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중년기에 접어든 내 몸 또한 놀랍게 변하고 있다. 피부는 주글주글해지고 관절은 삐거덕거린다. 딸의 몸에는 호로몬이 격렬하게 밀려드는 반면, 내 몸에는 호로몬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딸은 잠이 많아졌고, 나는 갑자기 불면증 환자가 되었다. 딸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내는데 나는 까맣게 잊는 일이 다반사다.
....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딸과 내가 계속 서로를 미러링하면서 함께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딸은 익숙한 청사진에서 벗어나 많은 걸 배우고 모험해야 하고, 나는 안개 자욱한 오십 대 속으로 과감하게 들어가 한 겹 한겹 안개를 걷어내야 한다.
최근에, '내 인생에 있어 감사한 사람들.'에 대한 목록을 적으려 한 적이 있다. 나에게 담배와 술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해준 사람들. 통화를 해주고 편지를 써주고 식사를 보태주었던 나의 고마운 사람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목록의 마지막은 어떤 고민도 없이 우리 엄마와 아빠가 들이찼는데, 나는 그들의 노고와 희생이 언제나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정말 말이 안된다. 겨우 자식한테 그렇게 노력을 쏟는다는 건. 단순히 모성애, 부성애로 그들이 내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언제나 감사하고, 미안하며, 존경스럽다.
어린 시절 나와 꽃놀이를 가서 솜사탕 따위를 사서 함께 걷던 엄마 아빠. 그들도 젊었던 때가 있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특히 옷을 잘 입고 화장도 잘 했다. 엄마는 어렸을 적 옷을 만드는 강의를 들으며 자랐다고 했는데, 왜인지 요즘 엄마의 옷차림은 몹시 단조롭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호걸이었다. 거칠고 두려운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풀이 죽고 많이 지쳐 보인다.
쉰을 바라보면서 나이 듦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담아낸 <중년, 잠시 멈춤>은 젊음, 에너지, 성욕, 외모, 부모님, 미래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쉰을 앞둔 나이에 잃게 된 것들과 중년의 고민을 그리는 한편, 인생의 전환기에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오롯이 담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중년 잠시 멈춤>은, 그런 중년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중년 여성으로 포커싱 되어 있긴 하지만, 몇가지 문장들이 분명 많은 중년들의 마음을 찌를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직접적으로 외모나 체형, 체력 등에서 신체적 노화가 찾아온다. 또한 감정적인 변화도 극심해지는데, 이런 실제적인 이야기를 작가 '마리나 벤저민'이 사실적으로 적어놓은 것이 이 책이다. 책에서는 단순히 중년 여성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조언도 놓치지 않는다. 호로몬 요법이나, 딸과의 대화법, 늙어가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
재미있게도 나는 그렇게 떠밀리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나는 이제 더는 예전에 원했던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냈으므로, 물 위를 걸어가려고 헛되이 힘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려고 시간에 덤벼들지도 않을 것이다. 거울을 앞서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솔직한 마음으로, 이 책 자체가 나에게 공감을 주지는 않았다. 당연한 것이, 나는 너무도 젊은 스물 네살이고, 나는 늙어가는 것 보다 되레 젊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호로몬이나 체형의 변화 같은 것은 내가 아직 느낄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선물'하고 싶었다.
<중년, 잠시 멈춤>은, 과격하지 않은 방법으로 중년들을 토닥인다. '꼭 이걸 해야 해.', '이걸 하면 젊어질 수 있어.'가 아닌, 다만 늙어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나가는 이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똑같이 늙어감을 경험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말해줄 뿐인.
나는 좀 더 뚜렷하고 좀 더 여유로워진 공원에서 서서히 익숙해져가고 있다. 나도 이제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해진 새 모습으로 공원을 찾고 있다.
우리 아빠는 자신의 나이를 말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심지어 화를 낼 때도 있는데,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뒷면에는 분명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있던 것 같다. 언젠가 아빠와 대화를 했을 때, 아빠는 내 자식의 등록금 까지 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는 나의 아이가 보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제발 자신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도 똑같이 쉰이 될 때 까지 엄마와 아빠가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을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여전히 옷을 만들고, 아빠는 열심히 호걸처럼 행동하는. 그 때의 자신들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어서 빨리 부모님이 이 책을 내게서 건네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곧 연말이다. 부모님을 찾아 뵐 때가 되었다. 몰래 한 타투도 들키게 되겠지. 그 때 이 책을 꼭 건네 주리라. 따뜻한 옷과 양말을 함께 주며, 언제까지고 나와 있자고. 동시에, 언제까지고 엄마 아빠가 자신만의 삶을 찾아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빌어 이야기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