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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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난다는 것은 낯선 누군가의 인생을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낯선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이기도 하며, 그렇게 그 낯선 누군가와 함께 낯선 세계를 모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책이, 책이 담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선보이는 경험은 참으로 마법과 같은 시간을 선물 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완벽하게 부합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첫 의식은 책 표지를 여러모로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하곤 합니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미지는 앞면은 물론이고 책등을 거쳐 뒷면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또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는 예고편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 <The Ten Thousand Doors of January>는 ‘재뉴어리의 만개의 문’ 정도로 번역될 텐데, 번역된 이 책은 ‘만개의 문’을 ‘푸른 문’으로 바꿨습니다. 점입가경, 이미지와 문자 정보가 제법 이야기를 만나기 전부터 군침을 삼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앞날개에 있는 처음 만나는 작가 앨릭스 E. 해로우의 소개를 보고는 왜 이제야 만나게 된 건지 의아할 정도로 대단한 이력의 작가다 싶었습니다. 그만큼 기대감 또 상승!


이야기는 크게 재뉴어리와 그 주변을 통해 재뉴어리의 정체성과 환경, 관계들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달그락달그락 독자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전반부와, 본격적인 재뉴어리의 환상적인 모험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보이는 후반부로 구성됩니다. 읽는 내내 이상하리만큼 최근 극장에서 봤던 영화 <가여운 것들>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남다른 태생, 관심과 관리의 대상인 주인공이 우연하고도 저돌적인 여정을 떠나서 낯선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나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는 스토리라인. 또한 <오즈의 마법사> 속의 도로시의 여정도 떠오릅니다.


문과 문지방과 문의 이쪽과 저쪽. 문으로 나눠진 세계와 관계와 시간은 문지방 위에서의 갈등과 고민 그리고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마주한 선택이 매번 재뉴어리를 괴롭히기도 하고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 문이 책에서 비롯된다는 설정도 그 이야기를 펼쳐내는 묘사와 대화들을 담은 문장, 정말로 작가가 문장을 가지고 밀당을 벌이는 능수능란함이 이 이야기의 종횡무진의 속도감을 한없이 하드캐리 합니다. 물론 이 능수능란함을 이미 다른 작품들의 번역으로 독자들의 신뢰가 두터운 노진선 번역가의 솜씨로 제대로 옮겨놓았음도 미더운 구석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파도 속에서 서로 얼싸안고, 그들의 눈이 길 잃은 배를 마침내 집으로 인도하는 등대처럼 환히 빛나는 걸 지켜본 사람이라면 사랑의 존재를 결코 부인할 수 없었으리라.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걸리 작은 태양 같았다. 열을 내뿜고, 그들의 얼굴을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태양.’

- p.246~247


‘아빠는 날 버리지 않았어. 날 데리고 가려고 애썼지.’ 그런 생각이 작은 태양처럼 눈 뒤에서 이글거렸다. 눈이 심하게 부셔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없는 태양처럼.

- p.361


짧지 않은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 이르러서야 그야말로 어떻게 지나왔나 싶게 금새 읽힌 듯 푹빠져서 읽어버리고야 말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단일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내 마블영화 시리즈의 쿠키영상을 기다리듯 그 다음 이야기가, 다른 인물들의 소식이, 그리고 문에 대한 궁금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넘나듭니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단편들과 장편들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될 날을 고대하고 있는 저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 버텨야 해....

그러면,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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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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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알아, 네 남편, 네가 아는 사람이랑은 다른 사람일지.”

“지금 그 말..... 비유적 표현이야, 직설적 표현이야?”

“둘 다야.”

- p.90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 中


내 남편이 내가 아는 사람과 다른 사람......?

그 말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그 말...... 비유적 표현인가요, 직설적 표현인가요?”

“그 역시 둘 다예요.”

