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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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제 시대는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아픔이지만, 소설이나 드라마,영화에서는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선 땅 경성이야기는 쉽게 접하지만,이민족 1세대의 이야기는 제한적으로 밖에 접할 수 없었는데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그것도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끌리었다.(물론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흥미나 매력적인 소잿거리를 넘어서 과거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과거를 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18세 여인 셋의 여정을 보고있노라면 그 시대의 식민의 아픔보다 여성으로서의 한계와 차별이 그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자였으나 양반이 아니었던 홍주는 병든 남편에게 시집가 바로 과부가 되어 돌아와 갖혀 지내게 되고, 양반의 딸이나 의병의 자식인 버들은 아버지와 오빠들을 잃고 가난 속에 허덕이며, 송화는 무당의 손녀로서 미친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 부터 돌 팔매질을 당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 찾아온 기회는 사진 신부로 포와(하와이)에 가서 자리를 잡고 친정에 돈을 보내는 것,가서 배우지 못한 공부를 하고 사람답게 사는 막연한 꿈을 꾸게 한다. 사진 속의 남자들은 멋진 차 앞에 서 있고, 젊고 편지를 멋드러지게 쓴다.


그들의 여정은 녹녹하지 않다. 사실 사진 결혼은 하와이에 이주해 온 조선 남자 노동자들의 방탕한 생활 방지를 위한 하와이 정부의 배려차원에서 허락된 것으로, 그들은 이미 나이가 신부들보다 아버지 뻘이거나 할아버지 뻘이다. 운 좋은 버들은 시아버지가 신청 한 것으로 그나마 젊은 신랑이고, 홍주의 남편은 할아버지에 그마저도 조선에 부인을 두고 아들이 필요해서 재취자리였다. 송화의 남편은 셋중 제일 나이도 많아 버들의 시아버지 뻘이었고,노름꾼에 가정 폭력까지 일삼는 한량이었다. 아무리 삶이 바다처럼 때때로 파도가 일고 태풍이 몰아 친다고 해도 조선 땅도 아닌 외지에서 그녀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생존하며 버티고 뿌리 내리기 시작한다.


어려움에 굴복하기 보다 계속 돌파구를 찾아내는 버들의 모습은 결국 첫정을 잊지 못하던 남편 태완의 마음도 돌리게 했으나.그의 독립 운동을 향한 열정 앞에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그 먼 땅에서 무슨 독립일까 했으나 그의 열정은 결국 그의 발걸음을 만주로 향하게 했고, 아내 버들과 아들,그리고 뱃속의 새 생명을 두고 생이별을 하게 한다.


절망 조차 사치인 생존의 문제 앞에 내던져진 버들은, 남겨진 홍주와 송화와 함께 여성 중심의 가정의모습으로 특별한 연대를 이루며 함께 삶을 위한 고군분투를 한다.

하와이 섬은 원래 원주민들 조차 노동자들로 전락하고 일본인,한국인들을 부리는 미국 본토에서 온 이들 또한 이주와서 노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사람으로 대우하지는 않았다. 마치 조선에서 양반과 상민,노예등의 계급이 있었듯, 그들의 삶 또한 다르지 않았다. 버들은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더욱 악착같이 버텨야 했고, 무너질 때마다 다시금 일어나야했다.


"저 아들이 꼭 우리같다.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중략) 홍주 말대로 자신의 인생에도 파도같은 삶의 고비가 수 없이 밀어 닥쳤다.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그 뒤의 삶,사진 신부로 온 하와이의 생활,, 어느 한가지도 쉬운 것이 없었다. 홍주와 송화가 넘긴 파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없어지지 않는 파도 처럼 살아있는 한 인생의 파도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p324


엄마라는 이름의 강인함, 소녀는 그저 약한 존재인데 지켜야 할 것 앞에서는 맹수와 같아진다.

임신 9개월을 지나 10개월을 앞두고,, 엄마라는 이름을 생각해본다,, 이 세상 이 이름만큼 절대 을이 있을까. 불공정한 계약 불평등의 끝은 부모와 자식 같다는 생각을 한다. 10달을 뱃 속에 품고 또 몸숨걸고 낳아 수십년을 나를 걱정하는 엄마! 당연한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뱃속의 아이를 기다리며 깨닫는다.


