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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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남과는 다른 물건을 갖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개성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잡'이라는 글자는 분류하고 남은 '그 외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잡화란 무엇일까요?

잡화점을 하고 있는 미시나 데루오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잡화라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잡화다."

잡화점을 어쩌다보니 열었다는 미시나 데루오키 작가 ^^

"왜 가게를 시작했나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어쩌다 보니 잡화점을 열게 된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읽는 내내 보였어요.

┌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회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연인을 찾기 위해 미팅에 나가고 농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왜 나만 이런 좁은 곳에 우두커니 있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초조함은 조금 지나자,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환경에 있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인가 하는 불안감을 바뀌었다. ┘



잡화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작가가 말하는 잡화감각이 무엇이길래...

┌ 때때로 우리 가게를 보고 반쯤 농담 삼아 "무엇이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네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무엇이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게 보이도록 노력해왔기 때문에 무척 고마운 감상이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변명하고는 한다. 이런 가게가 되어버린 이유는 내 머릿속이 별나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물건부터 저속한 물건까지 차별 없이 잡화와 교류하다 보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알 수 없게 된다고.┘



점점 잡화화의 물결은 모든 방향을 뻗어 나가고 있대요. 잡화스러운 빠으 과자, 음료, 음악, 그림, 옷, 부적, 장난감, 향수, 골동물, 장식품 ... 까지요.

그 중에 책도 있네요. 요즘은 도서관이 아닌데 카페나 다양한 곳에서 책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작가도 술집에서 책장 속 책을 보고 놀라서 살펴봤던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 책이 아니라 무늬벽지였다고 하네요. 읽을 수 없는 책은 가게에 과연 어떤 가치를 부여할까요?



┌ 커다란 머그컵에 물을 부어 오랫만에 훗토포를 마셔보았다.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엷은 맛이 났다. 가루를 적게 넣었다 싶어 몇 번이고 더 넣어봤지만 기억과 현실의 간극은 결코 메워지지 않았다. ┘

전 이 문장이 참 와닿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잡화 감각이 바로 이런 거였거든요.

현실과 간극은 결코 메워질 수 없지만 그 추억만은 내 기억속에 영원히 있는거요.

내가 읽었던 작품이 잡화와 연결되어 이렇게 소개되어 깜짝 놀랐지만 작가가 말하는 문학에서 키치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구요.

┌ 쿤데라 식으로 말하자면, 존재가 무거움을 잃고 가벼워지기 전에 우리는 또 다른 무언가를 믿고 새로운 잡화를 좋아하게 되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온다. 믿었다가 질리고, 질리면 다시 믿는다. 이런 쳇바퀴 속에서 언제나 반쯤 질리고 반쯤 믿는 이도 저도 아닌 감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시장에서 우리의, 혹은 잡화라는 존재의 무거움이자 가벼움은 아닐까? ┘



어린 왕자 굿즈 저도 있거든요.

'어린 왕자' 굿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저렴하고 누구라도 바로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이기 때문일요. 제아무리 제조사가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문구를 곁들인다 한들 새빨간 거짓말일 뿐이라는 작가의 말에 빵 터졌어요.

'어린 왕자' 뿐만 아니나 '무민'과 같은 잡화를 사랑하는 것과 책을 다 읽는 것은 별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세상은 셋으로 나눌 수 있대요. 잡화화 된 곳, 잡화화 되어가는 곳, 잡화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곳.

나도 모르는 사이 잡화와 잡화가 아닌 것들이 싸우는 영역을 걷고 있다라는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도쿄 골동품 시장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대요. 한때 쇠퇴해가던 골동품 시장, 벼룩시장, 앤티크 페어 같은 이벤트가 다시 살아나고 있대요.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동문시장 유명하잖아요.

어딘가 아무런 연관 없는 취미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잇는 통로가 있을 거라고 로맨틱한 꿈을 꾸며 여기까지 왔다는 작가. "정말로 잡화에 흥미가 있습니까? 실은 그렇게 좋아하진 않죠?"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대요. 그때마다 내심 당황한다는 작가. 그러면서 레고 이야기를 하네요. 저도 레고에 대한 추억이 있어서 완전 공감되더라구요.

"실은, 집을 팔기로 했어. 그래서 말인데, 네 레고 버려도 될까? 이제 갖고 놀지도 않잖니."

마음대로 레고를 버리겠다는 엄마를 향한 분로로 바뀌었다. 물론 더 이상 갖고 놀지 않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레고는 알려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별생각 없이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풍경이 긴 세월에 걸쳐 비바람을 견디는 방이 되고, 푸른 초원이 되고, 오두막이 되고, 2층집이 되고, 끝내 마을이 되고 그 사람 자신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이 책은 잡화 그 자체를 소개한 책도, 전 세계의 잡화를 찾아 메매는 모험담도 아닌, '잡화를 둘러싼 상황'에 관해 쓴 솔직한 에세이에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너머에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생각이 났어요. 저에게 잡화, 잡화 감각은 그런 것들인가 봐요.

지금도 "엄마 이거 뭐야? 필요한 거야?"라고 딸이 물어볼 때가 있거든요. 그럴때 "갖고 있을꺼야. 지금은 안쓰지만."이라고 말하면서 깊숙한 나만의 공간에 넣어두곤 해요.

'유용'과 '무용'을 껴안는 잡화라는 세계에 초대해준 책이에요. 기발하고 신선했어요.








‘잡화감각‘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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