 단요 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이라 하니 더더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사람들의 머리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생긴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담아낸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었는데도 왠지 우리가 사는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이 책의 이야기는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 '운명의 수레바퀴'라 불리는 수레바퀴 모양의 원판이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만질 수도 없고 과학으로 검증할 수 조차 없는 이 원판은 사람들의 정수리에서 50센티 가랑 떠올라 있으며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되어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개개인의 청색 영역 비율은 어느 나라에서든 평균적으로 65 퍼센트 전후이고 주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조차 70 퍼센트를 넘기기 어렵다. 두 영역의 비율은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데, 강도와 같은 중범죄는 초범의 경우 평균적으로 5에서 15퍼센트 사이의 변동을 보이고 살인은 그보다 더 크다. 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적 없는 사람들의 수레바퀴의 적색 영역은 존재한다.


즉 수레바퀴는 환경과 동기를 참작하면서도 그걸 완전한 면죄부로 삼지 않으며, 부분적으로는 개인적인 실천 이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진국 시민에게는 구조적인 착취를 외면한 채 풍요를 만낀한 책임을, 독재국가 시민에게는 신념과 행위의 정당성을 묻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덕분에 수레바퀴의 출현은 진짜 바퀴의 발명 만큼이나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주인공 나는 이렇게 수레바퀴 이후 변화된 세계에 대하여 취재를 하고 있으며, 수레바퀴가 출현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바뀐 세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수레바퀴가 생기고 나서부터 사람들은 변하였다. 이전과는 달리 지금 당장 덜 쓰고 많이 나누는 것이 최선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찬성하는 이도 생겼고, 이를 반대하는 이들도 당연히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중요해지는, '누구를 믿느냐'보다 '어떻게 처신하느냐'로 옮겨갔고 그 결과 종교와 철학의 위치는 뒤집혀졌다. 오랫동안 재고로 남았던 규범윤리학 도서들이 하루만에 증쇄를 결정했고, 방송사들은 앞다퉈 철학 특집을 편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체험하게 된 직업을 이 책에서는 아이돌이라 말한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아이돌 산업은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판매하는 산업으로 완성되었고 이러한 변화를 이끈 것은 기획사가 아니라 팬덤이었다. 팬들은 나의 아이돌이 수레바퀴의 숫자가 높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수레바퀴가 생기고 난 이후, 아이돌 문화는 가창력보다 인성이 더욱 팔리는 가치가 되었고 도덕주의를 향해 내달리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은 아이돌부터 시작하여 여러 직업군에서 수레바퀴 이후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수레바퀴 이후 변화를 맞이하게 된 다양한사람들의 반응과 의견을 아주 분석적으로 적어가고 있는 데, 이를 읽는 재미가 있다.


'디코덤'은 등장인물의 행동이 상황과 신분에 어울리는 것을 가리키는 문학 용어로 이 작품 속에서는 수레바퀴 이후 세계에 대한 적정률을 찾아주는 전문가 집단의 회사로 등장한다. 디코덤은 수레바퀴의 요구 사항을 개인적인 품성이 아니라 책무의 문제로 보는데, 이상적인 행동 양식이란 허상이고, 각자 직분과 영향력에 따른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수레바퀴의 65 퍼센트는 개인이 충분히 도달가능한 목표이지만 나머지 35 퍼센트는 아주 복잡하고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디코럼이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35퍼센트, 그 중에서도 전 지구적 불평등과 환경 문제로 수레바퀴가 던지는 난제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복잡한 수레바퀴의 영역에 대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세밀하게 담고 있는데, 왠지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과 작품 속 수레바퀴 이후를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수레바퀴를 받아들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 역시 흥미롭다. 아쉽게도 이 책이 서평단을 위한 가제본 책이다 보니 1장과 2장만 있어서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2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수레바퀴에 적대적인 '안티휠'의 입장은 과연 무엇인지 너무 궁금하다.


이 책의 설정에 의하면 '운명의 수레바퀴'가 인간의 정수리에 생기게 되면서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평가는 바로 직각적으로 보이게 된다. 과연 그렇게 된다면 이태껏 내면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정의가 이제는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다양한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술하고 있다. 도입 부분에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사회라서 이전 사회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사람들의 입장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운명에 따라 수레바퀴의 요구사항을 충실히 따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듯이 말이다. 신박한 설정 자체가 이야기 자체에 폭 빠져들게 만드는 이 책, 묘하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뒷 이야기가 너무 너무 궁금하면서 기대가 된다. 과연 세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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