엄마라는 이름의 의미를,, 그래서 제목을 안녕,나의 엄마들이 아닌,, 알로하,나의엄마들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알로하는 하와이에서 안녕이라는 인사이지만,조건없이 사랑하고 서로 화합하는 상호간의 존중을 의미한다. 조건 없는 엄마의 사랑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바로 그 알로하!!!( 물론 요즘 뉴스를 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엄마들이 너무 많으니 그 점은 예외로 두고서라도,,)


"우리 어무이는 왜놈없는 시상에서 살라고 낼를 여로 보냈지만 내는 공부시켜준다캐서 온기다. 돌이켜보면 내는 새시상살라고 어무이,동생들 다 버리고 이 먼데까지 왔으면서 딸은 내 곁에 잡아둘라 카는 기 사나운 욕심인기라. 내는 여까지 오는 것만도 벅차게 왔다. 인자는 니가 꿈꾸는 시상 찾아가 내보다 멀리 훨훨 날아가그레이. 그라고 니 이름 처럼 고귀한 사람이 되그라. 암만 멀리가도 여가 니 집인걸 잊어버리지는 말고."384


자신은 고되게 여기까지 왔으나,이제 자식 만큼은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깨달은 펄의 인사가 바로 알로하,나의 엄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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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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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류시화님의 책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한 두조합의 단어를 좋아한다. 우리는 현재 이 지구라는 별에 머무르며 때로는 나그네로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하여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 볼 수 있는 마음의 태도와 또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조합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걸리버 여행기는 이미 여러차례 영화와 드라마,만화 등에 소재로 씌여져서 너무 잘 아는 모험기였다. 어브벤처를 추구하는 뭔가 돈티호테적인 영혼을 가진 사람. 하지만 이번에 읽어 본 걸리버 여행기는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성난파도를 만나 표류하게 되기도 하고,그 때 우리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질문을 던졌다.


1. 릴리팟(소인국)이야기
2. 브롭딩낵(거인국)이야기
3. 라퓨타(날아다는 섬),발니바비,럭낵,글럽덥드립,일본 여행기
4.후이늠국(말의 나라)여행기


총 4부로 이어진 이 이야기는 같은 형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국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그는 무언가에 홀리듯 또다시 목숨을 내건 바다로의 항해를 시작한다. 지난 여행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수치를 당하였으나 그곳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중독이었을까. 그는 다시금 배에 오르고 표류하게 되어 그 나라의 포로가 된다.


모험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철저하게 표류된 여행자였다. 요즘의 여행의 개념은 옛날과는 달리 조금 더 주체적이고 쉼과 생각의 전환을 위해 가기도 하고, 이미 몇번이나 가본 그곳에 가서 그저 머무르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도 많다.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그 나라의 언어를 알지 못해도 어플만 돌리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가능하고, 미리 맛집의 검색등이 가능해져서 미지의 시계로의 탐험에 대한 영역이 줄어 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너선이 그려낸 이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언어의 습득은 필 수였고, 그는 최대한 빠르게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흡수해 버린다. 이미 그가 평생 배우고 습득해 온 문화와 비교하기 보다는 그곳에서 겪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눈을 크게 듣고, 귀를 열어 듣고 마음을 열어 바라본다. 1차적인 편견과 판단을 넘어선 관찰자로서의 여행자의 자세를 취한다고나 할까. 때로는 그의 유럽권 교육과 달라서 어리석어 보이고, 비 합리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최대한 그는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의 이러한 자세와 지혜 덕분이었을까, 그는 가는 곳마다 왕이나 리더들에게 소속되어 현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들었던 이야기로 그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토론등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던 고전 걸리버는 딱 반만 알고 있었구나, 소인국에서 그들의 파벌 싸움이 굽으로 나누어 지고,
넓은 부분으로 계란을 깨는가 아니면 좁은 면으로 계란을 깨는 가에 따라 그들의 사상이 나뉘는 것을 보며 결코 웃을 수 많은 없는 우리의 세상임을 느꼈다. 현재에도 코로나 사태로 정세는 시끄러우나 파벌 들의 싸움은 결국 자신의 이권 다툼이고, 자리 싸움이고 생각이 다른 상대에 대한 공격이다.


