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Paperback)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원서
마크 해던 지음 / Vintage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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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think prime numbers are like life. They are very logical but you could never work out the rules, even if you spent all your time thinking about them. - 12p 中

  이태원이란 곳을 거의 가지 않지만 몇달 전에 영어 공부를 더 하겠다는 신념으로 간적이 있었다. 그곳엔 애비북스(주인은 부부인데, 남편은 외국인이고 부인은 한국인이다. 그 사이에 난 딸인지 아들인지, 그 꼬마의 이름이 애비 였던 것 같다)라는 곳이 있는데, 원서 헌책방이긴 하지만 새책도 간간이 있다. 잡지에서 정보를 얻고 찾아가긴 했었는데, 멀뚱히 구경만 했다. 도대체 무얼 봐야 하는가, 라고.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부인에게 물어봤더니, 진작에 물어보지 그랬냐면서 마구마구 추천해준다. 외국인교수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원서를 보는데 처음부터 어려운거 잡는다고 영어공부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우선은 재미가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한권 한권 읽다 보면 영어 문장이라는 게 눈에 들어오고 그때부터 영어가 점점 익숙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빨리 넘어가면서 쉬운것 부터 달라고 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줬었다. 이거 말고도 몇권 사긴 했지만, 사실 아직까지 다 읽지 못했다. 이 책도 2번이나 손놓았다가 다시 잡아서 드디어 다 봤다. 원서라는 걸 제대로 다 봤을 때의 그 뿌듯함은 한글책 열권 읽은 것 만큼의 감정이다. 어쨌든, 드디어 한권, 끝낸 것이다.

  이 책을 검색해보면 '쉽다' 라고 누구나 얘기한다. 주인공도 '꼬마아이'이기 때문에 말도 정말 쉽게 한다. 그러나, 가끔 어려운 단어가 나오긴 한다. 그것은 외국인 스스로도 익숙치 못한 단어이기 때문에 찾아봐야 할 단어이기 때문에, 영어 공부 조금이라도 했다, 하는 사람은 쉽게 쉽게 넘어 갈 수 있다. 엄청난 감동이라거나, 큰 교훈을 얻기 보다는, 정말 재미로 본다면 너무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제목처럼 죽어버린 개를 발견하고, 그것을 누가 죽였을까를 따라가다가, 자기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는, 어쩌면 추리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 꼬마는 자폐증이지만, 머리는 뛰어나서 과학에 큰 재능이 있다. 중간 중간에 설명하는 지식과 사고방식은 놀라울 정도다.

  꼬마가 주인공인 책을 많이 읽어 보진 않았지만, 대부분이 천재이거나 머리가 뛰어나다, 나이에 비해서. 그것은 어쩔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는 사람은 어른이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읽는 대상도 다양한데 그것을 맞추기 위해선 무조건 적으로 어린애 말장난만 나열할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자폐증이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진 주인공을 삼았던 건 아닐까. 어쨌든, 그런건 젖혀두고라도, 즐기만하다. 그런데 수학을 좋아하는 나 이지만, 그것을 영어로 풀어쓰니까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더라. 이 책도 번역이 된걸로 아는데(표지는 정말 실망할 정도) 그걸로 몇몇 부분은 다시 봐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 잡지를 보다가 이런 글이 생각났다. 그 글 쓴 사람은 외국 서적과 한국의 출판사를 연결시켜줘서 책을 번역해서 소개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하는 말이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책을 제대로 한권 읽지를 못한단다. 그러면서 또, 외국에 너무나 좋은 책들이 많은데 그것을 다 번역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단다. 그 때 느꼈다. 나도 그런 책을 찾아봐야 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가 필요하지 않겠냐, 라는 다짐도. 또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많은 출판사들도 역시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에선 벗어날 수는 없구나, 라는 것. 좋은 책도 중요하지만 팔리는 책도 많이 중요하다 라는 것. 좋은 책을 찾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문제긴 하지만. 

  내가 말할 자격은 안되겠지만, 우선 원서는 재미다. 그리고 번역된 것을 한번 읽고 봐도 괜찮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 다음으로 선택한 책이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다. 바로, 내가 작년에 너무나도 좋게 읽었던 <엄청나게 시끄러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다. 오늘도 좀 보긴 했는데,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역시 이걸 선택한 이유도 주인공이 소년이기 때문에 말이 쉬울꺼라는 예상에. 어쨌든 원서는 2주에 한권 정도면 난 충분하다. 다시 분발.