- p.167 <해마> 中


국내 대표 호러 전문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국내 최대 장르 작가 공동체 ‘거울’의 콜라보 프로젝트 <매드앤미러>의 첫 책입니다.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공통의 소재로 묘하게 기시감 마저 일으키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중편소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으로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아밀 작가와 김종일 작가는 전현 다른 감각의 카메라 워킹과 편집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싶었습니다. 아밀 작가의 작품은 단단하게 미장센을 가득 채우되 정적인 카메라 워킹과 화면 전환도 부드럽게. 그리고 김종일 작가는 몇 번의 자동차 추격씬과 충돌씬이 등장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과거 장면 인써트나 주고 받는 대화들의 속도감이 핸드핼드 카메라에 점핑하는 시간과 공간으로 빠른 화면 전환과 편집으로 채워진 영화같은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무척 다른 두 이야기를 품은 한 권의 책이지만, 그 근원적인 공포,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이렇게라도 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남편의 실체와 속내에 내가 속아왔던 거라면?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특유의 영상을 보는 듯한 감각적 묘사와 대화로 재미 하나는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완전 보장한다 싶을 정도로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능력이 두 이야기 모두 출중합니다.


“내 인생의 장르는 애초에 로맨스판타지가 아니라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였다.”

- p.208 <해마> 中


알콩달콩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한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법과 방향으로 독자를 속절없이 이끌고 가는 이야기의 힘, 그것만으로 끝까지 갑니다. 그야말로 독서 자체가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할 정도 였습니다.

다만 한 이야기는 어느 분기점에서 ‘그래 선택했어’식의 TV인생극장인 듯,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게 애매모호한 이야기로, 다른 한 이야기는 PTSD 환자의 치료기 정도인 듯 하다가 미스터리, SF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로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두 가지 미션을 찾아보는 참신한 아이디어도, 이런 독특한 두 개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이렇게 담아낸 편집자의, 텍스티의 기획이 돋보이는, 제법 괜찮은 앤솔러지 였습니다.



#매드앤미러 #배우자의죽음에관하여

#아름다움에관한모든 것 #아밀 #해마 #김종일

#텍스티 #72시간서평단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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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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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민은 안 건드렸어.”
“대도 나셨네요.”
- p.13

2인조의 첫 만남은 감방에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김형래가 삼 년 사 개월 판결받아 육 개월째 수감 중이던 감방으로 나형조가 삼 년형을 받고 입소하면서 첫 대면 하게 됩니다. 그것이 마흔 여덟 동갑내기 둘의 첫 인연이었고, 쉰 한 살이 된 2인조 나형과 김형은 계획된 한 탕을 위해 의기투합 하는데...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이 뒤를 이어야 할 듯하지만, 그렇게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라면 정해연이 아니지 말입니다. 느슨한 대도의 계획과 점점 대도 나형에게 빠져들어 동의하는 순둥이 김형의 의기투합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만 갑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만은 특별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기꾼은 그 틈새에서 탄생한다.”
- p.243

급조된 어리버리 2인조는 범죄물로 가다가 우연히 만난 가족사에 얽혀들며 소동극, 시트콤으로 유턴합니다. 겹겹이 크로와상 같은 이야기는 서로를 향한 의심과 욕심이 엉켜들며 속절없이 서로의 속내를 들켜가며 도대체 어디로 이야기가 흘러가는지 궁금증을 폭발시키며 페이지를 숨 가쁘게 넘기게 합니다.

