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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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신작이다. 오르한 파묵은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에도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고 있고, 매번 더 뛰어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35년 동안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을 고민했고, 최근 5년 동안 이 작품을 집필하는 데 매진하였다고 한다. 그의 원고가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전 세계에 코로나 19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시간적 배경이 10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가 동시에 팬데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 몰입하여 이 책을 읽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그 장대한 서사에 흠뻑 젖어들게 된다.

이 책은 1901년 오스만 제국하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민게르섬은 천연으로 분홍색을 띠는 하얀 돌로 인해 멀리서도 오렌지 빛으로 따뜻하게 빛나는, 각종 여행서에 시적으로 묘사된 마법적인 풍경을 지닌 작고 평화로운 섬이다. 이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회가 거의 같은 비율로 나눠어 있어서 정치적 긴장감이 늘 존재하고 있다.


당시 민게르섬에 정기 운항을 하는 배는 일주일에 한 번, 세 척 밖에 없었기에 그 섬에 들르는 배는 몇 척이 안되었다. 그런데 1901년 4월 22일 자정이 되기 두 시간 전 예정에 없는 배가 민게르섬에 다가오면서 이 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요하고도 경외감 마져 도는 이 섬에 다가오는 배는 바로 파디샤(절대적 통치자)의 유람선 아지지예였다. 그 배에는 압뒬하미트 2세의 명령을 받아 매우 특별한 임무를 띠고 이스탄불에서 중국으로 가는 출중한 오스만 제국 사절단을 싣고 가는 중이었다. 종교인, 군인, 통역관, 관료로 이루어진 열일곱 명의 사절단 사이에 얼마 전 결혼시킨 압뒬하미트의 조카 파키제 술탄과 남편인 의사 누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지지예의 비밀스러운 승객 두 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두사람은 바로 저명한 화학자이자 약사 본코프스키 파샤와 그의 조수이다. 본코프스키 파샤는 오스만 제국의 큰 항구 아즈미르에서 페스트의 유행을 6주만에 종식시킨 유능한 방역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왜 이 아지지예에 비밀스럽게 오르게 된 것일까? 그리고 새로 온 두 승객은 조용하고 거리를 두었는데 이는 사절단 일행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파타샤는 왜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두 명의 페스트와 전염병 전문가를 같은 배에 태웠을까?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중국이 아니라 민게르섬이었다. 민게르섬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민게르섬에 페스트가 창궐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즈미르에서 6주만에 페스트를 종식시킨 본코프스키 파샤와 조수, 의사 누리가 같이 민게르섬으로 가게 된 것이다. 민게르섬에서는 주로 무슬림 마을에서 페스트가 창궐했고, 벌써 열다섯 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 누리는 방역 규칙을 따르도록 하는 일이 기독교인들보다 무슬림들에게 더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는 논쟁하지 않기로 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민게르섬에 발병한 페스트를 종식시킬 수 있을까?

민게르섬의 간수로 일하고 있는, 이 책에서 페스트로 제일 처음 죽음을 맞이하는 바이람 에펜디가 죽음을 앞두고 느낀 생각들과 감정들에 대한 묘사는 참 가슴 아프다. 갑작스레 다가온 죽음 앞에서 드는 부당함과 억울함, 그리고 이태껏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회귀 등에 대한 묘사가 오늘날의 내가 보기에도 공감될만큼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이 워낙에 장대한 서사이고, 민게르섬에 불어닥친 페스트로 인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등장인물들 각각의 서사와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는데, 오르한 파묵은 각 인물의 서사와 감정,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참 잘 표현하고 있어서 인물들의 삶에 하나하나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지지예에서 비밀스럽게 내린 본코프스키 파샤와 그의 조수는 페스트와 관련하여 총독 파샤와 회의를 하며 페스트의 위험성을 알리고, 페스트를 종식시킬 방안을 찾고자 하지만 세계 모든 곳의 총독이나 군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우리 도시에 결단코 전염병은 없소!" 라며 말이다. 그리고 방역을 실시하고 의사가 환자의 집을 드나들게 되면 주민들이 무척이나 불안해 할꺼라고 말이다. 이는 코로나 19가 처음 발병되었을때 오늘날의 우리가 보인 반응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이 책의 페스트는 바로 오늘날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되어 온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코로나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이야기에 수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으며, 빠져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페스트를 종식시키기 위해 본코프스키 파샤는 방역에 힘쓰려하나 방역을 제대로 시행해보기도 전에 거리에서 그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이에 술탄 압뒬하미트는 이슬람교도 의사 누리를 파견한다. 그는 의사로서 엄격한 방역 조치를 시행할 것과 동시에 방역 전문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라는 명을 받아 부인인 파키제 술탄과 함께 민게르 섬에 입성한다. 그러나 행정부의 무능, 제재 조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방역은 쉽지 않다. 과연 민게르섬은 어찌될까?

그런데 이 책의 이야기 중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술탄 압뒬하미트가 페스트로 위기에 봉착한 민게르섬에 구호선을 보내기는 커녕 서구 열강의 국제적인 압력에 못 이겨 민게르섬을 봉쇄한 것이다. 그러자 절망의 상황에 빠진 섬은 콜아아스를 위시로 하여 세상을 하여 민게르야가 독립 국가임을 선포하고, 이야기는 본격적인 흐름을 타게 된다. 이제 섬 스스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전염병을 물리칠 방법을 찾게 되는데, 방역을 방해하는 세력과 본코프스키 파샤를 죽인 살인자는 누구이며 앞으로 민게르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뒷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추천해본다.

이 책에서 페스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체념의 감정까지 가지게 되었을 때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비록 밖의 상황은 갈수록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질지라도 사랑하는 이와의 포옹은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는 이 장면이 나는 제일 인상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아마 많은 이들이 힘들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 그리고 따스한 위로가 우리에게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었던 것처럼 이 책의 사람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가 처한 현실과 이 책의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다.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죽고, 누군가는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한다. 아마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들이 그때를 회상하며 자유를 꿈꾸고 그 자유에 대한 열망이 우리를 견디게 하였다고 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을 회상하며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나쳐 왔다고 말하지 않을까. 비록 절망적인 상황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아닌 원망을 쏟아붓는 시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대는 다시 인간을 살아가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 오늘을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로와 사랑을 보내보자.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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