 

  내용과 관계 없는 말이지만, 자폐증은 그렇게 희귀한 병은 아닌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자식이 그렇게 되었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글의 부모처럼 될것인가, 라는 고민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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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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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일 전 지하철에서 파는 <한겨레 21>의 표지를 보니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표지가 한겨레의 표지로 나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한국에 부는 일본문학열풍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젠 너무 진부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알게 되고 읽었던 것도 몇년이나 지났으니까. 어찌되었던, 나도 일본문학의 팬임을 피해갈 길이 없다. 모든 일본문학 작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가벼워보이긴 하다. 재미나 위트를 느끼기엔 다른 번역작품들에 비해 일본문학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할 꺼리를 주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깊이있진 않다. 그래서 예전엔 무조건 책을 사서 보는 위주였는데, 요즘은 일본문학 책을 사게 될 경우는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번 읽고 더 이상 들춰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 무서운 것을 잘 못보는 편이지만, 많이 도전하려고 하고 억지로라도 좀 보려고 한다. 그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엔 추리소설은 손도 못댔다. 그러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일본문학을 만났다. 예전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출판문화에선 우리가 일본을 지금 따라잡을 순 없다. 우리나라야 문고반이나 포켓북이 잘 나오진 않지만,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거의 대부분이 그 버전으로도 나온다. 한국사람들이 책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책 값이나 무게 때문이라는 의견이 전혀 무의미 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찌되었던, 그러한 바탕 때문인지 추리소설은 일본에서 꽤나 자리를 잡은 상태고 역사 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계보도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흥미로운 점 때문에 교양과목중 논문관련 교양을 들었는데, 주제를 추리문학으로 잡았었다). 이러한 정보를 찾고 찾다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난 <사신 치바>라는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이건 마지막으로 본 그의 작품. 그러나, 이건 좀 달랐다. 하나의 장편이다. 쉽게 장편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글이 짜여져 있다. 각 장을 나누는 곳은 하나도 없고, 다 소제목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주인공이 바뀌지도, 이야기가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난 문학에서도 정보나 지식을 얻는 걸 좋아한다. 단지 이야기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있는 좋은 말이나 상식, 역사 등을 얻는 것도 좋아한다. 이 책에선 유전자나 DNA에 관련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칠드런>을 쓰기 위해 맹인견이나 아동상담과 관련된 책을 읽고 그 목록을 작가는 마지막 페이지에 담아 놓았었다. 이 책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많이 조사했겠구나,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어 가는 방식이 정말 이 책에서 정점에 다다랐구나, 라고. 더 깊이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중력 삐에로>에는 방화사건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방화사건이 아니고,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는 방화사건이다, DNA와 관련되서. 


