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라"라는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냉소적이지만 현실적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의 글은 처음 접했는데 심적으로 힘든 요즘, 내게 위안과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란 정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그런 경험을 무수히 할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중 이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다시 이어져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어제는 첫째에게 직장에서의 고충을 수다로 좀 떨쳐내었다. 다행히 착한 녀석이라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잘 들어주어 고마웠다. 하여튼 큰 스트레스 속에서 그나마 내가 컨디션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독서의 힘이 크다. 혼자 카페에서 그저 책을 읽는 동안은 모든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나 또한 염세주의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기에 그의 조언이 깊은 울림을 주리란 기대 때문이다.
그저 먹는 나이만큼 성숙도는 그저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 주변에도 나이만 먹은 미성숙한 어른이 많은데 아래의 글을 통해 위안 받을 수 있음에 위로가 되었다.
- ... 그리하여 천재적인 발언이나 사상도 천재들의 사회에서는 허용되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배격된다. 이런 사회에서 환심을 사려면 역시 평범하고 어리석어야만 하나에서 열까지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자기를 남들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대담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4분의 3쯤은 버려야 한다. p 40
- 이 세상에서는 실로 많은 일이 고약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은 언제나 사교이다. 그래서 사교를 좋아하는 프랑스인 볼테르까지도, '이 세상은, 어디나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p 52
- 고독하게 살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일종의 귀족적인 감정이다. 모든 인간의 찌꺼기들은 사교적이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이 아닌가! p 54
'질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하나의 악덕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극 공감한다. 인간은 왜 쓸데없는 것에 감정을 소비하는 것일까, 답은 하나이다, 어리석음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늘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이에 쇼펜하우어는 '현명한 사람은 기쁨을 찾기보다 슬픔이 없기를 요구한다'고 알려준다.
- 내가 처세의 최고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현명한 사람은 슬픔이 없기를 요구하되 기쁨을 찾지 않는다.'라는 명제이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향락과 행복은 소극적인 것이지만, 고통은 적극적인 것이라는 의미이다. p 125
정말 그렇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불행했던 순간이 행복한 순간보다 더 기억에 남아 있다.
- 고통이 없는 상태에 권태까지 동반하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된다면 참으로 이 세상의 행복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의 것은 망상이다. p 128
- ..... 그 어느 경우에나 얼마 후에는 그러한 경험이, 행복과 향락은 멀리서 바라만 보일 뿐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져 버리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지만, 고뇌와 고통은 이와 반대로 현실성을 가지고 직접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착각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님을 가르쳐 주게 된다. 이 가르침이 몸에 배면 우리는 행복과 향락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고, 오히려 고통과 고뇌의 길을 막으려고 힘쓴다. p 132 ~ 3
세상을 살아가려면 많은 조심과 관용을 필요로 하는데, 전자는 사고나 상해의 손실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충돌과 분쟁에 대하여 미리 몸을 보호해 준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관용이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걸 의미하는데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 처세술이다.
- ... 그러므로 우리의 여러 가지 대외 관계를 되도록 간소화하는 것과 권태를 일으키지 않는 생활을 단순한 형태로 해 나가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간소하고 단순한 생활 자체가 인간의 생활에 무거운 짐을 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은 강물처럼 파도도 일지 않고 소용돌이도 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흘러간다. p 32
- ...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은 만족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은 항시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p 36
- ... 즉, 고독하며 비참한 인간은 자신의 초라함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기 자신의 위대성을 그대로 느낀다. 요컨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서 느끼는 것이다. p 38
이 책을 읽으며 우울했던 기분이 차츰 나아지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비사교적인 내게는 안성맞춤의 내용이었다. 부질없는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해답을 찾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