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왜 책 제목이 <자연에 이름 붙이기> 일까?

길고 긴 책을 다 읽어갈 때즈음 "이름을 잃어버리면 그 지식도 사라진다."라는 말이 나온다.

명명 : 사람, 사물, 사건 등의 대상에 이름을 지어 붙임.

'이게 내가 말하는 거예요.', '이 종류의 동물이 아무개라는 종이랍니다'하고 말할 때 가리킬 수 있는 무언가, 자연에 이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책을 읽고난 후라 사실 이 책이 엄청 기대를 하고 읽었다. 제일 처음 추천의 글부터, 제일 마지막 옮긴이의 글까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책이 자주 등장한다.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아마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물고기라는 이름을 잃어버리면 그 지식도 사라진다라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물고기는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처럼 책을 읽다보면 물고기 외에도 다른 동물에서도 이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책 제목이 크게 와닿는 대목이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이름을 불러도 벌레들이 대답을 안 한다면

이름이 있어 봐야 무슨 쓸모가 있니?" 각다귀가 말했다.

"걔들한텐 쓸모가 없지. 그렇지만 걔들한테 이름을 붙인 사람들한테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애초에 왜 걔들한테 이름이 생겼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나야 모르지"하고 각다귀가 대답했다.

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책을 읽으면서 꼭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봤음 좋겠다.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그리고 이 지경에 와 있음을 깨달은 지금, 어떻게 여기서 탈출해야 할까?

작가는 이 책이 바로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꽤나 힘든 여정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읽다보면 큰 의미가 나오고, 또 다른 반전이 나오고 ...

이렇게 꾸준히 읽다보니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붙이기하면 뗄 수 없는 분류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분류학자와 과학 그리고 움벨트가 나온다.

특히 움벨트!

처음엔 생소한 단어 움벨트였지만 작가가 말하는 움벨트가 바로 작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지 않나 싶다.



- 린나이우스가 <자연의 체계> 초판에서 전체 동물계를 분류한 두쪽 중 첫쪽

물론 물고기도, 부인할 수도 없고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한 물고기도 있었다.

┌ 린나이우스의 책들이 과학적 분류와 명명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최초의 체계이거나 유일한 체계여서가 아니라, 너무나 진실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린나이우스는 정교하면서도 간결한 방식으로, 당대의 박물학자들이 인지한 생명 세계의 본질적 비전을 포착하느데 이전 그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그가 포착했던 것이 바로 우리 인간 움벨트의 비전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종의 기원>

┌ 진화적 생명 분류와 일반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에 인지하는 것 사이의 가장 극단적인 충돌을 초래하고, 물고기를 없애버릴 그 과학자들, 바로 분기학자들이 등장할 토대도 마련해두었다. 그리고 본인은 알 수 없었겠지만, 진화가 승리하고 물로기가 죽을 결말을 미리 정해둔 것 역시 다윈이었다. ┘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혁명같은 시기가 지나갔다. 하지만 누군가는 괴롭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비전. 그들이 김자한 세계, 바로 인간의 움벨트를 말이다.

움벨트가 뭘까?

읽으면 읽을수록 움벨트가 어렵다.

알면 알수록 '과학의 카오스'속에 빠지는 기분이 든다.

┌ 전쟁에서 승리한 건 사실 과학이지만 분류학자들도 결국 인간이다. 그러니 움벨트를 기반으로 한 어떤 생각들과 관행들은 계속 이어진다. 생명의 분류와 명명을 위한 움벨트는 그냥 그렇게 맥없이 멈춰버리지 않을 것이다. ┘

┌ 분류학자들은 움벨트를 버렸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움벨트를 버렸다. 하지만 분류학자들은 생명의 진화적 질서를 확실히 밝히기 위해 자신들이 옛날부터 지녔던 시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움벨트의 시각을 위해 계속 과학을 희생시킬 여유가 없었다. 움벨트를 버린 것은 과학에서는 쾌거였지만, 나머지 우리에게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생명의 세계는 움벨트의 심각한 왜곡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니, 원래 우리가 지녔던 비전을 가능한 빨리 되찾는 게 좋을 것이다. ┘

┌ 생명의 분류에는 과학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존재했다. 나는 근시안 때문에 하마터면 생명의 분류와 명명이, 그리고 생명의 세계 자체도 과학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속하며 언제나 그래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움벨트를 완전히 놓칠 뻔 한 것이다. ┘

지금도 자연에 이름붙이기 즉 생명의 분류와 명명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움벨트를 완전히 놓치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어버린 생명의 세계, 즉 우리가 지녔던 비전, 움벨트를 빨리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과학도서라고 했지만 더 큰 의미에서 인류에 관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이 책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과학이 승리해서 지금 현재로 이어져 왔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생명의 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 것 같다.

생명의 세계. 그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에서는 자연을 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어에는 'hide in plain sight'라는 표현이 있다. 눈앞에 뻔히 있는데도 너무 당연히 여겨서 그게 거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치는 상황에 쓰는 어구이다. Hide라는 동사가 들어가지만 사실 그건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걸 보지 않는,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동사 Hide처럼 우리는 지금 보지 않는, 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

생각보다 다윈의 진화론까지 나오면서 버거운 부분도 있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의 카오스'를 작가와 함께 경험할 수 있어다. 조금은 딱딱하고 어렵다고 느꼈지만 그 속의 가려진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기분이 드는 바로 그런 책이다.







"이름을 불러도 벌레들이 대답을 안 한다면

이름이 있어 봐야 무슨 쓸모가 있니?" 각다귀가 말했다.

"걔들한텐 쓸모가 없지. 그렇지만 걔들한테 이름을 붙인 사람들한테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애초에 왜 걔들한테 이름이 생겼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나야 모르지"하고 각다귀가 대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