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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1역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3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책표지를 들여다보는데, 다시 들여다봐도 묘한 이미지입니다. 순수한 듯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어느 순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과 핏빛 배경과 함께 보이면서 소름 돋는 느낌으로 변모합니다.
“그렇다. 나는 오늘 밤 살해되기 위해 누군가를 내 집에 초대했다.”
<p.8>
40년 전 일본에서 첫 출간되어 지금껏 여러 차례 재출간된 이야기는, 미오리 레이코가 타살을 가장한 자살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대놓고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고전적 추리소설의 거장들을 오마주라도 하듯 시작한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한 과정을 거쳐 그 타살을 가장한 자살의 뒷얘기와 어쩌면 복수극일지도 모를 진실을 향해 나아갑니다.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고, 그 끝이 보여주는 감정은 통쾌함이나 긴장의 해소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그토록 독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었고, 현시점에서도 낡거나 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싶기도 합니다.
“죽음의 때가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그 무렵의 참된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오로지 죽음만이 참된 나를 다시 되찾아주는 것이다.”
<p.41>
책을 읽는 내내,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문득문득 생각났습니다. 마츠코의 그 인생역정의 안타까움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순간들과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레이코의 생에 대한 아쉬움이 닮아있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길이는 알 수 없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이생의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그 끝의 어떠함과 언제일진 모르는 한계성의 옵션이 장착된 채로 말입니다. 여러 과정과 만남에서 받은 상처와 추락의 여정을 겪은 레이코에게 혹여 손 내밀고 마음 터놓을 진실한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녀의 인생의 결국은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렌죠 미키히코가 반전과 복선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도처에 트릭을 배치하며, 상황이나 분위기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유려한 문장과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어 꺼내 보이는 솜씨는 4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솜씨를 한국의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했음에는 일본소설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양윤옥 번역가의 역량도 상당히 기여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서사와 이를 이끄는 속도,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긴장감과 담백한 문장들 속을 한참을 헤매고 책장을 앞뒤로 오가며 읽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인물들의 비슷한 무게감과 외국이름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못하는 저의 문제이기 할 듯합니다. (비슷한 경우를 작년에 극장 개봉했던 <슬램덩크> 일본어/한글자막 버전으로 보면서 또 여지없이 마주했습니다.) 물론, 중반을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로는 읽어나가는 속도감은 대단했습니다. 이 속도감이 제게는 책 읽는 맛의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끝은 이해와 허무였습니다.
그럼에도 안타깝고 아쉬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죽음의 전시. 나름의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끝낸 작가의 고민도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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