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세계문학 5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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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메모를 해두었지만 <그림자를 판 사나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피부를 판 사나이'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이번에 한국영화 <데드맨>도 이름을 판 사나이의 이야기인데 책을 읽고 난 후 영화를 보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는 것 같더라구요.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책을 다 읽고 해제편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상세히 나오는데, 작가의 배경에 대해 알고나면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야기가 더 풍부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줄거리는 단순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누군가가 이렇게 나에게 거래를 해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내 상황에서도 생각해봐야겠지만, 슐레밀의 상황에서도 생각해봐야겠지요.

슐레밀의 상황에서 "난 안팔꺼야!"라고 바로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괴상망측한 거래지만 "행운의 자루!"라는 단 한마디가 슐레밀의 마음을 사로잡아 "좋습니다! 거래하십시다." 거래가 성사되었네요.



거래를 제안한 회삭 옷을 입은 남자가 잘못일까요?

괴상망측한 거래인걸 알지만 거래를 수락한 슈레밀이 잘못한걸까요?

이 세상에서 업적과 덕성보다 돈이 훨씬 중요할지라도 실은 그림자야말로 그런 돈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단지 돈 때문에 그림자를 바치고 말았구나. 이제 이 지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슈레밀이 어리석어서 이런 일을 당한 걸까요?

이렇게 바로 후회할꺼면서 왜 거래를 했을까요?

슈레밀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때문에 후회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슈레밀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무서운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돈 때문에 그림자를 팔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게 무서운 걸까요?



슈레밀이 순진한걸까요?

자신에게 거래를 한 회색옷을 입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순순히 자신의 그림자를 돌려받을 수 있을꺼라고 생각한걸까요?

슈레밀에게 그림자를 돌려주는 대신 "죽은 후 나는 이 서류를 갖고 있는 이에게 내 영혼을 넘길 것을 유연으로 서명하노라"라는 거래를 제시하네요.



"이제 헤어집시다." VS "서명하십시오!"

두번째 거래는 하지 않았어요.

여기서 그림자와 영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겠어요.

솔직히 그림자를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보이니까 그렇다 친다면 "도대체 당신의 영혼이란 어떤 물건입니까? 그것을 본 적이나 있습니까? 언제가 죽을 때 그 영혼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할 작정입니까?" 악마의 말처럼 도대체 영혼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슐레밀은 누굴 증오하고 있을까요?

자신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악마를 증오하고 미워해야 하나요?



부와 명예를 얻고 싶은 욕망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기본 조건인 그림자를 팔아넘기고 살아가는 삶이 결국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자연으로 복귀하는 이야기인데, 여러 측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건드리고 있다.

아마 내가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옳은 게 무엇인지 갈등했던 이유도 바로 이 포인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돈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왕으로, 후에는 백작으로 대접받는 마을에서 슐레밀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쾌척하는 행동을 보이며, 또한 착한 하인 벤델과 연인 미나도 슐레밀이 남긴 재산으로 병원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이들을 돌본다. 즉, 돈을 절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의미 있는 사용'이 중시되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바로 이 지점이에요.

독자로 하여금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아마 책을 읽는 내내 저처럼 나를 향해 대한 질문도 쏟아질꺼에요. 그럴때 내 마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

책을 읽고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슐레밀을 찾아보고,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꺼 같아요.






돈은 무조건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은 않다. 처음에는 왕으로, 후에는 백작으로 대접받는 마을에서 슐레밀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쾌척하는 행동을 보이며, 또한 착한 하인 벤델과 연인 미나도 슐레밀이 남긴 재산으로 병원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이들을 돌본다. 즉, 돈을 절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의미 있는 사용‘이 중시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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