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왜 데드키라고 부르는 거죠?" 아이리스가 끝까지 물었다.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열리지 않고 잠겨 있으면, 우린 '죽었다'고 말해요. 대여금고가 죽으면, 그걸 비우고 다른 대여자를 받아야 하죠. 우린 데드키로 죽어버린 대여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꾸곤 했어요. 지금은 드릴로 틀에 구멍을 뚫고, 틀 전체를 몽땅 갈아치우지만. 짐작하겠지만 금전적으로는 엄청난 낭비죠."

"대여 금고가 자주 죽나요?"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요."

 

<데드키>를 받은 지는 꽤 되었다. 처음 소설을 받았을 때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정도 두께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 최고로 긴 소설이라고 해 봤자,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들 인데, (어쩌다 보니 둘 다 러시아 소설이다.) 그 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스테리 스릴러로서 600p라니. 읽기 전 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었으나, 아무튼 간에 가끔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책 한 권 읽는 것도 재미 있는 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1978년 은행 파산 직전, 비서로 고용된 십 대 소녀 베아트리스

1998년 은행의 설계도를 담당하게 된 건축공학기술자 아이리스

소설의 구성은 78년의 베아트리스와 98년의 아이리스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데, 20년 동안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사진을 찍어논 듯한 비슷한 상황, 비슷한 공포를 이끌어간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은행을 둘러싼 여러가지 미스테리와 알 수 없는 기이한 사건들이 독자들을 600p 동안 매료시킨다.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 두 인물이 한 사건과 공간을 지켜보며 나타내는 심리였다. 두 사람 다 은행에 얽힌 여러가지 진실들을 향해 가지만 그 뒤에 숨겨진 여러 욕망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눈에 띄었다.

베아트리스는 은행과 인물들이 가진 욕망에 대해 두려워 하면서도 다가서고자 한다. 초반에는 두 사람의 여러 정보와 배경, 인물들의 관계를 강조하느라 약간 지체되는 면지 없지 않았으나 중간부를 넘어가서부터는 공포를 넘어 슬픔과 분노와 실망, 호기심이 뒤얽힌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많은 미스테리 소설이 그러하듯 상세한 인용을 하기엔 너무 대량 스포들이 많다. 하지만 책을 한 번 펼쳤을 때 부터 쭉 읽어나가는 게 어렵지 않다. 어떤 작가가 그랬는데, 소설은 100p이상 읽어야 재미있어지는 거라고.

세상이 항상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아트리스는 양초 하나를 들고 성가를 부르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작은 종이 쪽지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기도문이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워낙 미스테리 소설을 읽지 않는 편이라 큰 애정이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고 이끄는 매력은 아이리스와 베아트리스가 가진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욕망'을 보는데에 있다. 멈추면 안전할 수 있는 것. 모른 체 덮어두면 상관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고자 하고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슬픔을 감내하는 그 인물들의 저돌적인 캐릭터성은 소설을 길게 읽어도 지치지 않게 한다. 무엇보다 두 시간대가 평행우주처럼 같이 일어나는 부분에서 나오는 이 구성적 긴장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 파국에 이르려고 하면 시간대를 옮기고, 또 그 시간대에서 긴장이 솟아 오르면 또 시간대가 옮겨지는데, 독자가 어떻게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D.M 풀리의 데뷔작인 <데드키>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구조공학자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직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버려진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그녀는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대여금고들로 꽉 찬, 지하의 금고실을 발견했다. 그 중 특별해 보이는 금고에 얽힌 미스터리는 그녀가 계산기를 내려놓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작가는 지금도 건물의 구조 문제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사설컨설턴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데드키>가 600P를 넘기는 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 아마존 브레이크스루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그 기이함과 미스터리함을 안고 소설을 써내려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 스스로도 느꼈던 이 이상한 사건들을 직접 파헤치고,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라는 인물을 앞세워 서사를 진행시켰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도 그 감정에 매료된 것이 아닐까.

긴 소설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영화가 아닌 텍스트가 주는 공포적 매력은, 인물들의 심리를 계단 밟듯 하나 하나 천천히 느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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