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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평점 :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남들과는 다른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어릴 적 본 일본 만화에서 처음 알게 된 사이코메트리라는 초능력과 그 능력을 가진 주인공 '에지'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사용해 수사에 도움을 준다. 그 당시에는 그 능력이 신기하기도 하고, 초능력이라는 게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을 동시에 했던 것 같다. 슈퍼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그들의 삶은 언제나 사건, 사고의 연속이고 항상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 주변인들은 언제 악당의 표적이 될지 모르는 불안함을 가진다. 사람들은 초능력자들을 두려워하면서도 열광하기도 하고, 무조건적인 희생과 정의감을 강요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나도 내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니에요." /126
미미여사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꽤 유명한 소설들로 인해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믿고 보는 작가 대열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작가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모방범, 화차 등 꽤 많은 작품들의 이름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책을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용은 잠들다>는 1992년 미미여사에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새 옷을 입고 재 출판된 책이자, 나에겐 SF, 판타지, 시대극 가리지 않고 흡입력 있는 필력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인 걸 몸소 체험한 책이기도 하다. 왜 이제서야 미미여사의 책을 읽어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도톰한 586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일정한 속도로 멈추지 않고 술술 넘어갔다. 그리고 보기 좋게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인간의 의식 사이를 떠도는 두 소년, 남다른 능력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폭풍우 치던 밤에 일어난 한 아이의 실종사건으로 모든 일이 시작된다. 패기 넘기는 젊은 기자 고사카는 이 일을 계기로 두 소년과 만나게 되고, 알 수 없는 협박과 주변에서 읽어나는 미스터리한 일 들, 수많은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의식과 무의식,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데?!
초능력자가 등장하며 그 능력으로 멋지게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영웅담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이나무라 신지', '오다 나오야' 두 사람 또한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때 느끼는 두려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두고 갈등하기도 하고 그저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그 애를? 아니, 그 애들이군요, 두 명이니까. 그들을 믿습니까?" (...)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믿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그런 마음으로 판단을 망설이면 거기서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죠. 유보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머뭇거리면 안 됩니다."
"빈틈이 생긴다?"
"그렇습니다. 남을 속이는 인간들이 그 틈새에 손을 집어넣고 상대를 조롱하니까요. 마치 손가락 인형을 움직이듯이." (...)
믿어주고 싶다, 호의적으로 ······. 어떤 의미에서는 위에서 아래를 너그럽게 내려다보는 듯한 그런 생각 때문에 빈틈이 생기는 겁니다." (...)
"믿어주고 싶다. 이런 식으로 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들에게 진짜로 속았을 경우, 그걸 핑계로 자기 체면을 지키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 469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고사카 쇼코'의 방관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사건 사고들. 그 시작은 신지일지도 모르지만,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고, 믿고 싶어 하며 신지아 나오야를 자신의 삶 속에 서서히 품어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나 또한 믿음과 의심을 마구 널뛰기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속지 않겠다는 의지와 믿고 싶어지는 마음 사이에서, 단순히 추리소설, 판타지,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은 꽤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사회적 모순, 인간의 욕망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목숨이나 삶 따위는 무참히 망가뜨려도 된다는 지독한 이기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그게 초능력이든, 타인을 향한 선과 악이든
히어로물을 보고 나면 꼭 나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 재미있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스릴 넘치고, 색다른 일상의 연속이지만 평범한 일상의 파괴를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능력을 숨기고 평범한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정답일까? 두려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 정의를 행할 것인가? 마음속으로 내린 답은 명확하지만, 상황과 때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수도?
우리는 각자 몸 안에 용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어마어마한 힘을 숨긴, 불가사의한 모습의 잠자는 용을. 그리고 한 번 그 용이 깨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 부디, 부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무서운 재앙이 내리는 일이 없기를 ······.
내 안에 있는 용이 부디 나를 지켜주기를······.
오로지 그것만을. / 580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