  또한 재미있는 내용들도 꽤 얻는다. 형과 동생이 주인공인데, 그들의 대화 중에 형이 하는 말중에, 왜 마이클 조던이 23번일까. 그는 한번도 자기 형한테 농구를 이긴적이 없었단다. 그의 형 등번호가 45번이었는데, 형의 반 이상이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23번을 했단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날 더욱 그에게 이끌리게 만들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란 책을 읽고 내가 일본문학상 같은 것들 중에 잘 믿는 것이 '일본서점대상' 이라는 상이 있다. 뭐냐면, 서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뽑은 꼭 사람들에게 읽혔음 하는 책들 이란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나 다른 유명한 일본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덜 읽히는 편이지만, 내용 면에서 그것에 쳐진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 작품도 2004년 즈음에 그 상에 뽑힌 책 인데, 그 이후로 믿기로 했다. 다른게 아니라, 이 외에도 일본엔 여러 상이 있다. 그 중에 '나오키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후보로 5번이나 올랐단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상 한 번 받는 것보다 일정 수준이 넘는 작품을 다섯 번 썼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말이 맞다. 그의 작품들 모두는 어느 하나 일정 수준 이상 쳐지는 것이 없다. 그만큼 난 그를 좋아한다. 한 번 읽고 덮을수 만은 없고, 읽고 나서의 재미와 생각할 수 있음이 난 좋다. 그의 다른 작품 중간 중간에 다른 책의 주인공들이 살며시 등장한단다. 도대체 그는 어디까지 생각 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그런 것들을 잘 잡을 수 있는 것일까. 앞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한다. 앞으로 더욱 세밀한 장치들로 날 이끌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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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6
이사카 코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몇일 전 지하철에서 파는 <한겨레 21>의 표지를 보니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표지가 한겨레의 표지로 나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한국에 부는 일본문학열풍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젠 너무 진부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알게 되고 읽었던 것도 몇년이나 지났으니까. 어찌되었던, 나도 일본문학의 팬임을 피해갈 길이 없다. 모든 일본문학 작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가벼워보이긴 하다. 재미나 위트를 느끼기엔 다른 번역작품들에 비해 일본문학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할 꺼리를 주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깊이있진 않다. 그래서 예전엔 무조건 책을 사서 보는 위주였는데, 요즘은 일본문학 책을 사게 될 경우는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번 읽고 더 이상 들춰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 무서운 것을 잘 못보는 편이지만, 많이 도전하려고 하고 억지로라도 좀 보려고 한다. 그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엔 추리소설은 손도 못댔다. 그러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일본문학을 만났다. 예전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출판문화에선 우리가 일본을 지금 따라잡을 순 없다. 우리나라야 문고반이나 포켓북이 잘 나오진 않지만,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거의 대부분이 그 버전으로도 나온다. 한국사람들이 책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책 값이나 무게 때문이라는 의견이 전혀 무의미 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찌되었던, 그러한 바탕 때문인지 추리소설은 일본에서 꽤나 자리를 잡은 상태고 역사 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계보도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흥미로운 점 때문에 교양과목중 논문관련 교양을 들었는데, 주제를 추리문학으로 잡았었다). 이러한 정보를 찾고 찾다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난 <사신 치바>라는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난 왜 이 작가의 이름이 입에 익숙치 않은 것일까. 또 이 책을 고르고 나서야 같은 작가 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읽는 독서의 흐름은 한번은 깊이 있게, 한번은 가볍게 라는 흐름이다. 그 '가볍게'에 일본문학이 자주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글 읽는 집중력이 너무나 떨어졌다고 느낀 나머지 학교 도서관에서 일본추리소설이나 가벼운 문학을 잔뜩 빌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칠드런>. 역시 똑같은 방식이다. 단편이지만 하나의 장편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도 그랬단다. 띠지에 적힌 단편집이라는 말에 속지 말라고. 맞다. 그 이기에 이걸 하나의 장편으로도 볼 수 있다, 아니 그냥 장편이다. 내가 그를 지지하게 된 계기다. 지금까지 봐온 그의 말하기는 가볍긴 하다. 하지만, 그 가벼움을 얘기 하기 위한 방식이 대단하다. 각 챕터로 보면 단편이기에 그 속에 많은 이야기 관련 복선이나 트릭들을 설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걸 잘 포착해 버리는 나로서는 큰 '뒤통수맞음' 잘 없었고, 그것이 지날수록 반전도 받아들이기에 무뎌지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작가의 능력 면에선 꽤나 칭찬해 줄만하다. 그의 머리는 원래 좋은 건지, 아니면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엄청난 고민을 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그의 머리 속에는 이야기가 엮이는 지도가 수백장 펼쳐져 있는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독자로서는 그냥 그것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감탄하고 또 감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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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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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일 전 지하철에서 파는 <한겨레 21>의 표지를 보니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표지가 한겨레의 표지로 나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한국에 부는 일본문학열풍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젠 너무 진부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알게 되고 읽었던 것도 몇년이나 지났으니까. 어찌되었던, 나도 일본문학의 팬임을 피해갈 길이 없다. 