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 - 느림의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전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드림셀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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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느린 사람은 평판이 좋지 않았다. 느린 사람은 어려운 행동을 할 때도 굼드다고 손가락질 받았고 서투르다는 말을 들었다. 우아하게 걸을 때도 둔한 사람이라 여겨졌다. 또 일에 열의가 없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 ┘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렇치 않나 싶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느림은 무엇일까?

느리게 산다는 것

책 제목처럼 "서두르지 않는 삶"이 궁금하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느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느림. 내 생각에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가끔은 부드럽게 존중하고, 우아하게 보듬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책 표지의 달팽이가 인상적이었다.

느리게를 표현하기 위해 달팽이를 선택한 듯 하다.



시간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리듬의 교체(막간의 시간)

의문 제기와 유토피아 그리고 조언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만 봐서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일부러 느리게 읽으려고 한 건 아닌데 느리게, 천천히 읽게 된다.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3장에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있다.

2장 리듬의 교체(막간의 시간) 제목만 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읽으면 이해가 잘 간다. 양은 적었지만 꼭 필요한 내용인 듯 하다.

3장 의문 제기와 유토피아 그리고 조언 요기에서 흥미를 많이 느꼈다.



느림.

요즘에는 인간의 재능이 발휘되는 모든 영역에서 항상 더 빨리 반응하고 더 빨리 정보를 얻고,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계호기을 세워야 한다.

여유로움.

한가로이 걷는 다는 것은 시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시간에 떼밀리지 않고 그 흐름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한가로이 걷기 위해서는 여유로움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태.

우리가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권태, 요컨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급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루고 행복감에 젖어 즐겁게 하품할 수 있는 권태를 권하고 싶다. 그럼 우리는 무엇에도 재촉받지 않고 느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리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기다리기.가 아닐까 싶다.

기다림을 존중하고 즐겨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 인터넷 확산으로 요즘 학생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번 듯 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이 문화의 중심지에 들어가기는 한 것일까? 다른 인터넷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앞에 혼자 멍하게 앉아, 전자정보 취급소에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느림은 민첩하지 않고 차분한 기질인 사람의 특징이 아니다. 느림은 우리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고, 우리가 잠시라도 빨리 벗어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일 수 있다.

느림과 우아함을 관련시키는 게 타당한 것일까?

느림 자체는 하나의 미덕일까?

느림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반드시 관련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천천히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

한 문장 한 문장이 질문의 연속이다. 자연스레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느리게 천천히 읽게 된다.

느림에 대해 이야기하던 작가는 독서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되풀이해서 읽고, 쉽표와 주석을 눈여겨보고, 이곳저곳을 펼쳐보며 텍스트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재점검하고, 어떤 때는 돌격의 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돌진해서 저자보다 성공적으로 앞서가고, 또 어떤 때는 너무 오만하게 굴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는지 되짚어보기도 하지 않는가.┘

맨 앞에서 말했듯이 과거에 느린 사람에 대한 평이 안좋았지만

현재에서 느리게 산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이렇게 독서의 경우처럼 보아야 옳지 않을까 싶다.

'독서'에 '삶을 살아가기'로 대신하면 딱인것 같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구호는 올림픽 경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는 '덜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는 좌우명을 받아들일까?

작가가 말하는 문화 과잉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문화 탐방을 목표로 한 관광객은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다.┘

이 말이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느림과 개인의 다양성으로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가 아닌 '덜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라고 외치면서 문화 탐방을 하는 관광객들도 있다. 누가 누가 잘났나 경쟁하기보다는 획일화에서 벗어나 느림이 가지는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게 낫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도시의 계획 지연에 대해서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대형마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재밌다.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한번도 대형마트는 현대문화의 성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대형마트를 다시 보게 된다.

책의 맨 마지막 옮긴이의 글 "지금, 우리에게 느림이 필요한 이유'를 읽다보니 정리가 싹 되는 느낌이다.

"느림의 어원인 letus에는 지금의 느림을 연상하는 '나태함'이라는 뜻 이외에 '탄력적으로 유연함'이란 뜻이 있었다. 도형으로 말하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직선은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곡선은 우아하고 다양한다. 곡선적인 삶은 여유로운 삶이며, 곧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이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요거 하나만 잊지 말자.

느리고 우아하게!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방에 차분히 앉아 휴식을 취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파스칼

느리게 산다는 것에서 느림의 의미, 그리고 내 삶을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휴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리없다.






‘탄력적으로 유연함‘이란 뜻이 있었다. 도형으로 말하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직선은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곡선은 우아하고 다양한다. 곡선적인 삶은 여유로운 삶이며, 곧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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