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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채희석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3월
평점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류의 삶 전반에 걸쳐 현재의 유럽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은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들이 어우러진 도시와 전원의 목가적인 풍경은 여행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그런데,
이토록
찬란한 유럽의 모습 뒤에는 어떠한 역사적 내면이 숨어있을까?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전쟁과 평화, 번영과
쇠퇴는 왜 끊임없이 반복되었을까?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이해한다면, 더
나은 인류의 삶을 위해 전쟁이나 잔인한 권력에 의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았어야 하는데,
유럽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흐름은 1천 년
동안 중세 유럽 곳곳에서 반복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
왕을 처형한 시민 혁명으로 공화국이 세워지고, 마침내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어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에 이르기까지 했듯이 근대
유럽 국가들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쟁과 평화의 연속성은 유럽인들의 역사 속에 뿌리내려 왔다.
주요한 역사적 터닝 포인트들은 특정 인물들에 의해서
일어났을까?
카이사르가
없었더라면 고대 로마가 공화정으로 유지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국교화되지
않고,
칼뱅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도 없었을 것인가? 역사적
사건들은 당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맥락이 부여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교황의 칙령에 의한 십자군 원정,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은 특정 인물의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물결을 이루듯 일어났다.
즉,
경제,
종교적
신념,
정치적
상황 등 당대에 아름아름 불거진 특정 동요들이 거미줄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네트워크화되어
있었고,
특정
인물들이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들이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만 스토리를 엮어가거나, 객관화된
역사적 사실들만 나열한다면,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살펴보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미얀마
군사정권의 쿠데타와 국민들의 저항을 아웅산 수치
여사 중심으로만 엮어낸다면 크나큰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독재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항하는 것은 인간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뜨거운 그 무엇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거센 물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대한민국 현대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왕이나 황제의 권력은
몰락하고 말았던 냉험한
역사의 가르침을 외면한다면, 미얀마의
군사정권은 혹독한 대가를 언젠가는 받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와서 안타까운 목숨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책
'유럽사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탄생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탄생하기까지 2천5백
년 동안 일어났던 인류사적인 사건들을 숨 가쁘게 엮어냈다. 십자군
원정 시 예루살렘에서 7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 등 이민족을 살상하고, 같은
기독교인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는 등 유럽의 잔혹함을 여과 없이 들춰냈으며,
로마가
멸망한 476년부터
1천
년간 중세 시대를 교황과 수도원, 왕과
귀족들을 제외하고 유럽의 90%가
노예로 전락했고,
종교재판의
참혹함 등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작가
로렌스의 소설가적인
기질이 묻어나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역사적 장면은 고대 로마의 멸망 과정이다. 로마가
북쪽 국경을 카이사르가 갈리아 정복 이후 라인강으로 설정하고 더 이상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은 것이 패망의 직접적인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된다.
로마는
라인강
북쪽은 춥고 늪 지대고
야만족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국토를 확장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라인강을 따라 수 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로마
병사들이 국경을 수비하기 위해 많은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은 로마 제정을 악화시켰다.
훈족의
침입으로 라인강
북쪽의 게르만족과 고트족이 대거 라인강
남쪽으로 침입하면서 결국 로마는 멸망하고 만다. 만일
로마가 국경을 라인강
북쪽으로 확장했다면 어떤 결과가 낳았을까. 방어
위주의 전략은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역사적 교훈은 로마의 멸망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스포츠
게임이나 비즈니스,
개인의
삶에서도 나타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하는 이유다.
특정 인물의 강력한 의지가 국민,
시민,
민족
등 인간의 집단적 행동으로 표현되어 가는 과정의 연속성이 역사다. 집단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전쟁과 평화, 번영과
쇠퇴는 수 천년이 흘러도 반복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몰이해와 인간 본성에 숨어있는 자유 의지의 집단적 발현이다.
불행한 역사는 특정 인물들의 소유욕과 자만심에 의해 시작되고,
대다수
사람들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저항으로 굴복되기를 반복한다. 이런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건 누구인가? 미래의
역사가들에게 평가받게 될 현재 진행형인 기록들이 과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확증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미래의 불행한 역사가
일어날 확률을 확연하게 줄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 역사를 왜곡하거나, 현재의
불행한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시도는 뿌리부터 제거되어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
하버드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
미얀마
군사정권의 행태들이 하루빨리 바로 잡히기를 바라면서 유럽사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