각각의 나라는 소인과 거인국, 수학과 음악에는 뛰어나지만 지나친 사색으로 부터 흔들어 깨워줄 사람이 필요한 라퓨타의 사람들, 그리고 후이늠국에서의 짐승들 그러나 소름끼치게 사람과 비슷한 그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은 걸리버만이 느낀 감정이 아니라 내가 읽으면서도 느낀 두려움이었다. 해악과 풍자와 비유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각각의 다른 나라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철학자들은 그 자체로 크거나 작은것은 없으며 비교에 의해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p105.


때로는 산악인간으로 소인으로 수학과 음악에 무지한 사람으로, 그러다 그는 그와 동등한 조건의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원한다. 물론 이 감정은 하나의 여행이 끝날때마다 느끼고 또 다시 떠난 바닷길에서 생존게임에 내던져지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도 관찰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였다.


16년 7개월을 여행한 그는 그의 여행이후 진실을 알리고자 이 여행기를 기록했다고 말한다. 어떠한 목적이나 정당,이익과 상관없이 공익을 위해 기록했다는 말로 영국이 결코 이 나라들을 식민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비유와 판타지가 섞인 이야기로 진실을 말하고, 그의 비판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그의 솜씨에 감탄하며, 오늘 나도 나만의 여행의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그곳에는 판타지가 아닌 진실만을 담을 것이라 장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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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지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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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지"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의 작렬하는 마을.
작은 촌에서 직할시가 되기까지의 마을의 발전과 격변기를 쿵씨집안의 형제들과 둘째 쿵밍량의 아내 주잉의 서사를 통해 펼쳐낸다. 옌렌커의 작품은 소설 속의 구조를 빌어 현재 중국의 모습을 담아내고 고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이고 주제 이지만 막힘 없는 필체와 필력에 663p라는 방대한 분량에도 몰입감있게 읽을 수 있었다. 분면 자례시는 허구의 공간임을 알고 읽기 시작했으나 작가가 취한 액자식 구성 덕에 사실과 허구사이에서 방황하며 읽어내려갔다. 허구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파벌과 배신,선동과 은폐의 이야기는 과거나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탓이다.



빠른 시간 안에 속전속결로 해결 보고, 마을의 이익과 돈이 절대 선과 기준이 되어버린 물질만능 사회에서, 도덕의 결여와 비인간화, 가족간의 해체 시민의식의 결여 등은 어찌보면 자명한 결과이다. 초가집을 기와지붕으로 바꾸어 준다고 하여서 눈감았던 기차에서의 도적질, 그 후 주잉의(쿵밍량의 아내)소개로 이루어진 자례시 여성들의 희생은,어떠한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들의 삶이 짓밟히고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벌에 의한 원한과 복수로 주씨 집안의 딸 주잉은 쿵밍량에게 시집을 왔으나 자신의 계략과 모략(직업 여성)을 통해 쿵씨 집안의 남자들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자신 또한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개혁 개방 아시죠? 부자되기 싫어요? 여러분의 아가씨,자매들이 여러분에게 부쳐준 돈으로 기와집을 지었다는 사실 잊지마세요.!" 침묵이 흘렀다.(중략) 물질적 흥성에는 시간의  응원이 필요한 법,사람들은 차츰 거리의 일을 묵인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
처음에는 손가락 질 하던 일들을 당연시 여기고, 경악하고 경계하던 것들에 대한 무감각이 사람들에게 파고들었다.


만들어진 진실과 내적 진실 가운데서 표면에 익숙해진 인민들은 이상하다 여기지 않고, 그저 위에서 발표하는 대로 믿고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주머니 속에 들어 오는 돈과 보상 덕분에,자식의 죽음에 오열하던 노인들은 원망대신 감사를 하였다. 건물이 신식화되고 높아질 수록 그들은 땅과 분리되었고,생업이었던 농사대신 무료하게 노인정에 들어가야했다. 무덤가에서 정기적으로 울며 스스로 위로 받던 그들은 풍습과 역사 그리고 그들의 뿌리를 잃은 채 돈에 잠식되어져가는 인민이 되었다. 그들의 풍습을 잊은 그들의 번영은 쿵밍량시장이 살해를 당하며 끝이났다.


