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논객 - 우리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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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서현은 서울대 건축과 교수이자 건축가입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 건축가적 결과물보다는 그 말과 글로써 먼저 알려진 작가입니다. 물론 그간의 저작물들을 통해 그의 건축가적 시선을 통한 문화, 예술, 사회, 정치, 경제 등을 아우르는 인사이트를 주로 보여준 바, 그의 근간이 건축이라는 것은 그저 알게 되는 사실이기는 합니다.

*도시:
일정한 지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논객: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책 제목을 구성하는 두 개의 단어로 제목의 저의(?)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겠으나, 굳이 그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대해서 (혹은 그곳에 사는)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마도 저자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이거나, 이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제한적 정체성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책은 ‘도시는 무엇인가’, ‘건축은 무엇을 말하는가’, ‘건축가는 무엇을 남기는가’ 이렇게 세 개의 꼭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도시’에서는 토기, 정치, 역사, 선거를, ‘건축’에서는 권력, 사회, 일상, 주거를, ‘건축가’에서는 시대와 책을 담고 저자는 도시와 건축, 그리고 건축가로서 대상들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빌딩 숲과 대로변, 골목길을, 강변을 거닐며 생각을 들려줍니다.

“이 책은 지난 10년이 도시 목격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넓어진 것 같기도, 유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건 무엇이냐는 것이다.”
<p.009>

책의 처음과 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의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로 되어있습니다. 독자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이 책은 ‘무엇’에 대한 질문을 하는가와 대답을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역할을 부여하였고, 이는 책을 읽어내는 동안, 그리고 마무리하는 시점에 괜찮은 역할을 합니다. 도시에 살건 안 살건, 그 사는 곳이 어떠하든 그 공기와 관계에서 부여되는 질문과 생각들을 매월 썼던 칼럼을 모으는 형식으로 구성된 10년의 기록 아니면 일기라 할만 합니다.

“특권과 차별. 둘 다 불평등이되 샴쌍둥이처럼 같이 다니고 붙어 자란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사회인으로서 인간은 역사상 한순간도 평등해 본 적이 없다. 소수가 이익을 취하면 특권, 소수가 불이익을 받으면 차별이라 부른다.”
<p.257>

한동안, 물론 여전히 지하철 러시아워 시간에 펼쳐지는 장애인시위로 여러 불편함이 초래되곤 했습니다. 미리 예고되기도 했고, 갑자기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다수의 불편이 예상되고 불만과 때로는 욕설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저간의 의견들은 분분할 테지만, 누군가에겐 절박함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전혀 상관없는 그저 불만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차별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해보고 돌아보면, 언제나 우리는 잠재적인 차별의 대상이나 잊고 지내거나 외면하며 지내기 일쑤입니다. 허나, 금새 혹은 예기치 않은 과정에서 우리는 차별을 받고 분노나 비참함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상황을 곱씹되 감수해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싶습니다. 그저 발전과 개선을 향해 나아가는 물줄기 정도로 받아들여 볼 일이다 싶습니다.
책에서는 이러저러한 외연적 혹은 내면적 상황들을 거리를 두기도 하고 밀착하기도 하면서 논객의 사명(?)을 감당해내면서 여기저기에 출몰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전혀 무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가 논해지기도 하지만, 그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보는 연습, 투수와 포수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처럼 일상의 문제들을 보고 답해보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싶었습니다.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는 서랍장을 만드는 것과 같다. 대답은 서랍들을 채워 넣는 일이겠고 서랍들은 디지털 화면을 이루는 픽셀 같은 모양이겠다. 서랍을 채우기 위해 독서와 여행과 일상 경험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필요한 것은 이것들을 엮어내는 생각이겠다.”
<p.376>

그 서랍들의 크기와 해상도와 위치, 내용물들은 각양각색이겠으나, 그걸 만들고 채우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제가 아닌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습니다. 그러니, 책도 읽고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보기도 하고, 주변을 그저 산책하는 ‘경험치’를 쌓는 것을 즐겨봄이 어떨지 손 내미는 이 책 <도시논객>의 일독을 권합니다.

#도시논객 #서현 #효형출판 #우리사회를읽는건축가의시선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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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논객 - 우리 사회를 읽는 건축가의 시선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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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서현은 서울대 건축과 교수이자 건축가입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 건축가적 결과물보다는 그 말과 글로써 먼저 알려진 작가입니다. 물론 그간의 저작물들을 통해 그의 건축가적 시선을 통한 문화, 예술, 사회, 정치, 경제 등을 아우르는 인사이트를 주로 보여준 바, 그의 근간이 건축이라는 것은 그저 알게 되는 사실이기는 합니다.

