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건에는 그 물건의 사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담긴다. 그렇다보니 각각의 물건들에는 저마다 제각기 다른 사연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도심에서 떨어진 주택가 한 가운데 평범해 보이는 중고상점이 있다. 찾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구해주고, 출장 감정 서비스에 대량 매입까지하는 고객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하는 가게다. 개업한 지 2년 내내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이 중고상점을 운영하는 가사사기 점장과 히구라시 부점장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물건에 얽힌 사연을 해결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거래되는 이 곳에는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가사사기와 히구라시는 가게를 찾아오는 낯선 손님들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 고군분투하는데, 누가 보면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따스한 위로로 다가온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아픔과 고민에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공감하며 사려깊은 마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 쓰던 물건을 거래하는 가사사기 중고 상점은 아픔과 상처, 고민을 가진 누군가에게 위로와 환대의 공간이 되어간다.

이 책의 이야기는 히구라시가 주지 스님에게 장롱을 바가지를 쓰며 매입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히구라시가 보기에는 장롱이 대형 쓰레기처럼 보이는데 주지 스님은 광고지의 "뭐든지 매입합니다."를 근거로 사가길 강요하였고, 어쩔 수 없이 협상 끝에 히구라시는 별 쓸모 없어 보이는 장롱을 칠백엔에 사서 혼자 낑낑대며 미니 트럭 짐칸에 실고서 가게로 오게 된다. 가게에 도착 후 혼자 짐칸에서 내린 장롱을 창고까지 옮기려 시도는 해봤으나 혼자서는 역시 무리였다. 결국 장롱을 도로에 내버려 둔체 가게로 들어오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대 출신에 낡은 물건도 금세 수리하고 새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새 상품에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서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업 제안을 받아 부점장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장사 수완이 별로 없어 매번 손님들에게 바가지를 쓰곤 하는 히구라시. 그리고 사실 가게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고, 어던 사건에 휘말리기를 기대하며 엉뚱한 추리를 늘어 놓기 바쁜 점장 가사사기. 말 못한 사정으로 중고상점을 드나들며 이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어 이제는 가게의 어엿한 일원이 된 중학생 미나미. 바로 가사사기 중고상점을 지키는 세 명이자,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장롱을 가게 안으로 옮기는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앞에 나타난 수상한 한 소년. 소년은 며칠 전에 가게 안에 손수건을 떨어뜨렸고, 그 손수건을 찾으러 왔다는데 어제까지 추웠기에 가게 안에서 땀을 닦다가 손수건을 떨어뜨렸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다. 과연 이 소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미가 말하는 '청동상 방화 미수 사건'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전에 어딘가에서 소중히 간직되었을 물건들이 다시 중고상점으로 나오며 그 물건에 얽힌 사연들과 각자이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


맨 처음에 실린 봄에 벌어진 <까치로 만든 다리>의 주요 사건은 바로 나미가 이야기한 '청동상 방화 미수 사건'이다. 며칠 전 밤에 누군가가 가사사기 중고상점이 침입을 했고, 누군가 창고에 있는 청동상을 불태웠다. 과연 누가 왜 중고상점 창고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 청동상만을 불태웠던 것일까. 이후 손수건을 찾겠다며 가게를 찾아온 소년으로 인해 청동상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게 된다.


수상한 소년으로 인해 가사사기, 히구라시, 미나미는 다시 창고로 내려가 불에 탄 청동상을 꼼꼼히 살피게 된다. 그리고 새처럼 생긴 청동상의 배부분 딱 한가운데 언저리가 마치 배꼽처럼 파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누가 청동상을 불태우고 그러한 흔적을 남긴 것일까.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나는 지난 주에 걸려온 한 남자의 전화. 그 남자는 새 모양으로 된 청동상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소년이 가고 나서 그 남자가 가게로 찾아온다. 그리고 그 남자는 상처가 난 청동상을 사가고, 히구라시는 그 남자를 미행한다. 과연 청동상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청동상에 대한 사연과 나머지 계절에 중고상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따뜻한 에피소드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추천한다.


책 속의 에피소드와 그 에피소드에 나오는 각자의 아픔을 가진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잊었던 소중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소년과 자신이 쓸모와 능력치에 대해 고민이 많지만 그 누구에도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없었던 신입 목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여성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지만 하나같이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늘 사건에 대한 추리를 늘어놓는 가사사기. 히구라시는 가사시기 옆에서 그의 실수나 잘못된 추리를 하나씩 지적하기보다는 그의 추리가 진짜처럼 보이게 한느 증거를 꾸미거나 아무도 모르게 사건의 진상을 풀어낸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의도를 헤아리기도 하고, 일단 부탁받은 일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해내기도 한다. 그런 그와 가사사기, 미나미가 한 팀처럼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진실을 밝히는 일이 곧 아픔을 털어내고 다시 희망을 꿈꾸게 하는 일이 되며 이는 비록 적자를 내더라고 또 다시 중고상점을 운영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늘 적자에 허덕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와 행복, 따스함을 선물하는 수상한 중고 상점은 그렇기에 '오늘도 정상 영업중'일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쾌하고도 가볍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은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당연하기에 잊었던 관계의 소중함, 순간의 동경으로 시작했지만 어떻게든 계속해온 일에 대한 열정 등 삶을 긍정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선물한다.

책 띠지에 적인 "비싸세 사서 싸게 팝니다. 아픈 마음까지도 매입합니다"를 토대로 오늘도 활발히 정상 영업중인 수상한 중고상점에서 지치고 힘든 오늘의 고민은 잠시 잊고 한 걸음 쉬어가며 마음의 위안을 받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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