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좋은 아이로 키우는 집'이라니...대체 그런 집이 따로 있을까. K가 편집을 맡지 않았다면 펼쳐보지 않았을게다. (미안하다. K야) 이런 발상 자체가 조금 일본틱하기는 하다. 그런데 과연, 집을 바꾸면 애가 똑똑해질까. 강남 집을 구하면 효과를 보는걸까.
저자는 일단 일본의 `명문중학교'에 보낸 아이들의 부모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11명의 아이들이 이른바 케이스 스터디 대상. 명문중학교에 가면, 명문고, 명문대는 거의 자동입학이라..(심지어 와세다와 게이오는 부속중,고?나오면, 진짜 자동으로 대학진학 한단다..) 일본 초등학생 부모들의 교육열도 만만치않단다. 읽다보니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노무 교육열은 어떻게 손댈 도리가 없구나 싶기도 하고...개인적으로 너무 무심했다는 반성부터, 여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소소한 반항심까지 들더만.
근데, 책을 읽다보니..어쩐지 나도 해볼 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이게 정말 더 어려운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여튼 '관심'이 동했다. 예컨대...첫번째 에피소드 '탁구대의 재발견'. 이 집 엄마가 탁구선수 출신이기도 해서..탁구대 하나 거실에 떡 하니 들여놓았단다. 애들은 학교다녀오면, 방에 콕 박히는게 아니라...일단 탁구대에서 가방 풀고...한마디로 온 가족의 '주 무대'가 탁구대다. 때론 숙제하고 공부하고, 때론 밥 먹고, 간식 먹고...친구들 불러 탁구 한게임 치면 인기 짱. 탁구대가 이렇게 효과가 좋단 말인가.
요즘 거실을 서재로 쓰자고들 난리인데...큰 줄기는 이게 맞는거 같다. 예컨대 부엌을 온 가족의 공간으로 만든 집도 있다. 좋은 식탁 하나가....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노매드 학습법'을 따른다. 예컨대 식탁 갔다가, 거실 구석 탁자에서 공부하다가, 방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공부하다가....정작 멀쩡한 새 책상은 쓰지를 않더란 거다. '혼자만의 공간'이 공부에 좋다고? 작가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강조한다.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 공부하다가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조금 시끄럽더라도, 부모들의 대화가 들려오고...이런 환경이야말로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공부 효율도 높다는게다. 공부 효율이 높은지 어쩐지..어쨌든, 다들 잘나가는 명문중 입학했다는거 아닌가.
머리좋은 아이의 집으로 변신하는 10가지 팁 가운데 일부 1. 아이 방을 고립시키지 마라....문 닫고 갖히지 않도록..문을 열어두거나, 유리문을 하거나, 차양을 치거나...여튼 가족 속에 내가 있다는 안정감의 문제이자 소통의 전제다. 2. 집 안 전체를 공부방으로 만들어라...이건, 노매드 학습법 얘기다. 어디서든...기분 바꿔가며 공부할 수 있는...공간을 정해두란 거다. 3. 6개월에 한번씩 이사하라........이건, 이사하란게 아니라, 가구 배치를 바꿔서라도 기분 전환 좀 하란거다. 요건 도저히 못하겠다. 크지 않은 방에 빽빽히 있는 가구 옮길 엄두도 안 나거니와....게을러서.
바람이 통하는 집, 하늘이 보이는 방, 창의성을 키우는 집...어찌보면 무지 비싸고 좋은 집에 살아야 할 거 같기도 하지만...11명 케이스 보면, 집이 그리 잘나지 않았다. 주택평수가 작디 작다는 일본 아닌가.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단 얘기다. 하다못해, 쪽지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 서로 고립된 섬처럼 지내는게 아니라...어수선하더라도 그 가운데 질서가 있는 가족의 관계 같은 것.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실 삽화. '비빔툰'의 홍승우씨 낯익은 그림이 곳곳에 등장한다. 아예 아파트 평면도처럼 집을 펼쳐서...실제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엄마 아빠, 형제와 어떻게 '통하는지'...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훨씬 이해가 쉽고, 읽기 편하다. 일본 원전도 원래 이런건지....정말 편집을 잘했다. ㅎㅎ
한가지 조금 짜증 좀 난 대목은...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론. 집안의 주역은 어머니지만, 아버지도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게...바로 등을 보여주는 거란다. 아버지의 등은 곧 존재감이라나. 대화와 다른 또다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단다. 한 방에서 아이 공부할 때 아빠가 컴퓨터 작업이라도 두드리면 낫다는게다. 같은 방에 있지 않아도..거실에서 신문 넘기는 소리만 나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나는 내 아이의 아빠가 등만 보여주고 존재감 주는 사람이 되는게 싫다. 어떻게 된게...이 책의 어머니들은 항상 부엌을 중심으로 지내는데...아빠는 존재감만으로 충분하다고? 왜 부엌 중심의 가족인데..아빠는 받아먹기만 해야 하나. 엄마는 거실에서 신문보는 장면 없이 간식 준비하는 것만 나오지? 흥흥.
요즘 시집살이 중이라....아이들 방도 하나 못 만들어주고 있다. 1년도 안되는 기간 지내려했는데, 이게 최소 3년으로 늘었으니...대책을 세워야 할텐데. 하지만....방이 없다보니, 식탁(얼마전 비싼걸로 바꾸고 쪼매 후회도 했는데..이 책 보니 아주 안심이 된다...--;;)에서 애들 숙제봐주면서, 나는 책을 읽거나, 그야말로 부엌일을 한다. 이게 우리 아이들을 똑똑하게 키우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내 어린시절, 돌아보면..방 구석에 처박히면서, 독서실 다니면서 엄마와 대화가 줄었다. 어차피 가족이 아이들의 울타리에서 구속으로 변하는건...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거실 서재 만들기는 실패했지만, 일단 아이들과 뭐든 함께 볶닥이는 방법을 계속 연구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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