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동주의 삶과 연계해서 보니 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어 좋았다
아~~이때 그래서 이런시를 지었구나
공감가고 감탄사가 나왔다
그가 조금더 살아서 광복의 순간을 맞이했다면 어떤 표현을 쓰며 기뻐했을지 상상해본다
수업 시작부터 동주는 감탄했다. 말이니, 소리니, 생각이니 하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깊은 뜻이담겨 있었다. 말의씨, 곧낱말은 사람 마음의 움직임과 상태를 알 수 있는 기본 단위라 했다. 독립된 작은 단위의 낱말에서 비롯되어 생각의 체계가 서고,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며, 사람 사이의 관계로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게다가 홀소리, 닿소리, 소리, 된소리, 숨떤소리, 숨안떤소리・・・・・・ 소리를 표현하는 말들은 어찌 그리 어여쁜지. ‘말할 이‘와 ‘말들을 이‘에 따라 갈래지어 나가는 말들의체계는 또 어찌 그리 섬세한지. 최현배 교수가 강의실에서보여 주는 우리말의 아름다운 세계에 동주는 흠뻑 빠져들었다. - P21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말하고 듣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국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모국어를 통해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며, 삶을 배워 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모국어 속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얼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더 남은 듯싶은데 교수는 잇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말 연구의 외길을 꾸준히 걸어온 스승의뜻을 학생들도 잘 알 것 같았다. - P22
동주는 산책만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여럿은 여럿대로, 혼자는 혼자대로 좋았다. 산책하면서 어떤 생각에 골몰하거나, 떠오르는 시상을 가다듬으며 운율을 입혀 보거나, 아니면 그저 터덜대는 발걸음에 몸과 마음을 다 내맡겨 버리기도 했다. 그러노라면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한 발두 발 내딛는 걸음 따라 맥박도 고르게 뛰며, 요동치던 마음이 잦아들곤 했다. 홀연히 시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다가온 시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것인지, 시가 스스로 찾아온 것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 P25
몽규와 달호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삼불이 갑자기점잔을 빼며 말했다. "거, 언어불통이라 했던가………… 하긴 나도 실감하고 있네. 신입생들을 보면 도무지 말이 안통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많아" "뭐? 하하하." "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선배들도 우리를 보며 그랬을 테지?" "하하!" 다들 한바탕 웃었다. 창가에서 머뭇대던 바람도, 한번 웃음이 터지니 그 기세에 휩쓸려 빈 강의실 안을 한 바퀴 휘돌고 나갔다. 한결 숨통이 트였다. "그런데 말이야, 요즘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대단하다 싶기도 한데, 다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해. 그런 걸 못 느꼈나?"
이시대도 세대격차를 느끼는 - P108
"인물의 내면을 치열하게 그리는 것은 좋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감정이 그것밖에 없다던가? 인물을 휘장처럼 둘러싸고 있어야 할 현실이 빠져 있으니 고민이고갈등이고 실감 나지 않을 수밖에." "현실.………. 이 불유쾌한 현실을 작품에 상세히 그려 놓으면 발표나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문학적으로 ‘순수한 작품이 아니라는 소리도 듣게 되고…………." "순수? 순수라... 도대체 순수는 무엇인가?" 순복에 이어 한혁이 중얼거렸다. 달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장담하네. 다음 호에는 그 제목으로 또 새로운 논쟁이 벌어질 거야." "이러다 연말까지 가겠구먼. 허허!" 조선 문단 전반에 대한 동주와 벗들의 평가는 거리낌 없고 신랄했다. 대부분 문단에 등단하기를 갈망하는 작가 지망생들이었다. 이들처럼 어떤 지위도 없고, 어디에 소속되지도 않은 것이 때로는 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법이다. 한다하는 문인들의 이름을 존칭 없이 마구 부르고 그들의 작품을 난도질해도 뭐라 할 이 없었다. 고심해 작품을 쓴 작가들은 툭툭 던지는 평가가 서운하고 억울하기도 할 것이나, - P110
보고 느끼는 대로 마음껏 이야기하는 것은 독자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동주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순수하다는 게 과연 무얼까? 순수다, 순수가 아니다 하는 게 선언한다고 되는 걸까? 순수를 염두에 두고쓰면 순수한 작품이 나오고, 현실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순수하지 않은 작품이 되고 마는 걸까?" 혼잣말 같은 동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떤 것을 쓰건 혼신을 힘을 다해 진실하게 그리면, 그리고 그 진심이 읽는 이에게 전해지면 순정하다 순수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내면에 치중하건, 그를 둘러싼아픈 현실을 그려 내건………. 순수는 작가가 먼저 정해 놓은작품의 성격이 아니라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비로소 느껴지는것 아닐까?" 처중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순수한 작품이라 말해도 순수하게 다가오지 않는것도 있고, 흔히 말하는 순수의 세계는 아닌데 가슴이 뻐근하고 왈칵 눈물이 나는 작품도 있지." "거참, 점점 복잡해지는군그래. 그런 논쟁일랑, 기왕 해오던 문인들에게 맡기고 우리 청년 학도들은 밥이나 먹으러 가세. 방학이라 식당 문도 일찍 닫을 거야. 문학이니 세 - P111
하숙방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요 며칠 사 모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고향에서 하숙비에 새 학기 교재비까지 넉넉히부쳐 주시는 이맘때가 동주의 장서 목록이 가장 풍부해질때였다. 동주는 책마다, 서점에 앉아 한번 보고 말지, 도서관에서 빌려 볼지, 사서 소장할지, 선물할지 꼼꼼히 따져 보았다. 그처럼 깐깐한 과정을 거쳐 지니게 된 책들에는, ‘동주장서‘ 혹은 ‘동주‘란 이름과 함께 구입한 날짜를 써 두었다. 자신의 책을 갖게 된 중학생 때부터 그래 왔는데, 장서의 번호를 매겨 두기도 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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