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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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금이 작가님의 첫 에세이라는 것만으로도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금이 작가는 70만 부 이상 판매된 <너도 하늘말나리야>, 뮤지컬로 각색되기도 한 <유진과 유진>,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 <거기, 내가 가면 안되요?>, 최근에 너무나 재밌고 흥미롭게 읽은 <허구의 삶>  등 따뜻한 문체와 깊이 있는 시선으로 38년 동안 주옥 같은 작품을 써와 어린이부터 성인 독자까지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작가이다. 

등단 이후 쭉 소설을 써온 이금이 작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이탈리아로 떠나 한 달 동안 머문 시간들을 엮어서 에세이로 엮었다. 코로나 19 사태 이전에 '운 좋게'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다시 자유롭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 책에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절친한 친구들과 오래전부터 '환갑이 되기 전 긴 여행 다녀오기'를 버킷 리스트로 삼았었다고 한다. 아무리 인생은 60부터라 하고, '신중년'이라는 단어로 60대를 새롭게 칭해도, 저자가 느끼기에 60은 왠지 노년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즐겁게 60대를 맞이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보상 같은 걸 스스로 주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일정이 안 맞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보니 40년 넘은 친구 진과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관광지에서부터 시작해 눈여겨 보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마을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혹은 홀로 다니며 발견한 이탈리아 구석구석의 풍경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이 책 가득 담고 있다.  

장편 소설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저자와 절친과의 여행은 '쉰여덟 살 봄, 첫 문장을 쓰듯 우리는 떠났다'로 시작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아무리 40년 된 친구라 해도 단 둘이 딱 붙어서 한 달을 보낸다니. 떠나기 전부터 저자는 주변인들의 걱정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역시나, 걱정은 여행지에서 현실이 되고, 생각치 못한 상황은 여행지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여행 계획을 아무리 잘 짜놓아아 인생이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계획했던 것들이 어긋나기도 하고, 예상하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두 여행자는 다양한 시련 앞에서 그때마다 지혜롭게 극복하고 느긋한 자세로 해결해하가는 모습은 인생 선배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여행 전부터 이번 여행의 테마를 '휴식'으로 정하였을 만큼 느슨하게 일정을 짰지만, 사람으 그리 쉽게 변하는 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느슨'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느슨'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왕 가는 거 제대로 보고 즐겨야 한다는 저자와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친구 진이 한 달 동안 느끼는 성격 차이, 그로 인한 갈등, 화해하는 과정도 사실 이 책을 보는 재미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행지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이들의 여유와 지혜는 본받을 만하다. 

폼베이에서 화산으로 인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저 화산이 지금 폭발한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저자. 그 생각은 '지금, 여기'에서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그저 흘러보낸다. 

저자는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이 장편소설 한 편을 준비하는 마음과 같다고 했다. 시작하기 전 구상하고 계획하는 과정이 그렇고, 소설과 여행 모두 기승전결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반대로 소설은 고쳐 쓸 수 있지만 시간과 함께 흘러가버린 여행은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  한 번 살면 그 뿐인 인생과 닮았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행에서 얻은 교훈과 경험을 바탕으로 남은 인생을 더 잘 살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자 또한 여행 후 자신이 많이 달라졌음을 이 책을 통해 고백하고 있다.   

퇴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여행이라는 예행연습을 통해 인생을 좀 더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셈인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페르마타(페르마타는 이탈리아어로 '잠시 멈춘다'와 함께 '길게 늘이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에서의 시간은 페르마타로 연주하듯 여유롭게 보낸 시간을 통해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삶의 행간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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