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넘어 오지마! 넘으면 다 내꺼야!!
나에게 첫 선과 벽은 초등학교 시절의 커다랗고 긴 책상위의 선과 가림판이었다. 평소에 죽이 잘 맞아 놀다가도 어느 순간 토라지면 짝꿍에게 책상의 반의 권리를 주장하곤 하였다. 때로는 호기심에 친해지고 싶은 짝꿍이지만, 주변에서 놀리는 낌새라도 있으면 이렇게 엄포를 놓고는 했다. 여기는 내자리야. 넘어 오지마.!!
사람이 벽을 쌓고 울타리를 치고 나와 너의 선을 구분 짓는 것은 본능 인걸까. 역사 속에서도 많은 종류의 벽들이 나온다. 장벽,성벽,펜스 등의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었고, 처음의 용도는 퇴색하고 그저 상징성만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벽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사는 참 흥미로왔다. 그것이 비단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이므로, 과거 속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앞으로 우리는 벽을 ,장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고 대처해야 하는 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사람이기에 실수는 하지만 과거의 역사적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분명하게 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만리장성,토끼장벽,게토 장벽,팔레스타인지역의 분리 장벽,리마 장벽,남북한의 휴전선, 중국의 사이버 장벽 등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이 장벽들은 처음에는 공격과 방어의 전술로서 지어지기도 하고 현재는 이념과 계층간의 장벽으로서 또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무시한채 그저 감시의 구실로 혹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스스로를 가두고 한계짓는 선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특히 저 분단의 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 지에 따하서 장벽을 없에든 지키든 사람들은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만리장성은 북방의 침입에서 중국을 지켰지만,동시에 중국을 그 테두리 안에 가두기도 했다.
-토끼장벽은 넘쳐나는 토끼의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위해 설치되었으나 실효성이 없었다.
-게토장벽은 독일군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로 국외 추방을 위한 임시 거쳐였으나 바로 이곳에서 학살이 시작되었다
-팔레스타인의분리장벽은 현대판 게토장벽으로 평가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장벽이다.
-리마장벽은 부자와 빈곤층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남한과 북한을 나누고 있는 분단선
-사이버 장벽은 중국의 가상세계 만리장성(시진핑을 비꼬는 어떠한 단어도 검색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자세한 장벽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 무엇 보다 잔인한것이 인간이고, 이기적인 것 이 바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든다.과거의 게토와 현재의 게토로 불리는 분리장벽에 대해서는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또한 피해자와 가해자로 변화된 그 가운데 종교라는 신념이 섞여 있다.
그리고 다른 장벽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남미페루의 수도에 있다는 리마 분리 장벽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담장이다. (-부유한 계층과 빈곤층 사이의 경계를 짓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름만 다르지 우리나라에서도 울타리 라는 이름으로 각종 팰리스들과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세워진 높은 담장과 선으로 구분되어 존재하고 있다. 다만 나는 당연하게 사유지이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학군이 좋은 동네에 옆 동네 빈곤층이 들어와서 다니면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고 시위하는 이 시대의 학부모들의 이기주의에 나는 무감각해진 것인 지도 모른다. 이 펜스들은 각각의 계층간을 나누고 상대적인 박탈 감을 주며 보이지 않는 투쟁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미국의 " 장벽은 대지의 흉터이다.(미국의 장벽에 씌여있음)VS각자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만든 합리적이고 필요한 정치적 분계선이다(존 데이비드 헤이워드 미국 상원 의원) 라는 대립적인 문구에 대해 생각해볼 만 하다.
"시멘트와 철조망이 장벽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가. 분리 장벽의 진정한 무서움과 위력은 실제구조물에 있는게 아니라,바위란이 본것처럼 그런 장벽을 용인 하거나,정당화하거나,무관심하게 여기는 우리의 마음에, 그런 마음을 콘크리트 벽처럼 고착화하는 오늘 날의 제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p262"
과연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의 세계,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의 모습인가,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과 대처인지 그저 나의 이권을 위한 힘겨루기 인지 생각해 본다.
현재는 코로나 19로 여기저기 시끄러운 상황들이다. 매이매일 사망자의 소식과 확진자의 소식앞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너의 분리가 아닌 우리가 함께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