모든 일본문학 작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가벼워보이긴 하다. 재미나 위트를 느끼기엔 다른 번역작품들에 비해 일본문학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할 꺼리를 주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깊이있진 않다. 그래서 예전엔 무조건 책을 사서 보는 위주였는데, 요즘은 일본문학 책을 사게 될 경우는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번 읽고 더 이상 들춰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 무서운 것을 잘 못보는 편이지만, 많이 도전하려고 하고 억지로라도 좀 보려고 한다. 그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엔 추리소설은 손도 못댔다. 그러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일본문학을 만났다. 예전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출판문화에선 우리가 일본을 지금 따라잡을 순 없다. 우리나라야 문고반이나 포켓북이 잘 나오진 않지만,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거의 대부분이 그 버전으로도 나온다. 한국사람들이 책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책 값이나 무게 때문이라는 의견이 전혀 무의미 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찌되었던, 그러한 바탕 때문인지 추리소설은 일본에서 꽤나 자리를 잡은 상태고 역사 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계보도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흥미로운 점 때문에 교양과목중 논문관련 교양을 들었는데, 주제를 추리문학으로 잡았었다). 이러한 정보를 찾고 찾다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난 <사신 치바>라는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이것 역시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사실, 책을 구입하고 나서야 <사신 치바>와 같은 작가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구조는 <사신 치바>와 비슷하다. 이번엔 각각 다른 주인공이지만, 그 단편들 속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주민으로도 등장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전체적인 큰 틀을 이룬다. 이 책 소개글엔언제나 그런 말이 있다. 종말이 다가오지만, 그것에 대비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고.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라고. 작가도 글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누누히 말한다. 분명 종말이 다가옴에 따라 폭동은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엔 잠잠해졌다고. 그 때부터 삶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각각 개인 사정이 있고, 종말에 의해 가족도 잃지만 그들은 종말이라는 이름앞에 또 다른 가족을 이루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서로 용서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종말도 그렇다. 종말은 종말일 뿐, 삶은 살아간다. 아무리 잠을 잔다고 혹은 죽는다고 종말을 피할 순 없으니.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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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몇일 전 지하철에서 파는 <한겨레 21>의 표지를 보니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표지가 한겨레의 표지로 나와 있는 걸 보았다. 그것은 한국에 부는 일본문학열풍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젠 너무 진부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알게 되고 읽었던 것도 몇년이나 지났으니까. 어찌되었던, 나도 일본문학의 팬임을 피해갈 길이 없다. 모든 일본문학 작품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가벼워보이긴 하다. 재미나 위트를 느끼기엔 다른 번역작품들에 비해 일본문학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할 꺼리를 주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깊이있진 않다. 그래서 예전엔 무조건 책을 사서 보는 위주였는데, 요즘은 일본문학 책을 사게 될 경우는 조금 주저하게 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번 읽고 더 이상 들춰보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난 무서운 것을 잘 못보는 편이지만, 많이 도전하려고 하고 억지로라도 좀 보려고 한다. 그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엔 추리소설은 손도 못댔다. 그러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서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일본문학을 만났다. 예전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건 몰라도 출판문화에선 우리가 일본을 지금 따라잡을 순 없다. 우리나라야 문고반이나 포켓북이 잘 나오진 않지만,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거의 대부분이 그 버전으로도 나온다. 한국사람들이 책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책 값이나 무게 때문이라는 의견이 전혀 무의미 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어찌되었던, 그러한 바탕 때문인지 추리소설은 일본에서 꽤나 자리를 잡은 상태고 역사 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계보도 존재하고 있다(이러한 흥미로운 점 때문에 교양과목중 논문관련 교양을 들었는데, 주제를 추리문학으로 잡았었다). 이러한 정보를 찾고 찾다가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난 <사신 치바>라는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꽤 빨리 끝낸 편이다. 여러 단편 같지만, 주인공은 똑같고 그가 사신으로서 행하는 일들이 펼쳐진다. 화려한 사건도 심각한 주제의식도 있진 않지만, 하나의 단편속에 처음과 끝을 미묘히 연결해주는 그의 힘은 꽤나 강하다. 이게 어쩌면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그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는 언제나 끝에서 모든 것들이 하나의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절대로 억지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고, 작가는 의도적으로 곳곳에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들을 장착해 놓은 것이다. 그게 난 이 작가의 '능력'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은 다 보고 약간 의아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왜 이 작품을 이 카페에서 추천을 했을까 하고. 나중에야 깨닫지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추리'라는 범주 안에 속하면서도 한 발은 교묘히 그 범주 밖으로 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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