*도시:
일정한 지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
*논객: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
<출처-네이버 어학사전>

책 제목을 구성하는 두 개의 단어로 제목의 저의(?)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는 있겠으나, 굳이 그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정리해보자면,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 대해서 (혹은 그곳에 사는)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마도 저자 스스로를 규정하는 단어이거나, 이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제한적 정체성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책은 ‘도시는 무엇인가’, ‘건축은 무엇을 말하는가’, ‘건축가는 무엇을 남기는가’ 이렇게 세 개의 꼭지로 나눠서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도시’에서는 토기, 정치, 역사, 선거를, ‘건축’에서는 권력, 사회, 일상, 주거를, ‘건축가’에서는 시대와 책을 담고 저자는 도시와 건축, 그리고 건축가로서 대상들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빌딩 숲과 대로변, 골목길을, 강변을 거닐며 생각을 들려줍니다.

“이 책은 지난 10년이 도시 목격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넓어진 것 같기도, 유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니 그건 무엇이냐는 것이다.”
<p.009>

책의 처음과 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의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로 되어있습니다. 독자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이 책은 ‘무엇’에 대한 질문을 하는가와 대답을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역할을 부여하였고, 이는 책을 읽어내는 동안, 그리고 마무리하는 시점에 괜찮은 역할을 합니다. 도시에 살건 안 살건, 그 사는 곳이 어떠하든 그 공기와 관계에서 부여되는 질문과 생각들을 매월 썼던 칼럼을 모으는 형식으로 구성된 10년의 기록 아니면 일기라 할만 합니다.

“특권과 차별. 둘 다 불평등이되 샴쌍둥이처럼 같이 다니고 붙어 자란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사회인으로서 인간은 역사상 한순간도 평등해 본 적이 없다. 소수가 이익을 취하면 특권, 소수가 불이익을 받으면 차별이라 부른다.”
<p.257>

한동안, 물론 여전히 지하철 러시아워 시간에 펼쳐지는 장애인시위로 여러 불편함이 초래되곤 했습니다. 미리 예고되기도 했고, 갑자기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다수의 불편이 예상되고 불만과 때로는 욕설이 난무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저간의 의견들은 분분할 테지만, 누군가에겐 절박함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전혀 상관없는 그저 불만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차별의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생각해보고 돌아보면, 언제나 우리는 잠재적인 차별의 대상이나 잊고 지내거나 외면하며 지내기 일쑤입니다. 허나, 금새 혹은 예기치 않은 과정에서 우리는 차별을 받고 분노나 비참함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상황을 곱씹되 감수해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싶습니다. 그저 발전과 개선을 향해 나아가는 물줄기 정도로 받아들여 볼 일이다 싶습니다.
책에서는 이러저러한 외연적 혹은 내면적 상황들을 거리를 두기도 하고 밀착하기도 하면서 논객의 사명(?)을 감당해내면서 여기저기에 출몰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전혀 무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가 논해지기도 하지만, 그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보는 연습, 투수와 포수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처럼 일상의 문제들을 보고 답해보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싶었습니다.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는 서랍장을 만드는 것과 같다. 대답은 서랍들을 채워 넣는 일이겠고 서랍들은 디지털 화면을 이루는 픽셀 같은 모양이겠다. 서랍을 채우기 위해 독서와 여행과 일상 경험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필요한 것은 이것들을 엮어내는 생각이겠다.”
<p.376>

그 서랍들의 크기와 해상도와 위치, 내용물들은 각양각색이겠으나, 그걸 만들고 채우는 행위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제가 아닌 선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습니다. 그러니, 책도 읽고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보기도 하고, 주변을 그저 산책하는 ‘경험치’를 쌓는 것을 즐겨봄이 어떨지 손 내미는 이 책 <도시논객>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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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유 자이언트 픽
김빵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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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주기로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설 연휴기간이라 그런 주기에 닿아있는 친척들, 고향 선후배, 시리즈 영화 등. 자이언트북스의 자이언트 픽으로 내놓은 앤솔러지 첫 번째 책인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를 만난 것이 정확하게 1년 전이었습니다. 재기발랄 했던 첫 책만큼이나 고른 이야기적 재미와 가려 담은 문장들이 빼곡한 두 번째 자이언트 픽, <투 유>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다섯 명의 작가가 분명한 자기 재료들로 버무려 내놓은 다섯 작품, <좀비 라떼>, <시간과 자리>,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투 유>, <이방인의 항해>을 먹음직스레 플래이팅해서 제공합니다.