일주일만에 공항이 세워지고 도로가 이삼일 안에 깔리는 그 놀라운 마법같은 발전에는 인민의 피가 손가락이 다리가 흩뿌려져 있었다.
자례를 직할시로 만들기 위해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내 달라 부탁하는 쿵밍량에게 동생 쿵밍야오는
"그런것들을 건설하고 싶다면 나한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다리 5천개와 손가락 만개를 줘.다리를 그정도 잘라내지 않고 손가락을 그렇게 꺽지 않는다면,대가도 없이 그런 작업을 단시간에 끝낼 수 있을것 같아?"
피의 대가로 며칠만에 지어지고,마침내 직할시가 되었으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 시기의 격변기에 처한 중국의 모습을 다루었다고 하지만,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겨우 반세기만에 눈부식 성장을 한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에 현 시점의 우리를 돌아본다.
옌롄커는 이 소설로 무엇을 고발하고 싶어했을까, 과거일까 현재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진실과 실재일까 질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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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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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넘어 오지마! 넘으면 다 내꺼야!!

나에게 첫 선과 벽은 초등학교 시절의 커다랗고 긴 책상위의 선과 가림판이었다. 평소에 죽이 잘 맞아 놀다가도 어느 순간 토라지면 짝꿍에게 책상의 반의 권리를 주장하곤 하였다. 때로는 호기심에 친해지고 싶은 짝꿍이지만, 주변에서 놀리는 낌새라도 있으면 이렇게 엄포를 놓고는 했다. 여기는 내자리야. 넘어 오지마.!!

사람이 벽을 쌓고 울타리를 치고 나와 너의 선을 구분 짓는 것은 본능 인걸까. 역사 속에서도 많은 종류의 벽들이 나온다. 장벽,성벽,펜스 등의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었고, 처음의 용도는 퇴색하고 그저 상징성만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벽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사는 참 흥미로왔다. 그것이 비단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이므로, 과거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앞으로 우리는 벽을 ,장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고 대처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사람이기에 실수는 하지만 과거의 역사적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분명하게 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만리장성,토끼장벽,게토 장벽,팔레스타인지역의 분리 장벽,리마 장벽,남북한의 휴전선, 중국의 사이버 장벽 등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이 장벽들은 처음에는 공격과 방어의 전술로서 지어지기도 하고 현재는 이념과 계층간의 장벽으로서 또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무시한채 그저 감시의 구실로 혹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스스로를 가두고 한계짓는 선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특히 저 분단의 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 지에 따하서 장벽을 없에든 지키든 사람들은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만리장성은 북방의 침입에서 중국을 지켰지만,동시에 중국을 그 테두리 안에 가두기도 했다.

-토끼장벽은 넘쳐나는 토끼의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위해 설치되었으나 실효성이 없었다.

-게토장벽은 독일군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로 국외 추방을 위한 임시 거쳐였으나 바로 이곳에서 학살이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의분리장벽은 현대판 게토장벽으로 평가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장벽이다.

-리마장벽은 부자와 빈곤층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남한과 북한을 나누고 있는 분단선

-사이버 장벽은 중국의 가상세계 만리장성(시진핑을 비꼬는 어떠한 단어도 검색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자세한 장벽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무엇 보다 잔인한것이 인간이고, 이기적인 것 이 바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든다.과거의 게토와 현재의 게토로 불리는 분리장벽에 대해서는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로 변화된 그 가운데 종교라는 신념이 섞여 있다.

그리고 다른 장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남미페루의 수도에 있다는 리마 분리 장벽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담장이다. (-부유한 계층과 빈곤층 사이의 경계를 짓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름만 다르지 우리나라에서도 울타리 라는 이름으로 각종 팰리스들과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세워진 높은 담장과 선으로 구분되어 존재하고 있다. 다만 나는 당연하게 사유지이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학군이 좋은 동네에 옆 동네 빈곤층이 들어와서 다니면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고 시위하는 이 시대의 학부모들의 이기주의에 나는 무감각해진 것인 지도 모른다. 이 펜스들은 각각의 계층간을 나누고 상대적인 박탈 감을 주며 보이지 않는 투쟁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미국의 " 장벽은 대지의 흉터이다.(미국의 장벽에 씌여있음)VS각자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만든 합리적이고 필요한 정치적 분계선이다(존 데이비드 헤이워드 미국 상원 의원) 라는 대립적인 문구에 대해 생각해볼 만 하다.