이 어리숙한 2인조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니, 자연스레 두 사람의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유명했던 2인조, 영화 <칠수와 만수>, <투캅스> 시리즈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의 바로 그 2인조 안성기와 박중훈 배우입니다. 동갑은 아니지만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2인조 말입니다. 그렇게 상상하며 정해연 작가가 풀어내는 특유의 엉뚱 발랄함과 왠지 모를 불안감과 헛헛한 이야기를 따라가니 더 몰입이 되어 정말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름 피서 같은 이야기, 시원한 콩국수 국물을 들이키듯 담백하고 깔끔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문학동네 #엘릭시르 #정해연 #홍학의자리 #2인조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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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 topclass 2024.8 - 잠
톱클래스 편집부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잡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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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여는 글은 항상 맨 먼저 읽는 네비게이터 같은 꼭지입니다. 지금껏 쌓아온 이슈들이 품었던 이야기들이, 편집자들의 사심에서 출발했다는 고급정보는 꽤나 감동적이기 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주제에 살갑게 딱 붙은 기사들뿐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에든 사심을 발휘할 수도, 해서도 안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선입견이나 자격지심을 깨부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 이슈는, 그래서 그 사심이 이끈 주제가 바로 이었습니다. 특히 열대야로 곤혹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더 없이 소중한 정보와 꿀팁들로 가득하다 싶습니다. 스스로의 수면 패턴을 분석해볼 수도 있고, 불면증의 요소들을 고려하거나 불면증 여부를 고민해볼 꼭지들 까지, 그것도 잠 분야에 내노라할만한 샐럽들이 들려주고 보여주니 믿음직스럽지 아니한가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 구약성서 잠언 1022

 

게다가 개인적 최애 남녀 배우들, 김희애 배우, 구교환 배우,의 인터뷰는 여름날 보너스 같은 꼭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출연소식만으로 이미 관람을 마친 시리즈와 영화라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콕콕 날아와 박혀버린 인터뷰였습니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 투병기사에 마음 조렸는데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신작 소식과 싸인회 하신다는 이야기에 가슴을 쓸어내렸기에 더욱 반갑고 귀한 말과 마음이었습니다. 더 건강히 더 마음 시 써주시길 기도해봅니다.

 

이렇듯 올 8월도 숙면 같은 깊이와 사심 채우는 정보들에 또 하나의 <topclass> 이슈를 완독해냈습니다. 아무쪼록 편집실 모두의 안녕과 건강한 여름과 숙면을 기도합니다. 아멘 ^^

 

topclass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opclass #탑클래스 #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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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4.7.8 - no.55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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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고 그 관객 중 하나이기도 했던 터라, 이번 이슈의 editor’s note는 반갑기도 하고 다시 쓴 잿물을 마신 듯 입안이 개운치 않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 것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의 챗바퀴에서 또다른 미래의 나 혹은 우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함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의 충실한 내용들로 이번 이슈도 빼곡하게 들어 차있는 <Axt>는 박참새 시인의 인터뷰가 귀하고 반가웠습니다. 최근에 만난 적이 있는 듯 착각이 들게 하는 건, 시인의 대담집 <시인들> 때문이겠지만, ‘선 긋기의 예로 든 ‘MBTI’‘MZ’ 같은 범주화를 애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시인의 말과 생각들은 그 바람대로 이미 시가 되어버렸다 싶었습니다.

 

천쓰홍의 <귀신들의 땅>을 나누는 잡담, CHAT은 매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대 코너가 된지 오래입니다. 특히나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레이싱을 벌이는 듯한 요즘에 딱인 이야기들이라 역시 좋았습니다. ‘할망신들은 비건이거나 페스코라는 말엔 혼자 빵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특히 이번 이슈에서는 cover story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일단 홍기웅 작가의 사진들이 주는 시원한 느낌과 올림픽 시즌에 걸맞는 소재도 Text도 좋았습니다. 여름엔 스포츠가 좋습니다. 더우니까 관람하는 쪽으로 말입니다.

 

모든 승패와 순위는 그 선과 색을 기준으로 판정되며, 그 무슨 상황이나 어떤 선수라도 예외 없이 그 선과 색을 벗어나 경기를 펼칠 수는 없다.”

- p.070

 

에세이와 단편소설들의 산뜻함을 지나면 기다리던 연재소설들과 새로 시작하는 소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즐거움, 연재소설은 이 여름의 또다른 공간으로 저를 옮겨주는 선 긋기 이기도 하다 싶습니다.

 

더위 먹지마, 죽지마,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러니, 다들 이 여름 강건하시길!

 

#문학잡지 #악스트 #Axt #선긋기 #악독단

#도서제공 #악독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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