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잡지를 읽다 - 『동광』 창간 100주년, 그리고 『새벽』, ‘금요강좌’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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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잡지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 : 잊힌 시대를 다시 밝히는 '기록의 힘'

동녘 하늘의 빛이 되다 - 동광 / 새벽을 일깨우다 - 새벽 / 시대의 시민을 잇다 - 금요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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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박물관을 다녀온 후 역사 속 우리의 잡지가 소중하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거든요.

이번 <시대의 잡지를 읽다>를 통해 동광, 새벽, 금요강좌까지. 일제 암흑기의 민족의식과 광복 후 민주화 그리고 시민의식을 심어 준 잡지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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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 창간호가 탄생하다'

동광은 앞으로 민족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간주의 같은 특정 이념을 추구하는 잡지를 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동광은 창간호부터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난 극복과 국토를 수호한 영웅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국민 특히 젊은이에게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조국 독립의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고 하였다.

특히 안창호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동광의 창간호 (1926.5)의 '합동과 분리'글을 읽을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안창호는 이 땅의 젊은이에게 애국애족의 사상과 함께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품성과 실력에 대한 꾸준히 가름침을 주는 글을 동광을 통해 발표했네요.



동광은 창간호부터 과학란과 건강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당대 다른 잡지와는 구별되었네요.

그리고 1922년 아인슈타인 부부의 일본 도쿄 방문을 계기로 우리나라 전체에 상대성이론 열품이 일어났거든요. 그 소식도 동광에 그대로 실려있더라구요.



내가 몰랐던 동광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솔직히 동광의 시작만 알았더라구요.

┌ 동광은 홍사단의 국내 조직인 수양동우회의 기관지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잡지이다. 1926년 5월에 창간호가 나오고 제 3호는 원고가 일제에 압수되어 나오지 못하였다. 1927년 8월까지 제16호를 내고는 휴가했다가, 1931년 1월 속간호를 내고 1933년 1월호까지 40호를 기록했고, 광복 이후에 복간을 위해 노력이 있었다. ┘

동광이라는 잡지 속 다양한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흥미롭더라구요.

동광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니 우리나라의 역사, 시대적 이야기, 그 시대 속 우리민족의 아픔까지 다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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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의 속간호 새벽을 창간하다'

새벽은 홍사단의 기관지 성격과 아울러 일반적인 종합 잡지의 성격을 띠고 광범위한 민족문화의 부흥을 사명으로 삼았다. 창간 당시로는 우리나라 유일하게 가로쓰기를 도입했고, 동광을 새벽으로 바꾸었던 것처럼 한글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한글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제시해 나갔다.



특히 1960년 5월에 발간한 새벽의 혁신호 체제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사람이 이어령이었다니요!



새벽은 전투적인 주의의식, 부정과 불의와 끝까지 싸을 줄 아는 생동하는 지성을 창조하는 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그 역할을 충실해 해냈다. - 4.19혁명의 불씨를 지핀 새벽 1960년 4월호와 5월호

문예지가 아니고 시사 종합지인 새벽이 시.소설,문학 평론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작품을 싣는 문예 전문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 파르스코의 장편소설 제8요일을 실은 새벽 1959년 11월호

새벽 1955년 송년 특집호는 원자력의 세게라는 특집에서 원자력에 관한 여러 글을 60여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문예지는 아니지만 시사 종합지인 새벽이 시.소설,문학 평론 등 장르를 가르지 않고 작품을 싣는 문예 전문 잡지의 역할을 하면서 실은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네요.

제8요일, 성난 얼굴로 돌아다 보라, 깃발 없는 기수, 최후의 증인, 광장 전문을 다 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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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의 속간호가 사실 새벽이거든요.

새벽의 탄생부터 종간까지 다 읽어보니 동광은 건강, 과학까지 굉장히 다양했다면 새벽은 종합잡지이지만 동광보다는 문예 쪽에 조금 더 비중이 컸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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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이나 새벽은 이름은 들어봤거든요. 그런데 '금요강좌' 처음 들어봤어요~!!!

최초의 시민 공개 고양 강좌 다들 알고 계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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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1개월 동안의 6.25전쟁은 전 국토를 초토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속에 패배감, 좌절감, 절망감 같은 비관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다. 홍사단은 전쟁이 가져다준 국민의 절망감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 의욕의 회복을 유도할 시민운동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초기 금요회의 목적은 정신수양, 화술훈련, 정보교환, 체조실시 등 심신 수련이었다. 처음에는 5,6명이 모여 훈련을 시작했는데, 곧 저명인사를 초정하여 동서양의 고전 읽기를 통한 진리 탐구와 신정보 입수에 주력하였다. 2,3개월 지나는 동안 수준 높은 강좌를 홍사단 단우만으로 듣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홍사단은 공식적으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강좌로 '금요강좌'를 열기로 하였다.



금요강좌가 당시 시민에게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동죽상잔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고, 1950년대는 시민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개강좌가 흔하지 않았던 때라 당시의 금요강좌 개설은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네요.

1957년까지의 청중은 평균 199명 정도였으나 1958년부터 1969년경까지는 평균 250~300명 정도로 급중했다고 하니 얼마나 큰 호응이었는지 알 수 있어요.



금요강좌는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대중매체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고 언론의 자유가 제약받던 시절이라 시민의 교양 증진과 시민의식의 함양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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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잡지의 역사를 새롭게 쓰다 : 잊힌 시대를 다시 밝히는 '기록의 힘'

동녘 하늘의 빛이 되다 - 동광 / 새벽을 일깨우다 - 새벽 / 시대의 시민을 잇다 - 금요강좌

내가 몰랐던 역사 한켠을 잡지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저처럼 역사 속 잡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읽어보세요.

<시대의 잡지를 읽다> 읽기전 한국잡지박물관에 다녀왔었는데 다 읽고 나니 다시 방문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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