"시멘트와 철조망이 장벽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가. 분리 장벽의 진정한 무서움과 위력은 실제구조물에 있는게 아니라,바위란이 본것처럼 그런 장벽을 용인 하거나,정당화하거나,무관심하게 여기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마음을 콘크리트 벽처럼 고착화하는 오늘 날의 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p262"

과연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의 세계,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의 모습인가,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인지 그저 나의 이권을 위한 힘겨루기 인지 생각해 본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여기저기 시끄러운 상황들이다. 매이매일 사망자의 소식과 확진자의 소식앞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너의 분리가 아닌 우리가 함께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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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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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0년 전의 철학자가 한 말과 글이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저 심심풀이나 호기심으로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라 마음 다잡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이기에,이 질문은 중요했다.

수사학은 흔히들 말잘하는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설득의 기술>이라고 하 는편이 맞다. 어떤 분야에서든 설득력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으로 정치학이나 재판 등에서 많이 사용되어진다. 변증학과는(절대적인 참과 거짓을 나눔) 짝꿍으로 예증이나 생략 삼단논법들이 사용된다.

수사학이니,변증학,예증,삼단논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머리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낯선 용어에 대한 거부감만 참고 견딘다면 2000년도 더 넘은 그 시대의 지혜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할 것이다.

연설과 정치학에서 이용되는 설득이 고대 그리스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 시대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정치들으로 토론 문화와 연설 문화등으로 청중 앞에서의 연설이 잦았고,공중재판을 통해 자신을 혹은 이웃을 변론해야하는 일들이 일상하가 되어있었다. 이때 사용되었고 도움이 되었던 것 이 수사학으로 ,실질적인 말하는 기술은 이 책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연극계의 고전)등을 해 통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총 세가지 파트에 대해 나오는데,제 1권에서는 수사학의 본질과 재판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 등이 나오고, 제 2권에서는 청중의 감정에 관한 것들, 제 3권에서는 문체와 전달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아마도 제 3권의 구 성 탓에 많은 사람들이 수사학을 말의 기술, 말 잘하는 법의 학문으로 생각한 것이 아닐까..

제 2권의 청중의 감정에 대한 정의 편에서는 흔히 우리가 자기계발서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의 정의가 좀 더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나온다. 설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내려가다 인간에 대해 그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감정 구차하고 쪼잔한 거 아니야 싶은것 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하게 집어내서 스스로 민낱을 바라보며 이 감정의 원인에 대해 알게 해준다. 왜 기분 나쁜지도 모르고 불쾌할 수 있는 모호함에 대한 명쾌한 글들,무시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 누구나 분노하였음을 알수 있다.

물론 옛날과 지금의 정의와 대처가 현대와는 다른 것 등도 있다. 이것은 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도 있고, 통념적인 변화들도 있다. 옛날에는 자신의 명예를 목숨처럼 중시했다면 현재는 나의 목숨만큼 중요한 것이 다른이의 인권이기에(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복수라는 개념이 의로운 일이 아닌 명백한 범죄 행위로 구분된다.

제 3권의 문체와 말하는 기술은 요즘의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러가지 형태의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자유롭고 소통을 중시하는 요즘, 진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청중이나 독자들에게 어떠한 문체와 전달을 통해 말을 하는가 또한 중요하다.

기원전 335년 쯔음에 씌여진 이 책이, 현재에도 유용한가를 다시 질문한다면,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전은 현대에서 보편적인 가치가 있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비록 두려워 할 만한 일이더라도,자기가 겪으리라 생각하지 않는 일이나 누군각가 자기에게 그런 일을 겪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p126 5장 두려움과 자신감 中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19확산의 경우 현재는 전국적인 지역감염으로 번지게 되었지만, 초반의 청정지역으로 분리되던 곳,혹은 자신의 동네에 확진자가 없는 경우등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적었고, 모임을 취소하는 것을 유난스럽게 여겼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쩌다가 다른이에게 일어난 불행 정도로만 생각하는 순간 안전불감즐에 걸린다. 하지만 이런 재난의 경우는 운이 없어서 생겼다기 보다는 누구나 걸릴 수 있기에 각자가 조심해야 하는 문제인듯하다. 요즘 연일 뉴스를 통해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보며 심란하기도 하고,이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수사학에서 2,3권에서 다뤘던 것들이 보인다.

씁슬한 작금의 현실에 마음이 답답하지만 눈과 귀를 닫을 수는 없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내가 먼저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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