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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리커버 에디션)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1월
평점 :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부터
롤랑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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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완결된, 저자가 손수 마무리한 책이 아니다.
이 글들은 바르트가 쓰고자 했을 어떤 책의 가정들, 그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래서 그 작품에게 빛을 던져주고 있는 텍스트이다.
어제 목욕을 하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를 틀고, 찬 물을 아무리 빼내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바람에, 나는 나체로 욕실에 서서 내내 기다려야 했다. 찬 물이 손에 줄줄 흐르며, 나는 어떤 생각들을 했는데, 그건 이별과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이별과 죽음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무의식적으로든 아니든 타인을 결코 만날 수 없다는 확신에 있다. 죽으면 끝, 이니까. 사후세계가 있어도 아무튼 우리는 현생에 살고, 죽으면 영영 보지 못하니까.
나는 수 없이 많은 이별은 겪어봤어도, 죽음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꽤 머리가 자란 지금 시점에서 겪을 타인의 죽음이 아주 두렵다. 이별도 두려운데, 죽음은. 거대하다.
바르트를 처음 만난 건 <현대의 신화>였다. 그 책 같은 경우는, 바르트라는 인간이 꽤나 깜찍한 사람이구나 싶은 문장이나 발상이 좋았는데, <애도 일기>는 사뭇 무겁고, 직접적으로 작가와 닿아 있어서 읽는데 힘들었다. 나도 최근에 이별을 겪은 사람으로서, 내 마음과 겹쳐지는 그 문장들이 참기 어려웠고. 워낙 일기라는 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센티메탈을 불러일으키지만, 바르트라는, (특히 내가 <현대의 신화>에서 보았던 그 재기로운 인간이)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 게 슬펐다.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돌아볼 수 있는 철학가라도, 죽음에 대한 슬픔 앞에서는 감정에 무너진다. 어찌할 수가 없다.
11.21
한편으로는 별 어려움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이런저런 일에 관여를 하고, 그런 내 모습을 관찰하면서 전처럼 살아가는 나. 다른 한편으로는 갑자기 아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슬픔. 이 둘 사이의 고통스러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아서 더 고통스러운) 파열 속에 나는 늘 머물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 있다. : 나는 아직도 '더 많이 망가져 있지 못하다' 라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괴로움.
그래서 바르트는 이 일기를 쓰며, 나름의 애도의 방식을 지나쳐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가. 실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슬픔이 늘 그러하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싶어도 다시 솟아오르지 않는가. 바르트는 마지막 일기에서까지 '슬픔'이라는 단어를 말한다. 그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괴로워하고, 여전히 그녀를 애도한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끝이 존재한다. (루카치가 언급했던 것 처럼, 여행은 끝났지만 길은 계속된다는 형식으로) 하지만 일기는 끝이 없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감정, 육체는 지속된다. 일기를 지속의 장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일까? 때문에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슬픔이 지속될 걸 알기에 더 슬프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 그것을 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 지속된다. 그 기억과, 애도가.
지금 당장 이별과 죽음을 겪은 사람에게는 어느 면에서는 추천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이별이라는 게 모두가 겪는 것이고, 이별의 대단한 슬픔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는 위로. 동시에, 내 이별을 훑는 듯 한 문장들이 나를 굉장히 서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따금 펼쳐, 밤에 손가락을 대듯 읽어보길.
1979. 9. 15.
슬프기만 한 수많은 아침들 ... ... .
(사족 1. 해설을 보니 바르트는 이 일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을 기호화했다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딱히 그것을 목적으로 두지는 않았겠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로 거대한 슬픔을 겪었을 때 일기를 정말 많이 적는다. 슬프고, 어쩌고, 하는 일기들. 그 모든 행위가, 내 슬픔을 기호화 하려는 몸부림이었을까?)
(사족 2. 과거에 다자이 오사무의 모든 낙서와 일기와 푸념이 공개되었던 것 처럼, 바르트도 이 일기가 공개되는 것에 동의를 했을까? 기존 바르트의 저서에 비해 심각히 개인적이라, 그의 마음이 우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