 

눈치챘겠지만 나도 감염자야. 너나 나나 공격성은 없으니 반만 좀비인 거지. 내가 반반을 엄청나게 좋아했거든?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짬짜면이나 탕볶밥. 피자 반반, 만두 반반, 갈릭 팝콘과 치즈 팝콘 등 무수히 많은 반쪽을 섭렵해왔는데, 보니까 둘 중하나가 꼭 먼저 동나더라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언젠가 우리의 확률이 백이 된다는 뜻이야. 잡아먹히는 날이 오긴 올 거야. 치료제에든, 바이러스에든.”

- p.17, <좀비 라떼>

 

이제는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코로나 시절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는 <좀비 라떼>의 설정과 이야기들은 그 때 우리들이 느꼈던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를 묘하게 헤집고 나오는 묘한 긴장과 기대를 아우르며 두 개의 소리굽쇠처럼 이야기와 독자를 공명하게 합니다. 이럴 수 있는 건 어쩌면 잘 짜여진 대화와 상황묘사 덕분에 독특한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이내 이야기 속으로 쓰윽 빠져들 수 있게 때문일 듯합니다. 이야기는 가볍게 툭툭 흘러가지만 담아낸 정서는 제법 묵직한 구석이 있습니다.

 

나는 망설이다가 하나와 내 구명조끼를 끈으로 연결한 후 수영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쳐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쳤다. 살기 위해서, 새로운 빙하에 인사하기 위해서.”

- p.153, <지구의 마지막 빙하에 작별인사를>

 

마지막 남은 빙하를 보러가는 크루즈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새로운 빙하를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대하고 삶을 이어갈 새로운 희망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의 숨가쁨이 주는 묘한 감동이 내내 페이지의 여백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불행의 이유가 있지만 또한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아낼 이유도 있으니, 그러니 함께 살아낼 이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일단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작은 든든함.

 

앤솔러지라는 제한된 물리적 길이는 어떻게든 독자들을 설정으로 얼른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일터, 다섯 이야기는 다른 재료들로 토핑을 두른 슈퍼수프림이나 콤비네이션 피자 같은 모양새이지만, 두툼하지만 담백하게 반죽된 마음이라는 도우를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들로 나뉘어있지만, 다 읽고 입 안에 남는 뉘앙스가 엇비슷하다 싶도록 여러 가지 의미로 폭신해집니다.

 

그 물류 창고에서 사람이 죽었던 건 알고 있죠?”

물류 창고에서 열네 시간가량을 근무하던 사십대 여성 노동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사건이었다.

- p.195, <투 유>

 

그럼에도 붕붕 떠다니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곳곳에 지금 우리의 시간들을 슬쩍슬쩍 품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위기, 노동자의 처우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바이러스와 백신에의 공포 등등. 그래서 책 제목 <투 유>는 구소현 작가의 이야기 제목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마음을 담은 엽서나 편지 같은 이야기들이기도 해서 인 듯합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지금을 잘 살아보자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그러지 못했던 과거에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는 잘 해보겠노라고 말입니다.

각양각색, 천차반별이지만 우리 안에 흐르는 좁던 넓던 그 마음의 강물 소리는 그렇게 하나로 이어져 바다로, 바다로만 흘러가야 할테니 말입니다.

#투유 #김빵 #김화진 #김청귤 #구소현 #명소정

#자이언트픽 #자이언트북스 #앤솔러지

#도서제공 #리뷰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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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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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확하게 1년 전. 동녘에서 출간했던 신경아 작가의 <백래시 정치>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동녘의 책 <벨 훅스 같이 읽기>를 만났습니다. 페미니즘 관련 책에 열심(?)인 동녘의 이번 책은 여성주의교육연구소 페페 (Feminism Pedagogy)의 기획으로 일곱 명의 필진이 각자가 읽은 벨 훅스의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꾸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권의 책은 이러합니다.

 

<난 여자가 아닙니까?> Ain't I a Woman: Black Woman and Faminism (1981)

<벨 훅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Teaching to Transgress: Education as the Practice of Freedom (1994)

<당신의 자리는 어디 입니까> Where We Stand: Class Matters (2000)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2000)

<올 어바웃 러브> All about Love: New Visions (1999)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Teaching Community: A Pedagogy of Hope (2003)

<본 블랙> Bone Black: Memories of Girlhood (1996)

 

일곱 권으로 일곱 꼭지를 각자의 리뷰를 통한 책 소개를 앞에 두고서, 필진 각자의 삶을 책을 통해, 혹은 책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어쩌면 휘발성과 폭발성 강한 주제를 갖고 풀어내는 책이라는 선입견은 첫 꼭지, 오혜민의 [가모장의 탈조일기]에서부터 쉬이 무장해제 됩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매순간 마주하는 차별과 대응의 무한반복은 어쩌면 곁에서 수시로 벌어지지만 모른 척해버린 망각의 과거들을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항상 그랬다. 나는 커서 그곳에 갔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태어난 곳이 그곳인 삶을 살았다. 우리는 항상 그 차이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흑인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인종과 성 두가지 조건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말해온 그는 그 운명을 이미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고, 나는 언제나 그 운명을 거스르는 새로운 삶을 꿈꿨다.”

- p.34, [가모장의 탈조일기]

 

차별과 혐오를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대처하며 어떻게 살기로 마음먹었는지를 때론 감정적으로, 여전히 남은 분노를 채 걷어내지 못한 문장들을 전시하는 부분들엔 수긍이 가면서도 그렇게 해서라도 뜻은 표현하지만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나의 몫이라면 하는 가정법을 스스로에게 들이대면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할 듯 했습니다. 그래서 김동진의 서문에서 밝힌 페미니즘이 유행이 아니라 지금까지 쭉 우리 곁에, 이 사회에, 전 세계에 존재해왔다는 부분이 더 위축되면서도 그 곁을 지켜온 수많은 이름들에게 존경과 지지를 보내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랑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사랑의 부재 현상이 초래할 위험을 경고하고 다시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다시 사랑으로 부활할 수 있다면 영원한 삶을 약속받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을 활짝 열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다.”

- p.140 from <올 어바웃 러브>, p.8

 

예전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혐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인종이나 성별, 나이 어떠한 것으로도 각양각색의 이유로 차별이라는 폭력 앞에 놓여 지게 되는 것은 여전한 우리의 숙제이지만, 이러함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무관심의 반대인 사랑이어야만 한다는 벨 훅스의 문장은 그래서 힘이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부활하게 되는 평등과 평화,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하는 약속에 이르는 힘이다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 <벨 훅스 같이 읽기>같이에 방점이 찍히는 제안서이면서, 벨 훅스에게 바치는 팬심을 담은 연애편지이기도 합니다.

bell hooks, a beloved teahcer in the heart of all those who know her.

 

#벨훅스 #bellhooks #신간 #페페연구소 #동녘 #모두를위한페미니즘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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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1역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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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책표지를 들여다보는데, 다시 들여다봐도 묘한 이미지입니다. 순수한 듯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어느 순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과 핏빛 배경과 함께 보이면서 소름 돋는 느낌으로 변모합니다.

 

그렇다. 나는 오늘 밤 살해되기 위해 누군가를 내 집에 초대했다.”

<p.8>

 

40년 전 일본에서 첫 출간되어 지금껏 여러 차례 재출간된 이야기는, 미오리 레이코가 타살을 가장한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대놓고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고전적 추리소설의 거장들을 오마주라도 하듯 시작한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과정을 거쳐 그 타살을 가장한 자살의 뒷얘기와 어쩌면 복수극일지도 모를 진실을 향해 나아갑니다.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 끝이 보여주는 감정은 통쾌함이나 긴장의 해소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그토록 독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었고, 현시점에서도 낡거나 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싶기도 합니다.

 

죽음의 때가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그 무렵의 참된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오로지 죽음만이 참된 나를 다시 되찾아주는 것이다.”

<p.41>

 

책을 읽는 내내,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문득문득 생각났습니다. 마츠코의 그 인생역정의 안타까움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순간들과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레이코의 생에 대한 아쉬움이 닮아있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길이는 알 수 없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이생의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그 끝의 어떠함과 언제일진 모르는 한계성의 옵션이 장착된 채로 말입니다. 여러 과정과 만남에서 받은 상처와 추락의 여정을 겪은 레이코에게 혹여 손 내밀고 마음 터놓을 진실한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의 인생의 결국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렌죠 미키히코가 반전과 복선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도처에 트릭을 배치하며, 상황이나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유려한 문장과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어 꺼내 보이는 솜씨는 4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솜씨를 한국의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했음에는 일본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양윤옥 번역가의 역량도 상당히 기여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서사와 이를 이끄는 속도,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과 담백한 문장들 속을 한참을 헤매고 책장을 앞뒤로 오가며 읽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인물들의 비슷한 무게감과 외국이름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못하는 저의 문제이기 할 듯합니다. (비슷한 경우를 작년에 극장 개봉했던 <슬램덩크> 일본어/한글자막 버전으로 보면서 또 여지없이 마주했습니다.) 물론, 중반을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로는 읽어나가는 속도감은 대단했습니다. 이 속도감이 제게는 책 읽는 맛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끝은 이해와 허무였습니다.

그럼에도 안타깝고 아쉬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죽음의 전시. 나름의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끝낸 작가의 고민도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결말이었습니다.

 

#71#렌죠미키히코 #양윤옥옮김 #모모

#박소해의장르살롱 #그믐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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